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 밑 이노

7) 빛을 옮기는 할머니

by 동동


이노는 노른이 사라진 길 위에 잠시 서서, 생각에 잠겼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저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길을 잃어버리는 걸까요? 창문 너머로 동경했던 어른의 모습이, 어쩌면 자유가 아니라 끝없는 무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노의 마음은 살짝 복잡해졌습니다.

하지만 노른 아저씨가 말해준 마지막 응원이 기억났습니다. 나와는 다른 길. 이노는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어디인지 모르지만, 이 빛이 나는 이 길만큼은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노른이 알려준 방향으로, 이노 일행은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땅의 갈라진 틈새로 새어 나오는 빛은 하나의 길이 되어 그들을 조용히 안내했습니다. 길은 길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야광으로 빛나는 길 위에는, 먼저 지나간 누군가의 발자국들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마치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에 첫 발자국이 새겨지듯, 이노와 친구들의 발자국도 그 위에 포개졌습니다.


“이거 봐봐. 내 발자국이 찍히고 있어.”


가장 신이 난 것은, 고양이 야무였습니다. 그는 고양이 특유의 가벼운 몸놀림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자신의 발자국이 반짝이는 것을 보며 즐거워했습니다. 늘 공중에 떠 있던 별조각 또한, 지금만큼은 땅으로 내려와 조심스럽게 자신의 작은 흔적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이 길을 걸었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누군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


야무가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야무에게는 타인의 발자국보다, 자신의 발자국이 더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아주 많은 사람들이 걸었던 거 같아.”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노는 길 위에 남겨진 무수한 발자국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길에는 이노와 야무, 그리고 별조각의 발자국이 그렇게 새겨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야무가 이노의 옷깃을 잡아당겼습니다.


“이노 저기 봐봐.”


야무가 가리킨 곳에는 그들보다 앞서 빛의 길 위에 발자국을 새기고 있는 한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아슬아슬해 보이는 사다리와 커다란 보따리를 등에 짊어진 채 홀로 거리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이윽고 한 가로등 아래에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러고는 등에 짊어졌던 사다리를 익숙하게 펼쳐 세우더니, 그 위로 위태롭게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노가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할머니는 높은 곳에 매달린 가로등의 전구를 조심스럽게 돌려 빼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할머니의 손 안에서 빠져나온 전구는 여전히 제 스스로 환한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마치 살아있는 반딧불이처럼.


할머니는 그 빛나는 전구를 보따리 안으로 소중히 집어넣었습니다. 그제야 이노는 보았습니다. 할머니의 커다란 보따리 안은, 그렇게 모은 수십 개의 빛나는 전구들로 가득 차, 마치 작은 은하수처럼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 빛을 모두 짊어진 할머니의 등에서는, 제 빛으로 길고 외로운 밤을 보내려는 작지만 완고한 의지 같은 것이 보였습니다.


“저기요.”

“뭐야? 근처에 누가 있어?”


이노가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지만, 할머니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다른 곳을 두리번거릴 뿐이었습니다.


“이노. 이 할머니 앞이 안 보여.”


야무의 말에, 이노는 할머니의 눈이 하얀 붕대로 감싸여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안녕하지 못한다. 안녕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 아니니.”

“괴팍하시네.”

“뭐야 이 밑에서 들려오는데, 넌 더 작은 난쟁이냐?”


야무의 목소리에 할머니는 허리를 더 숙이며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야무는 코웃음을 치며 할머니를 비웃었습니다.


“고양이거든.”

“고양이라. 나도 노망날 때가 다 됐나 보네.”

“할머니는…”


이노가 말하려던 순간, 할머니는 쓰읍 하면서 침을 삼키며 이노에게 무언의 경고를 했습니다. 그러고는 이윽고.


“할머니 말고!”

“네?”
“메테라고 불러. 아직 정정하니까.”

“할머니 맞네 무슨,.”


메테 할머니는 소리가 들려오는 발밑을 향해서 들고 있던 전구를 툭, 하고 떨어뜨렸습니다. 야무의 머리에 쿵, 소리가 나자 야무가 제 머리를 감싸 쥐었습니다.


“아파!”

“어디서 어른을 놀려먹고 있어.”


야무와 메테 할머니가 서로 티격태격하는 사이, 이노는 할머니가 모아둔 보따리와 불이 꺼진 가로등을 번갈아 보았습니다.


“메테 할머니는 여기서 뭘 하고 계셨나요?”

“할머니가 아니라니까… 보면 몰라? 전등을 빼고 있었지.”

“전등은 또 왜?”

“물어보지 마! 시간 없으니까.”


메테 할머니는 다시 몇 보 이동해서, 전등 앞에 멈춰 섰습니다. 그러고는 사다리를 설치하고 높은 곳에 있는 가로등을 올라갔다. 그러고는 아주 능숙하게 전등을 뺐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마치 보이는 것처럼 능숙한 모습에 이노는 몇 번이고 감탄했습니다.


“눈도 안 보이는데 잘 빼시네요…”

“눈으로만 보는 게 전부인 줄 아느냐? 봐봐 이토록 빛나고 있잖니.”

“그런가요?”

“빛이 나는 곳에 달려드는 건 까마귀잖아. 그러고 보니 생김새도 까마귀 할멈이네. 깍깍.”

“이놈이!”


메테 할머니가 화가 난 듯 주먹을 휘둘렀지만, 야무는 그런 주먹을 쉽사리 피했습니다. 야무는 할머니가 찾아내기에는 어둠에 숨을 정도로 검은 고양이였으니까.

야무의 말대로, 할머니는 검은색 망토에, 검은색 신발 검은 옷까지. 까마귀가 사람이 된 것 같기도 보였습니다.


“그렇게 전등을 빼면 어두워지잖아요. 거리가.”

“내가 그런 초짜처럼 보여? 이 일을 몇 년이나 했는지 알고 있니? 잘 봐봐. 어둡니?”


메테 할머니 말대로 다시 바라보니, 거리는 어둡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듬성듬성 빼서, 빛이 아예 안 비치는 거리의 부분은 적었습니다.


“그럼 그 전등은 어디로 들고 가시는 거예요?”

“다 정해진 곳이 있단다. 말 나온 김에 잘되었다. 자 여기.”


메테 할머니는 이노에게 보따리 한 개를 건넸습니다. 그 안에는 환하게 빛나는 전등들이 들어있었습니다.


“들고 따라와.”


메테 할머니를 따라 도착한 곳은, 빛의 길이 닿지 않는 깊고 어두운 골목이었습니다. 가로등은커녕, 집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 하나 없는, 마치 밤의 주머니 속 같은 곳이었습니다.

메테 할머니는 더듬거리며 벽을 찾더니, 그곳에 다시 사다리를 세웠습니다. 이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곳에는 아주 얇은 전선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보따리에서 빛나는 전구 하나를 꺼내, 익숙하게 그 전선 끝에 연결했습니다.


“되었다.”


작은 소리와 함께, 어둠을 밀어내며 따뜻한 불빛이 켜졌습니다. 그제야 보였습니다. 그 빛 아래로, 추위에 떨고 있던 작은 들꽃들과, 벽에 그려진 낡은 낙서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할머니는 그 낙서들을 손으로 만지면서, 그 감촉을 느꼈습니다.


“한때는 너무 밝은 것만 쫓다가 길을 잃어버렸었지. 이 눈도 그때 잃어버린 거고, 하지만 그제야 알았단다. 이렇게 어두운 길에서도 이토록 밝은 빛이 있다는 것을.”


할머니의 말을 따라 다시 골목길을 돌아보니, 할머니가 밝히는 등불 밑에는 가지각색의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메테 할머니가 보고 있는 어둠이었습니다. 이윽고 할머니는 다시 다음 어둠으로 향했습니다. 이노가 들고 있던 보따리가 텅 비게 될 때까지, 그들은 밤의 주머니마다 작은 등불을 하나씩 켜고 다녔습니다.

마침내 이노가 들고 있던 보따리마저 비게 되자, 메테 할머니는 다시 자신의 짐을 챙겼습니다.


“넌 더 안 따라와도 돼. 네 갈 길을 가.”

“너무 멀리 와버렸는데.”

“네 옆에 있는 놈이 그냥 있는 건 아니잖아. 그렇게 밝게 빛나고 있는데.”

“길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거야. 네가 맘만 먹으면.”

“할머니는요?”

“난 다시, 돌아가야지. 빛이 있는 곳으로.”


메테라는 사다리와 보따리를 짊어진 채, 다시 밝은 길을 향해 돌아섰습니다. 그녀는 또다시 밝은 곳의 빛을 거두어, 어두운 곳으로 향할 것입니다. 이노는 그 지치지 않는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메테 할머니!”


이노의 부름에 할머니가 잠시 걸음을 멈췄습니다.


“고맙습니다.”


무엇이 고마운지, 이노 자신도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래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메테 할머니는 대답 대신, 어깨너머로 희미하게 웃어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어둠 속으로, 빛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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