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 밑 이노

5) 검은 고양이

by 동동


이노는 별조각을 따라 처음으로 땅에 발을 디뎠습니다.

처음으로 내딛는 이 길은 이노에게 무척 낯설었습니다. 집 안의 부드러운 나무 바닥과는 전혀 다른, 단단하고 차가운 감촉이 발바닥을 통해 온몸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창문 너머로 내려다보던 밤의 거리는 언제나 어지럽게 일렁이는 강물 같았지만, 막상 그 강 한가운데에 서자 밤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어둠이 드리운 땅이, 거대한 생명체처럼 뜨거운 열망을 품고 조용히 숨 쉬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가끔씩 밤의 공기가 낯선 손길처럼 뺨을 스쳐 지나갈 때면, 이노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며 자신을 꽉 끌어안았습니다.

그런 이노의 옆에는 여전히 별조각이 있었고, 별조각은 이노의 곁을 맴돌며 말했습니다.


“나는 저 위로 가야 할 것 같아.”


별조각이 가리킨 곳에는 여전히 그 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길처럼 저 위에 유유히 떠 있었습니다. 이노는 어떻게 하면 별조각을 저 높은 곳까지 데려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이노와 달리 별조각은 어둠 속을 신나게 헤엄쳐 나갔습니다.


“어디 가는 거야?”

“이런 길은 처음이야. 매번 위에서만 내려다보고 있었거든.”


별조각은 들뜬 목소리로 콧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소리는 맑은 방울 소리가 되어 어두운 밤거리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 아름다운 소리는 어두운 밤거리에 울리고 있었습니다. 골목으로 사라진, 소리는 낯선 밤의 공기와 함께 뒤섞여, 이노가 걷는 이 길을, 골목을, 이 마을을 울리고 있었습니다.

마치 하나의 합주처럼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이노는 그 소리가 멀어질까 두려워, 별조각의 뒤를 어떻게든 쫓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노는 여전히 밤이 낯설었지만, 왠지 모르게 별조각과 함께라면, 이 어두운 밤길의 끝까지 갈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으악.”

별조각의 비명과 함께, 어두운 골목에서 나타난 골목보다 어두운 무언가가 튀어나왔습니다. 그것은 날렵한 그림자처럼 공중에 있던 별조각을 낚아채더니, 순식간에 반대편 골목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거기 멈춰!”


이노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꼈지만, 망설일 시간은 없었습니다. 이노는 그 그림자를 따라 어두운 골목으로 뛰어들었습니다.


-


골목길은 어둡고 캄캄했습니다.

이노가 아무리 높은 곳에 살았다 해도, 골목길 사이사이를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노가 들어선 골목길은 이노가 알던 밤을 순식간에 잡아먹었습니다.

술 냄새와 정체 모를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고,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벽들은 그림자보다 더 검은 얼룩들을 품고 있었습니다.

어둡고 캄캄한 골목길에는 여러 사람이 있었습니다.

술에 취해 바닥에 엎어진 사람, 서로 멱살을 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 이노가 낮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밤의 낯섦이 이노를 향해 그대로 다가왔습니다.

이노는 순간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저 멀리 희미하게 반짝이며 멀어져 가는 별조각의 빛이 보이자, 이노는 그림자와 고함과, 어둠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가며 필사적으로 골목길을 나아갔습니다.


“거기 멈춰!”


이노는 멈춰주기를 바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그렇게 골목길을 가로질렀습니다.

이노가 얼마나 달렸을까요.

여러 골목을 지나치며, 여러 사람을 지나치며, 이노는 어둡고 더 어두운 골목 속으로 들어와 버렸습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 무렵, 골목의 끝은 갑자기 열리며 달빛 아래 거대하고 넓은 공터가 나타났습니다.

그곳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언젠가 보았던 신상 장난감, 누군가 입다 버린 낡은 정장, 이노가 처음 보는 가전제품들까지. 다양한 추억들과 이야기가 담긴 물건들은 그곳에 쌓여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물건들이 쌓인 높은 곳에, 그 녀석이 서 있었습니다.


“왜 따라오는 거야?”


그 녀석은 고양이였습니다. 이노가 종종 창문 너머로 보았던 검정고양이가 이제는 이노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양이의 입에는 별조각이 위태롭게 물려있었습니다.


“이거 놔.”


별조각은 소리쳤지만, 고양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주 능숙하게 쓰레기 더미에서 새장을 찾아, 별조각을 그 안에 가둬버렸습니다.


“별조각을 풀어줘.”
“별조각? 이 반짝이는 걸 말하는 거니?”
“응. 내 친구야.”

“친구라니, 우스운 소리네. 이건 그냥 빛나는 돌멩이일 뿐이야. 넌 돌 하고 친구가 되니? 인간인 네가? 현실을 살아 꼬마야.”

“꼬마가 아니야, 걔 이름은 이노야.”


새장 안에 갇힌 별조각이 소리쳤습니다. 별조각의 말에, 이노는 용기를 내어 고양이에게 한번 더 부탁했습니다.


“부탁해. 별조각을 풀어줬으면 해. 나에게는 무척 소중한 친구거든.”

“소중한 친구라니, 너무 덧없는 소리네. 소중한 것은 해가 떠 있는 낮에는 기억하고 아끼고 다정하게 대하겠지. 하지만 이곳은 밤이야. 이노. 어둡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넌 알고 있니?”


고양이가 나직이 말하는 순간, 스산한 소리와 함께 이노의 주위로 수십 개의 눈동자가 떠올랐습니다. 어느새 수많은 고양이가 소리 없이 이노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이게 뭐 하는 거야?”

“우리는 대장의 말을 듣는 거야.”
“맞아. 대장이 하라는 대로 하면 문제없어.”

“대장? 저 고양이가 너희의 대장이야?”

“그래. 어두운 밤에서 우리가 갈 길을 알려준 대장.”

“대장이 하자는 대로만 할 수 있다면.”


고양이들의 목소리는 저마다 달랐지만, 이상하게도 하나의 생각에서 흘러나오는 메아리처럼 똑같이 들렸습니다.

이노는 그런 고양이를 보면서, 두렵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향해 위협을 해오는 고양이들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무척 익숙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자신도 그런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엄마가 말하는 대로 하면]


이노는 이 고양이들이 어떤지 알기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고 있는 걸 알기에, 이들의 귀에 그 어떤 소리도 외침도 들어가지 않을 걸 알아차렸나 봅니다.

이노에게 점점 다가오는 고양이들을 보고, 이노는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사방을 감싸고 있기에, 어디로 도망칠 수도 없었고, 설득도 이들에게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별조각이 있는 힘껏 새장에 몸을 부딪쳤습니다. 쨍, 하는 소리와 함께 낡고 오래된 새장의 문이 찌그러지고, 문틈으로 빠져나간 별조각은 고양이들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너희는 왜 대장이 하자는 대로만 하는 건데?”

“그야 그게 당연하니까.”

“맞아. 대장이 하자는 대로 하면 뭐든지 잘 되었는걸.”

“우리가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그러자 별조각은 고양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왜 생각을 안 하려 하는 건데? 너희는 모두 생각을 해서 이곳에 있는 거 아니었어?”


고양이들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들은 대장이 하라는 대로 움직였고, 하자는 대로 생각했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노가 엄마에게 그랬던 것처럼요.

그러나 그들과 이노가 다른 건, 이노의 옆에는 대장 고양이가 아닌, 별조각이 있다는 거였습니다. 별조각의 질문에 고양이들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시선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늘 그래왔던 것처럼. 대장 고양이에게로 향했죠.


“왜 생각을 안 하냐고?”


대장 고양이가 차갑게 되물었습니다.


“이곳은 거리니까. 안락한 집이 아니라. 생각할 시간에 움직여야 해. 늦어버리면 기회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게 되면 멈출 거야. 멈추면 늦어버리고. 그렇게 늦게 되면 망설임이 생겨날 거야. 망설임은 '내일은 나아질까?' 하는 헛된 기대를 품게 되지. 하지만 이 거리에서 기대만큼 잔인한 건 없어. 배신당한 기대는 굶주림보다 더 뼈아프거든.”

“그래서 우리는 생각을 버렸다. 오직 오늘, 지금 이 순간 살아남는 것만을 생각하기로. 우리는 죽기 싫어. 살아가야 하니까, 이 어두운 거리 속에 있는 거야. 우리의 전부는 이 거리 속에 있어.”

“더 이상 돌아갈 곳은 우리에게 없어.”

“맞아. 우리에게는 없어”

“어두컴컴한 이 거리가, 우리의 집이야.”


대장 고양이가 야옹거리며 울부짖자, 주위에 있던 고양이들도 그를 따라 같이 울었습니다. 그 울음소리는 하나의 거대한 슬픔이 되어 공터를 가득 메웠고, 이야기를 전부 듣던 이노는 그 울음소리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렸습니다.


“너희는 온기를 원했던 거구나.”

“시끄러워! 온기 따위... 그런 건 우리에게 사치일 뿐이야!”

“온기? 그게 뭐야?”


별조각이 물었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거야. 가만히 있어도 빛이 나고, 울고 싶어질 때 버틸 수 있는 아주 강한 힘이야.”

“아냐 그건 그런 힘이 아니야. 그것이 사라졌을 때, 고통을 너희가 알고 있기나 해?!”


대장 고양이의 목소리가 절규처럼 튀어나왔습니다. 그제야 이노의 눈에는 보였습니다. 이들의 상처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이노 너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어?”

“아니, 난…”


이노는 차마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온기는 이미 오래전, 수많은 눈물에 젖어 차갑게 식어버렸으니까요.


“어떻게 하면 그런 온기를 가질 수 있을까? 난 저들이 온기를 가졌으면 해. 이 어두운 거리 속에서도 밝고 희망차게 살아갔으면 해.”

“너희에게는 그런 힘이 필요한 거구나.”


이노의 간절한 말에 별조각이 조용히 떠올랐습니다. 별이 서서히 공중으로 올라가더니, 이윽고 눈부신 빛이 공터 전체를 감쌌습니다. 이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곳에는 마법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노와 고양이들의 발밑에 쌓여있던 쓰레기들이 서서히 공중으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낡은 장난감과 정장, 부서진 기계들, 낡고 오래된 책들까지. 그 모든 것이 밝게 빛을 내더니 이윽고 실처럼 풀려나와 허공에서 춤을 추듯 서로서로 합쳐지고 모였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이노와 고양이들은, 이 광경을 난생처음 보았습니다. 고양이들은 어쩔 줄 몰라했고, 대장 고양이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장 고양이라 해도, 이런 광경은 처음 본건 똑같았습니다. 쓰레기들이 살아 움직이며, 고양이의 몸을 꼬리를 어깨를 다리를 만졌고, 그 손길에는 신기하게도 온기가 묻어 있었습니다.

이윽고, 하늘로 높게 올라가던 쓰레기들은 커다란 하나의 담요가 되어, 이노와 고양이들의 어깨 위로 포근하게 내려앉았습니다.

이노는 그 담요를 덮자, 몰려오는 따스함을 느꼈습니다. 어두운 밤의 거리가 아니라, 따스한 봄의 햇살을 느끼는 것 같은 온기에, 이노는 눈을 감았습니다.


아주 오래전 잊고 있었던 기억이, 바람을 타고 서서히 이노에게 왔습니다. 이노는 엄마의 품에 안겨,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불어온 꽃잎 하나가 이노의 뺨에 붙자, 엄마는 웃으며 그것을 떼어주었습니다. 그걸 떼어주는 엄마는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일어나 이노.”


별조각의 목소리에 이노는 눈을 떴습니다. 뺨 위로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자, 어둡고 스산했던 공터는 환한 전등이 비춘 것처럼, 어느새 따스한 빛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날카롭게 곤두섰던 고양이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웃고 있었고, 경계심이 가득했던 눈동자에는 작은 등불이 켜진 듯 온기가 돌았습니다. 고양이들이 기뻐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습니다.


“뭘 한 거야?”

“난 이들의 소원을 들어준 거야. 이들이 온기를 느낄만한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어.”


이노는 주먹을 쥔 제 손 안에서, 조금 전 기억에서 느꼈던 것과 똑같은 온기가 남아있음을 느꼈습니다. 이노가 조심스레 손바닥을 펴자, 이노의 양손에는 꿈의 잔해처럼 옅은 분홍빛의 꽃잎 하나씩 놓여 있었습니다.

이노는 그 꽃의 이름을 몰랐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들은 알 수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된 그리움과, 따스함. 그리고 고맙다는 인사. 여러 색깔의 감정들이 작은 꽃잎들에 담겨 있었습니다.

이노는 이 꽃잎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는 꽃잎 하나는 자신의 주머니에 챙겨 넣었고, 나머지 하나를 조심스레 들어 올려,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듯 가만히 떨어뜨렸습니다.


꽃잎은 별조각이 그랬던 것처럼 밤공기 속을 유영하더니, 따뜻한 담요 위로 나비처럼 사뿐히 내려앉았습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꽃잎이 닿은 곳에서부터 부드러운 빛의 파문이 퍼져나가더니, 공터 주위로 기억 속에서 보았던 분홍빛 나무들이 안개처럼 피어올라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메마른 공터는 푹신한 이끼로 뒤덮였고, 차가운 밤의 공기는 달콤한 꽃향기가 맴돌았습니다. 스산했던 공터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아늑하고 안전한 보금자리가 되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고양이들은 더는 춥고 외롭지 않았습니다. 상처를 입지 않을 것이고, 괴롭지 않을 겁니다. 온기를 알았고, 이 차가운 겨울을, 차가운 거리를 어떻게 보낼지 이제는 알아갈 것입니다. 이노는 온기가 감도는 그곳을 바라보며,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봐.”


떠나려던 이노의 등 뒤로 누군가 그를 불렀습니다. 그곳에는 대장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대장 고양이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마치 이노처럼요.


“대장.”

“난 이제 대장이 아니야.”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온기 속에서 평화롭게 잠든 고양이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는 온기를 기억하지 못하고, 살아남기 위해 내 뒤를 따라다니는 그림자가 되었을 뿐이야. 이 어두운 밤에 던져진 우리들은 이름을 잃고, 살 곳을 잃었지.”

“하지만 네 덕분에 기억해 냈어. 난 대장이 아니야. 나는… 야무. 야무라고 불러.”


야무는 다시 이노를 바라보았습니다.


“별조각이라 했지. 네 친구는?”

“응.”
“별조각 덕분에 이곳에서 이제 내가 없어도 괜찮을 거야. 돌아갈 곳이 생겼으니까, 저들은 그림자에서 벗어나, 밝은 곳으로 나아갈 거야. 그곳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살아갈 방법을 알아가겠지. 이들에게 내가 있어봤자, 이젠 방해일 뿐이야. 그러니까 나는 잠시, 이곳을 떠나 너희를 따라가도 될까?”

“따라온다고? 왜?”

“너희는 우리의 은인이니까. 네가 도와줄 일이 있다면 도와주고 싶어. 그리고…”


야무는 이노의 손에 아직 희미하게 남아있는 꽃잎의 온기를 붙잡으며 나직이 덧붙였습니다.


“이노 네가 어떤 길을 걸어갈지 몹시 궁금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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