트라피스트-1

목성

by zoomin

저기 저 어떤 항성은 12조 년을 살아남는다고 한다.

만년의 시간도 감히 헤아릴 수 없는데, 그 몇만 배를 견딘다는 것이다.


천년의 시간도 참 아득하고 아득해서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데, 12조 년은 과연 시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 긴 시간을 어느 멀고 먼 자그마한 외행성의 존재가 ‘트라피스트-1’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찰나의 시간을 부르다 보면 어느샌가 잊힌 지도 모른 채 잊혀 가겠지.


이름도, 가치도 잊힌 채 그 별은 긴 침묵 속을 흘러가겠지.


그 곁을 맴돌던 행성들도 의미를 모른 채 맴돌다 스러지게 되겠지만 그거면 되었다.


12조 년을 살든, 하루를 살든 내 자리를 지켜냈으면 되었다.

저기 저 트라피스트도 원했든 원치않았든 12조 년을 존재해야 하듯.


나 역시도 이 하루를 혹은 몇십 년을 발광하며 존재했으면 된 것이다.

별이라는 게 그리 멀리 있지 않은 것이다.


저 몇억 광년 떨어져 있는 행성이나, 내 옆에 있는 당신이나 결국 어딘가 어느 자리에서 맴돌다 발광하며 사라지는 건 같으니.

이 세상이 별로 가득한 것이 아니면 무엇일까.


저 멀리 떨어진 트라피스트 항성을 상상하는 밤.

별의 시체들로 가득한 이 우주 속에서 나 또한 어느 항성으로 또는 행성으로 남아있음을 여실히 느끼는 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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