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

화성

by zoomin

누군가 내게 물었다.

“너는 행복하기도 무던하기도 담담하기도 하면서, 갈무리할 줄 아는 사람이면서 왜 부정을 입에 담고 사니?”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대답은 무엇일까.

어떻게 말을 해야 상대가 생의 의미를 찾지 못한 나를 이해해 줄 수 있을까.

평화로운 가족, 남 들만치의 사회적 능력, 나의 연인, 소수의 친구들.

이 모든 것을 얼추 갖추고 있음에 안도감을 느껴도, 그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감을 느꼈다고 해서 그것으로는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지 못했다.


이렇게 말을 하면 당신은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내 감정을 갈무리할 수 있다는 것이, 내가 담담하다는 것이 꼭 남은 모든 삶을 부득불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말하면 이해해 줄까.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한 사람이 만들어 낸 일생의 유대감들은 먼지 쌓인 책장 속에 기억나지도 않는 공책에 기록될지언정 그 어떤 형태도 남기지 못할 것이고.

내가 가족을, 연인을, 친구들을, 반려묘를 사랑했다는 것은 결국 언젠가는 흔적도 없이, 존재했다는 증거 하나 없이 자연스럽게 소멸하게 될 것이고, 내가 가졌던 모든 것들도 그렇게 사라지게 될 것이란 것을.

사라진다는 것이 슬프지 않다고 말하는 나를 당신은 아마 슬픔으로 받아들이겠지.

내가 부정을 입에 담은 것은 죽음이 내게 있어 부정의 대상만은 아니기 때문이었고 당신이 말한 대로 나는 우울하지도, 불행의 궤도에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저 허무함. 그거 하나.

당장의 행복감, 안정감으로는 이 허무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일생을, 매일을 살아간다는 것은 나의 끝이 무엇인지 알고도 달려가는 것.

그런 내 모습을 외면하지 않고서 버텨가는 것, 스스로를 이해해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지고 살아가는 것.

모순적이게도 반복적으로 느껴야 할 삶의 허무함과 무력감.

그것들이 가져오는 허무의 세계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당장 죽게 된다면 나는 아마 더 이상 유대를 기록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정도만 있겠지.

만약 내가 죽음을 앞두고 슬픔이 밀려온다면 그것은 더 이상 내가 남은 이들과 기억을 공유할 수 없게 되어서겠지.

하지만 이토록 설명해도 나를 이해하지 않을 당신에게 내가 해줄 답은 그냥 내가 저 너머 세상의 끝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하자.

무수하게 넘쳐대는 감정 속에서 모래알 같은 감정들을 샅샅이 뒤져가며 기쁨, 만족, 행복을 찾고 있을 당신에게 굳이 허무의 세계를 알려줄 필요는 없으니.

그러니 나는 그대가 맞이할 모든 날을 묵묵히 응원해야지.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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