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 밑 이노

8) 골목으로 도망

by 동동


이노는 다시, 별조각과 야무와 함께 빛이 이끄는 길 위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거기 비켜!”


갑작스러운 외침과 함께, 옆 골목에서 튀어나온 한 소녀와 세게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순식간에 두 사람은 빛나는 길에서 튕겨 나가, 다시 어두운 골목 바닥으로 나뒹굴었습니다. 야무와 별조각도 서둘러 이노를 따라, 골목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정신을 차린 이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토록 창문 너머로 바라보던 그 소녀, 린이었습니다.


“아야… 가만히 길을 막아서고 뭐 하는 거야.”

“네가 먼저 와서 부딪혔잖아.”


린은 투덜거리면서도, 넘어져 있는 이노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이노는 그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 순간, 이노는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각에 숨을 멈췄습니다. 린의 손은 무척이나 따뜻했습니다. 엄마의 손을 붙잡았을 때의 느꼈던 감촉하고 달랐습니다. 별조각을 잡았을 때 느꼈던 감촉와는 다른, 기운이었습니다.


“괜찮아?”

“응. 근데 어딜 그렇게 가고 있었던 거야?”

“아 그건…”


린이 무언가를 말하려던 찰나, 린이 뛰어왔던 골목 너머에서 거친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저기있다!”


술에 잔뜩 취한 남자 네 명이 비틀거리며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뭐야 꼬맹이가 늘었는데?”

“상관없어. 저 빌어먹을 꼬맹이만 혼내주면 되니까.”


그들은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면서도, 그 눈만은 분노에 이글거리고 있었습니다. 남성들은 마치 춤을 추듯 몸을 비틀었습니다. 제 몸을 가누기도 힘든 것처럼 흔들리는 그들은 이윽고, 서서히 의식을 잃어갔습니다.

어느새 이노와 린을 향해 달려드는 4명의 남성은 골목에서 새어 나오는 어둠에 온몸이 잠식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는지, 무슨 일을 저지르는지조차 모를 것입니다.


“따라와.”


린은 가만히 서 있던 이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습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골목을 가로 질러, 더 멀리 도망쳤습니다. 수없이 많은 계단을 내려가고, 쓰레기통을 짓밟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도 하며, 두 사람은 밤을 헤매고 거닐었습니다. 밤의 거리는 마치 끝없는 미로와도 같이 계속해서 계속해서 더 깊고 어두운 곳으로, 두 사람을 초대했습니다.

이 밤의 골목은 이노가 창문 너머로 보던 밤과 전혀 달랐습니다.

가로등에 취해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서로 사랑을 나누고 있는 연인들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지나치면서, 어떤 밤은 다소 슬펐고, 어떤 밤은 감성적이었고, 어떤 밤은 비로소 밤이어야 했을 때도 있었습니다. 이노는 밤의 얼굴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슬픔과 사랑, 외로움과 기쁨이 모두 한데 뒤섞인 곳이 이곳 밤의 골목이라는 것을요.


“여기는?”

“이봐, 여기도 없어?”


술에 취한 남성들이 외치는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골목 사이를 울렸습니다.

이노는 자신이 얼마나 멀리 왔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이노의 뒤에는 별조각과 야무가 용케 잘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이봐 여자.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뭐야 고양이가 말하잖아!”

“됐고, 어디로 가고 있냐고!”


야무가 짜증 내듯 소리쳤지만, 린은 당황하지 않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차근차근 말했습니다.


“안전한 곳으로. 일단 안전한 곳으로 도망치고 있는 거야. 끼어들게 해서 미안해. 하지만 너와 같은 꼬맹이가 길을 지나다니면 어른들에게 붙잡히고 말 거야.”

“너도 꼬맹이잖아.”

“넌 몇 살인데?”

“몇 살 그게 뭔데?”

“태어난 지 몇 년이 됐냐는 소리야.”

“모르겠어. 그런 걸 알려준 어른은 내게 없었어.”

“뭐? 그럼 생일은?”

“생일은 또 뭔데?”


린은 잠시 믿을 수 없다는 듯 이노를 쳐다보았습니다.


“특별한 날이야.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는 유일무이했던 날. 그날을 넌 모른단 말이야?”

“응. 전혀 몰라. 혹시 없는 거 아닐까.”

“그게 말이 되니? 너도 생일은 있을 거야. 네가 태어나 이 세계를 만났던 그 순간은 분명 있을 거라고. 그냥 너는 그날을 모르고 있을 뿐이야. 누군가는 그날을 알고, 너를 위해 축하를 했던 순간이 있을 거야. 잘 기억해 봐.”


린의 단호한 말에, 이노는 어두운 골목길을 가로지르면서 잠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태어난 것을 축하받는 날.

이노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엄마의 목소리는 언제나 이노가 앞으로 되어야 할 어른에 대해서만 말했습니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야 하는 이유, 착실하게 살아야 하는 미래. 엄마의 모든 말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향해 있었습니다. 단 한 번도, 지금 여기에 살아있는 이노, 태어나준 이노를 향해 있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린은 달랐습니다.

린은 이노의 과거, 이 세상에 태어났던 바로 그 순간이 분명 존재하고, 그것은 축하받아야 할 특별한 날이라고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때, 자신을 단단히 붙잡고 앞으로 끌어주는 린의 손에서 전해져 오는 따스함이, 마치 꽁꽁 얼어붙었던 기억의 강물을 녹이는 것만 같았습니다. 아주 오래전,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군가 축하를 해줬던 순간. 이노의 기억 속에 분명 그날은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이라 색이 바래버렸지만, 일렁이는 케이크의 촛불 너머로 희미하게 웃고 있던 어른들의 얼굴이. 축하한다고 말해주었던 따뜻한 목소리가. 자신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낸 순간, 이노는 린의 손에서 전해져 오는 것과는 또 다른 따스함이 가슴속에서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너 울어?”


이노는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왜 우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뺨을 타고 흐르는 그 눈물은 이상할 만큼 따뜻해서, 기나긴 밤의 외로움을 전부 녹여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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