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 밑 이노

10) 밤하늘 위로

by 동동


모두의 노랫소리가 술집의 지붕을 흔들던 바로 그 순간, 낡은 문이 열리며 찬바람과 함께 침묵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방금 전 이노와 린을 쫓던 그 남자들이었습니다. 시끄럽던 술집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순식간에 조용해졌습니다. 방금 전까지 울려 퍼지던 즐거운 노래는 끊겼고,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허공에 얼어붙었습니다. 어둠이 서서히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걸, 그곳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오직 분노에 찬 남성의 목소리만이 그 침묵을 갈랐습니다.


“찾았다.”


어둠에 휩싸인 그 남성들을 누가 섣불리 손을 댈 수 없었습니다. 술에 취해 엉겨 붙어 있던 술꾼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길을 터주었고, 그 갈라진 사람들 사이로 린은 홀로 남겨졌습니다.

이윽고 남성들 앞에는 린이 서 있었습니다.

린은 당장이라도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쥔 채, 다가오는 남자들을 노려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노의 눈에는 보였습니다. 애써 강한 척하는 그녀의 눈동자 안에서, 아주 작고 여린 불꽃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을. 자신보다 덩치가 몇 배는 큰 거인들을 상대로, 두려움이 없을 리 없었습니다. 고통은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고, 상처는 아무리 치료해도 아픈 것이었습니다.

그런 감각에 익숙해질 리 없다는 걸 이노는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린에게 서서히 다가가는 남성은 며칠을 굶주린 야수와도 같아 보였습니다. 이건 잘못된 거라고. 이대로 두면 안 된다고 이노는 생각했습니다.


“어떡하고 싶어 이노?”


그 순간 이노의 귓가에서 별조각이 속삭였습니다.


“모르겠어.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후회할 행동을 하지 마. 이노.”


그것은 경고가 아니었습니다.

이노에게 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말은 이노의 마음속에 있던 가장 깊은 용기를 끌어내는 주문과도 같았습니다. 이전에도 몇 번이고 생각했고, 몇 번이고 보았고, 몇 번이고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그 행동을 생각나게 하는 마법의 주문.


이노는 달렸습니다. 자신의 두려움을, 하지 못했던 후회를 이겨내고 발을 내디뎠습니다.

자신의 두려움을 알아차리기보다, 떨고 있는 린의 어깨가 먼저 이노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남자의 거친 손이 린에게 닿기 직전, 이노는 린의 손을 단단히 붙잡았습니다. 갇혀있던 세상에서 나온 이후, 처음으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내디딘 아주 작지만, 그 무엇보다 큰 걸음이었습니다.


“이노?”

“린 도망치자!”


두 사람은 가게를 뛰쳐나왔습니다. 이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뒤에서 들려오는 남자들의 고함은 등 뒤에 바짝 붙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노는 골목길로 달아나려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달려도 남성의 목소리가 멀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주 가까이. 아무리 달려도 멀어질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


“달려 이노!”


남자들의 손이 이노를 붙잡으려던 바로 그 순간, 야무가 검은 섬광처럼 날아올라 가장 앞선 남성의 얼굴을 할퀴었습니다.

그것도 잠시뿐이었습니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이노는 간절히 바랐습니다. 기적을. 모두를 구할 수 있는 기적을. 린또한 이노의 손을 마주 잡으며, 같은 것을 빌었습니다.


“기적을.”

지금 이 절망의 순간을 벗어날 수 있는 단 한 번의 힘을.


그 순간, 두 아이의 등 뒤를 따르던 별조각이 밤하늘의 모든 빛을 끌어모은 듯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졌습니다. 쫓아오던 남자들의 거친 고함마저 캔버스 위의 물감처럼 밤의 어둠 속으로 번져나갔습니다. 시간과 공간이 녹아내리는 듯한 기묘한 감각 속에서, 린이 놀란 눈으로 이노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두 아이의 발밑이 사라졌습니다.


“뭐야 여기는!”


야무의 비명에 이노와 린은 눈을 떴습니다. 두 사람은 하늘에 떠 있었습니다. 발밑으로는 방금 전까지 자신들을 옥죄던 어두운 골목이, 마치 장난감처럼 작아져 있었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 그 고요함 속에서 두 사람은 아주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두렵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손에서 전해져 오는 따스한 온기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밧줄처럼 느껴졌습니다. 두 사람은 하늘에서 떨어지며, 처음으로 자신들이 살던 마을의 진짜 모습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지독한 맥주 냄새와, 사람들의 웃음과 울음이 뒤섞인 노래가 바람을 타고 아득하게 올라왔습니다.


이는 어쩌면 린이 그토록 바라던 순간이 아니었을까요. 린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려, 밤바람에 흩날렸습니다. 그녀는 이 순간을, 자신을 하늘로 이끌어준 작은 소년의 손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사이 이노는 자신의 주위에 떠다니는 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별들이 남기고 간 빛은 하나의 길이 되어, 이노를 어딘가로 안내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이노는 그 빛을 따라 시선을 옮겨보니, 그곳에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뻗어있는 시계탑이 있었습니다.


다시 땅으로 내려왔을 때, 야무는 어지러운 속을 게워 내고 있었습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있을 때는 미리 말해..”


별조각은 그런 야무의 주위를 돌며, 그의 상태를 걱정했습니다.

한편 땅으로 내려온 이노와 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방금 전 자신들이 보았던 것을 다시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아무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 높은 곳에서 서로의 체온을 느꼈고 따스함을 알았습니다.

린은 저 위에서 보았던 이 마을이 얼마나 작고 좁은 곳인지 인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노는 자신이 가야 할 곳이 어딘지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고요.

두 사람은 서로의 꿈과 가야 할 길이 다른 방향을 향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이 밤이 지나가도, 방금 그 순간은 결코 잊지 못할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로가 헤어져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이별의 말을 꺼내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별을 다짐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고요. 이노는 한참을 망설인 끝에, 용기를 내어 물었습니다.


“린 나와 함께 갈래?”

“이노, 너와 함께 하늘을 날았던 순간,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정말 고마워. 하지만…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이 있는 것 같아..”


이노는 사실 대답을 듣기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린은 별조각의 도움 없이도, 이미 충분히 밝은 빛을 내고 있다는 것을. 린은 이노를 보며, 처음으로 아주 환하게 웃어주었습니다.


“다음에 또다시 만나자. 이노.”

“응. 응원할게. 린.”


린은 내일도 변함없이 저 소란스러운 술집으로 들어가, 자신의 꿈을 위해 묵묵히 술잔을 나를 것입니다. 이노는 린이 하루하루를 충실히 보내면서 결코 꿈을 포기하지 않을 걸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노 또한 다짐했습니다.

다음에 만날 때는 굳게 닫힌 창문 안이 아니라, 이 넓은 거리 위에서 다시 그녀를 만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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