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길 잃은 노른의 무게
고양이들의 보금자리를 뒤로하고 다시 골목에서 나왔습니다.
거리는 이노가 골목으로 들어갔을 때 하고 조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이노의 옆에는 야무가 있었습니다. 야무는 더 이상 이노를 방해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작고 조그마한 골목에서 벗어나, 이노와 함께 넓은 거리를 보니, 야무의 표정은 한껏 산뜻해졌습니다.
야무의 몸을 조이고 억압하던 모든 게 사라지자, 야무는 어린 시절 잊었던 자신만의 온기를 찾은 듯했습니다. 모든 걸 책임져야 했고, 어떻게 될지 두려움에 떨던 대장 고양이가 아니라, 모든 것에 흥미가 있고, 장난기가 많았던 순진 난만한 어린 시절로,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이노 또한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야무의 입이 이전과 다르게 엄청 빠르게 회전했으니까요. 야무는 사소한 것부터 많은 것까지 이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래서 왜 나온 거라고?”
“별조각을 따라 나왔어.”
“저 높은 곳에서? 너도 참 제정신은 아니다. 아니지, 그러니까 내가 따라가는 걸까?”
야무의 성격은 이전과는 다르게 완전히 변해 있었습니다. 이노는 이게 야무가 그토록 억압하고 숨기려 했던 자신만의 본성임을 알았습니다. 누구보다 환하고, 장난기 많은 야무. 이노는 이런 야무의 모습이 훨씬 보기 좋았습니다.
두 사람이 대화하며 도로를 걸어가던 순간, 이노는 골목길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그림자와 부딪혔습니다. 이노는 낯선 그림자의 등장에 당황했지만, 다정한 목소리가 경계심을 금세 풀어버렸습니다.
“괜찮니? 이런 밤늦게 돌아다니면 위험해.”
그 사람은 넘어진 이노를 부축하기 위해 손을 뻗었습니다. 하지만 몸을 굽히지 않아, 그 사람의 손과 이노의 손이 결코 닿을 수 없을 것처럼 멀어 보였습니다. 이노는 스스로 옷의 먼지를 털고 일어나, 오히려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습니다.
“아저씨는… 괜찮으세요?”
“괜찮다니 뭐가?”
“등에 짊어지고 있는 짐이요.”
이노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마치 작은 산 하나가 통째로 올려진 듯한 거대한 짐이 있었습니다. 건물만큼이나 높게 쌓인 짐은 당장이라도 그를 짓눌러 버릴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아아, 이거? 괜찮단다. 이렇게 짊어진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거든”
그가 말하는 순간에도, 어디선가 날아온 낡은 서류뭉치 하나가 그의 어깨 위로 툭하고 내려앉았습니다. 짐은 조금 더 높아졌지만, 남성은 아무렇지 않은 듯 희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이노가 일어선 것을 확인하고서는 다시 제 갈 길을 가려했습니다.
이노는 조심스럽게 그의 옷소매를 붙잡았습니다.
“어디로 가시는 길인 거예요?”
“어디 로라…”
남성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마치 아주 오래전에 잊어버린 답을 찾으려는 듯이. 이내 그는 다시 이노를 보며 똑같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마치 그것밖에 할 수 없다는 듯이.
이노는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미소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아주 가끔, 창문에 비친 자기의 슬픈 얼굴에서 보았던 것 같았습니다. 웃고 있으면서도, 무척이나 슬픈 그런 미소였습니다.
“잘 모르겠구나.”
그러자 이노의 옆에 있던 야무가 코웃음을 쳤습니다.
“뭐야, 이 아저씨 자기가 가려는 길도 모르는 거야?”
“조용히 해. 야무.”
“그렇지만 이노. 우리는 갈 길이 있잖아. 이런 아저씨는 신경 쓰지 말자고.”
“맞아. 서로 갈 길이 있는걸. 너희도 어서 가보려무나.”
그렇게 멀어지려던 찰나, 이노는 다시 한번 더 그 남성의 옷소매를 붙잡았습니다. 붙잡아야 할 것만 같았습니다. 원인도 이유도 알 수 없었지만, 이 남성에게서 이전의 기억 속에서 보았던 대로, 아주 오래된 그리움 같은 감각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 감각은 이전과는 다른 것이었고, 이노는 결코 알 리 없었지만, 이노는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같이 들어드릴까요?”
이노의 그 말에 놀란 것은 남성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야무 또한 어처구니없다는 듯 소리쳤습니다.
“이노, 제정신이야? 왜 그러는 건데?”
“왠지… 이래야만 할 것 같아서.”
이노는 남성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조심히 그 거대한 짐 아래로 몸을 밀어 넣었습니다. 그러고는 남성의 옆에 나란히 서서, 함께 짐을 어깨에 멨습니다. 쿵, 하고 온몸이 무너져 내릴 듯한 무게. 하지만 이노는 이를 악물고 남성을 따라 조심스레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고맙구나. 이름도 못 물어봤네. 나는 노른이라고 한단다.”
“반가워요 노른 아저씨. 저는 이노라고 해요. 생각보다… 많이 무겁네요.”
두 사람은 그렇게 조용히 밤의 거리 위로 똑같은 발자국을 찍으며 걸어갔습니다. 이노는 이 길이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이 맞는지 몰랐지만, 이노는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어디서 어째서 그런 감각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 그 또한 알 수 없었지만, 옆에 있는 노른에게 궁금한 걸 하나둘 씩 물어보았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짐을 들고 걸으신 건가요?”
“꽤 되었지. 밤이 오기 전, 낮이었고, 그 낮이 오기 전 다시 밤이었던 아주 먼 옛날부터였을 게다.”
“그게 대체 언제인데. 계속 돌려 말하지 말고.”
야무는 어느새 두 사람의 등 위에 있는 짐 위에 올라, 높은 곳에서 간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모르겠다. 나도 이노 너만 한 나이 때에는 무척 가벼웠단다. 어디로든지 갈 수 있을 것 같았지. 한 발자국 내디디면, 세상 끝까지라도 갈 수 있는 법을 알았거든.”
그렇게 말하는 노른의 눈동자가 살짝 흐려졌습니다. 아주 잠시, 까마득한 과거를 헤맸던 것처럼. 하지만 이노는 노른의 말에 고개를 저었습니다.
“저는 몰라요.”
“모른다니 어째서?”
“저는 한평생 저 위에 갇혀 살았거든요. 한 발자국은커녕, 발을 내딛지조차 못했어요.”
이노는 저 위에 있는 자신이 내려온, 탑과도 같은 높은 건물을 가리켰습니다. 저곳에 갇혀 살았기 때문에, 노른이 말하는 그 걸음을 나아가는 방법을 알 리 없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노른은 그 건물을 잠시 바라보더니, 오히려 오히려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하지만 보렴. 너는 지금 네 발로 걷고 있지 않니. 저 먼 곳에서부터, 바로 여기까지.”
“그건 전부 이 친구가 함께 있어준 덕분이에요.”
“안녕하세요.”
이노의 옆에 서 있던 별이 인사를 건네자, 노른은 신기해했다.
“오오. 넌 별이구나.”
“네. 별조각이지만요.”
“그래. 그런 거였구나.”
노른은 무언가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노는 묻지 않았습니다. 노른은 이노가 이 길 위에서 오래 머물 아이가 아님을 알았기에,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주기로 했습니다.
“너희들이 어디로 가려는지 잘 알겠구나. 시계탑으로 가려는 거지?”
“네. 어떻게 아셨나요?”
“그런 시절이 있는 거란다. 너희가 걷기 전에는 나도 걸었었고, 내가 걷기 전에는 다른 누군가가 걸었던 길이었던 것이지. 같은 길이 아닐지라도, 결국 도착하는 곳은 비슷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단다.”
“자, 잠깐만 기다려봐라.”
노른은 거대한 짐 속으로 손을 뻗었습니다. 그러자, 노른의 손이 고무처럼 끝없이 늘어나더니, 이윽고 수많은 짐 더미 사이에서 낡은 열쇠 하나를 꺼내주었습니다.
“이건 열쇠란다. 언제 써야 할지는 문 앞에 서면 저절로 알게 될 거다.”
“저…”
“슬슬 시간이 되었구나. 이노 너는 저 길이 보이니?”
노른의 말에 이노가 고개를 들자, 땅의 갈라진 틈새로 잠든 별들의 숨결과 같은 빛들이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빛은 하나의 길이 되어, 저 멀리 어딘가를 향해 뻗어 있었습니다. 그 빛은 이노에게 마치 이리 오라고 안내하는 듯했습니다.
“네 보여요.”
“그래. 내 눈에는 이제 보이지 않지만, 분명 그곳에는 길이 있을 거야. 짐이 너무 무거워 고개를 들 수 없게 된 뒤로는, 발밑의 길을 보는 법을 잊어버렸거든. 분명 그 길이 너희를 데려다줄 게다.”
이노가 빛나는 길을 보았을 때, 반대편 골목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젊은이도, 노인도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노른처럼 거대한 짐을 짊어지고 있었습니다. 마치 자신의 집을 짊어지고 평생을 걸어가는 달팽이처럼, 그들은 목적지도 잊은 채 묵묵히 그 무게를 짊어지고 밤의 거리를 헤매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들은요?”
“나하고 비슷한 사람인 거지.”
“노른 아저씨는… 어디로 가는 거예요?”
“그걸 아는 사람은 이젠 거의 남아있지 않구나. 언젠가 네가 나와 다른 길을 걷는다 해도, 난 네 길을 응원하마.”
골목 속으로 사라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노는 가슴 한쪽이 무겁게 내려앉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들은 앞으로 얼마나 긴 시간을 저 밤을 헤매며 살아갈까요.
이노는 언젠가 노른과 저 모든 사람이 자신의 등 위에 올려져 있는 짐을 내려놓고, 마음 놓게 잠을 보낼 수 있는 밤이 찾아오길 진심으로 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