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 밑 이노

11) 시계탑의 노인

by 동동


린의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이노 일행은 다시 천천히 길을 걸었습니다.

그 길의 끝에는, 마치 세상의 지붕처럼 거대한 시계탑이 서 있었습니다. 이노의 눈앞에는 어느새 넓은 공원과 시계탑이 보였습니다. 처음으로 보는 시계탑은 이노가 고개를 아무리 높게 들어도 끝이 밤하늘에 녹아들어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시계탑 주위에는 아무런 사람도 없었습니다.

시계탑에 가까워질수록 거리에 풍성했던 식물들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시계탑 주위에는 차갑게 말라비틀어진 공기만이 느껴졌습니다. 아무런 인기척도 생명력도 없는 그 주위는 마치 시간마저 잊힌 듯한 정적이 주위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그런 불길한 기운을 느낀 건 이노만이 아니었습니다.

야무는 몸을 떨고 있었습니다.


“이곳엔… 오지지 말라고 했어.”

“누가?”

“모르겠어. 하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이 탑에 가까이 다가가지 말라고 했던 기억이 남아있어.”

“돌아갈 거야?”


이노의 질문에 야무는 오히려 콧웃음을 치며, 떨리는 몸을 애써 바로 세웠습니다.


“아니, 난 너하고 같이 가기로 했잖아. 같이 가자 이노. 너를 혼자 두고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잖아. 우리는.”

“가자.”


이노와 야무, 그리고 별조각은 조심스레 시계탑의 문을 열었습니다.

시계탑 내부는 온통 멈춰버린 시간의 박물관 같았습니다. 벽이란 벽은 모두 각기 다른 모양의 시계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단 하나의 세계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 수많은 침묵의 눈동자들 가운데, 탑의 꼭대기를 향한 나선형 계단만이 유일한 길처럼 뻗어 있었습니다.

이노는 안으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 등 뒤의 문이 쿵 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닫혔습니다.

이노는 큰 소리에도 놀라지 않고, 다시 한번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들이 계단을 오를 때마다, 멈춰있던 시계들이 움직였습니다. 마치 이노의 발소리에 응답하듯 멈춰있던 시계들이 일제히 움직였고, 째깍째깍 하는 소리가 탑 안을 울렸습니다. 그 소리는 마치 망설이지 말라고, 계속해서 올라오라고 재촉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아득하게 긴 계단이었습니다. 하늘로 높게 뻗어있는 계단은 이노가 자기가 얼마만큼 멀리 왔는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밑을 내려보지 마 이노.”


이노는 야무의 말에 곁눈으로 밑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자신들이 떠나온 밤의 거리가 아주 깊은 우물처럼 까마득하게 차오르고 있었습니다. 마치 이노의 뒤를 쫓아오듯 말이죠. 이노는 맨 처음에 밤이 자신을 쫓아오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걸음을 옮겼지만, 이윽고 알았습니다.

밤이 쫓아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밤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이곳은 점점 밤에서 멀어지는 길이었습니다. 밤과 낮의 경계를 넘어, 더 높은 곳으로, 가보지 못했던 향하고 있었습니다.


계단의 끝에는 하나의 문이 있었습니다.

굳게 닫힌 문은 시계처럼 초침 분침 시침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다른 시계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에 이노는 당황했지만, 이노는 이 문을 어떻게 여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이노가 노른에게 받은 낡은 열쇠를 꺼내 문고리에 넣는 순간, 바쁘게 돌아가던 모든 바늘이 제자리에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 문이 열리고, 그 너머로 밤하늘 전체가 펼쳐졌습니다.


그곳은 시계탑의 꼭대기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시계탑의 꼭대기에는 커다란 시계가 이노의 뒤에 있었고, 그 시계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세상에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노는 탑 끝에 올라서자 마을이 다시 한번 더 보였습니다. 이노와 린이 함께 날았던 하늘보다도 높은 곳에 있는 이 시계탑에서는 마치 세상의 비밀이 전부 보일 것만 같았습니다. 저 밤 너머에 무엇이 있고, 떠오르는 태양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훤히 보이는 그런 특별한 장소라는 걸 이노는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높게 솟아있는 이곳은 마치 별이 닿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 별이 닿을 것만 같은 위치에 오자, 이노는 이 여행이 끝에 다다랐음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등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곳까지 온 사람들은 또 오랜만이군.”


목소리의 주인은 휠체어에 앉아 있는 한 노인이었습니다. 그는 이노 일행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커다란 시계의 앞에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누구세요?”

“나는 이곳에 앉아 있는 노인일 뿐이네.”

“왜 노인이 이런 곳에 있는 건데? 이노 그냥 무시해. 넌 가야 할 곳이 있잖아.”


야무는 서둘러 더 위로 올라갈 길을 찾으려 했지만, 이 주위에는 길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꼭대기를 한 바퀴 돈 그들은 다시, 노인을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왜 그리 서두르는 건가. 아직 밤이 지나지 않았거늘. 내 이야기 좀 들어볼 생각은 없나.”

“이야기요?”


이노는 재촉하는 야무를 끌어안고서는 노인의 옆에 조용히 앉았습니다.

이상하게도, 그의 옆에 앉자 마을의 풍경이 달라 보였습니다. 각각의 집 창문까지. 어디에 누가 있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알 수없을 리 없는 모든 순간들이 이노에게 보였습니다. 마치 사람들이 꾸는 꿈의 빛깔까지도 보이는 것만 같았습니다.


“나는 늘 이곳에 앉아 사람들을 지켜본단다. 수많은 사람이 태어나고, 사랑하고, 이별하며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지. 그러다 보면 알게 된단다.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를.”

“할아버지는 신인 건가요?”

“스스로를 무엇이라 부르느냐는 중요하지 않단다. 중요한 건 시간이지. 사람들은 무수한 소망을 품지만, 시간 속에서는 그 빛은 희미해지기 마련이란다. 오늘 간절했던 꿈은 내일이 되면 시시해지고, 시간이 더 흐르면 그런 꿈을 꾸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게 된단다.”

“시간이군.”


노인이 손짓하자, 동쪽 하늘에서 아주 느리게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밤과 낮이 만나는 그 경계의 순간, 잠든 마을의 지붕들 위로 민들레 홑 씨와 같은 하얀 솜털들이 무수히 피어올랐습니다.


“저건… 뭐예요?”

“너희의 눈에는 무엇으로 보이니?”


노인은 대답 대신 되물었습니다. 이노의 눈에는 그것들이 길 잃은 작은 별들처럼 보였고, 야무의 눈에는 따뜻한 우유 방울처럼 보였습니다.


“어쩌면 둘 다 맞을지도 모르지. 무엇을 어떻게 보냐에 따라, 생각하는 게 달라지는 거니까. 하지만 너희들이 기억하는 지금의 순간을 우리는 언젠가 잊어갈지도 몰라. 저것들도 그런 거겠지. 사람들이 잊어가는 거지. 잊기 때문에 살아가는 거라고들 하지만, 오히려 잊기 때문에 이 광경이 보이는 게 아닌가 싶다네."

“이것들은 어디로 가는 거야?”


지켜보던 야무가 궁금하듯 물어보았습니다.


“그건 나도 잘 모른단다. 저것들은 저 별들이 있는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땅으로 내려오게 된단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솜털에 하나씩 따스한 빛을 담아, 다시 밑으로 내려보내고는 하지. 그러다 보면 누군가는 아주 오래전 잊었던 마음을 문득 떠올리곤 한단다. 그리고 너희처럼 몇몇은 그 빛을 따라 이곳까지 찾아오게 되는 것이고.”

“그럼 우리가 봤던 그 빛들이.”

“그래 그 흔적들이지. 누군가 잊고, 기억하고, 행복했고, 즐거웠던 그 흔적들.”

“그럼 내가 뭘 바라는 지도 알고 있어?”

“당연하지. 야무. 네 주인은 너를 버린 게 아니야.”


야무는 그 이야기를 듣고 흔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야무의 바람은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는, 그가 여태껏 가지고 있는 후회이자 기억이자 그리움이었으니까요.


“정말이야?”

“그래. 내 주인은 안타깝게 자신의 이야기를 끝마쳤을 뿐. 너를 버릴 생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단다. 내 주인이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이 위에서 마을을 지켜본 나는 다 알고 있어.”


믿을 수 없는 노인의 말이라 생각했습니다.

차갑게 내다 던져진 골목 속에서 야무는 몇 번이고 주인을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버렸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고 스스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야무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길거리에서 상처를 입은 고양이에게 그토록 따스한 온기는 여태껏 느껴본 적 없는 안도나 다름없었습니다.


노인은 야무를 부드럽게 쓰다듬고서는, 뒤에 서 있는 이노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는 망설이던 이노의 두 손을 붙잡았습니다. 주름지고 마른 손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이노는 자신의 손과 똑 닮아있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노 넌 다르단다. 여태껏 왔던 사람들하고 다르지 넌. 너는 한 번도 소망을 잃어버린 적이 없었단다.”

“소망이요?”

“그래. 소망. 어쩌면 가장 잊기 쉽고, 가장 빨리 흐려지는…”


노인의 목소리는 모든 것을 아는 신의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노인의 목소리에는 슬픈 울림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노 네 탄생도 지켜봤었지. 네가 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오랫동안 지켜봤단다. 내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수많은 고통 또한 지켜보았지. 그 고통 속에서 네가 어떻게 소망을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었는지, 나는 늘 너를 지켜보고 있었단다. 결코 너는 희망을, 그리고 소망을 놓지 않았어. 절망에 빠지지 않았지. 그리고 수많은 시간이 지나 지금 네가 이 앞에 오게 되었단다.”


노인은 이노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습니다. 이노 또한 노인의 눈을 들여다보았지요. 그곳에는 그 노인이 살아 지낸 수많은 세월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후회와 고뇌, 이별과 슬픔, 고통과 절망까지. 그 모든 감정이 회오리치듯 그 노인의 몸에서 조용히 숨을 내뱉고 있었습니다.


“이노 시간은 무척이나 빠르단다. 눈을 깜빡이면 지금은 어제가 되어있을 거고, 어제는 모래가 되어 있겠지. 이노 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니.”

“어떻게라니요?”


이노에게는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다.


“넌 소망을 잃어갈지도 몰라. 네가 바라기만 한다면, 네 소망을 간직한 채 매일을 살아갈 수 있을 거야. 비록 그것이 완벽하지 않은 삶이라 하더라도. 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어떻게든 이뤄줄 수 있단다. 더 이상 상처받지 않는 삶을 말이다.”


노인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낡고 오래된 손을 펼쳐 보였습니다. 그 손바닥 위로, 마치 작은 환영처럼 이노의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피어올랐습니다. 엄마의 품에 안겨 있던 어느 봄날, 뺨에 붙은 꽃잎을 떼어주며 환하게 웃던 엄마의 미소. 그 완벽한 순간이 손바닥 위에서 영원처럼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 순간 속에서는 슬픔도, 아픔도, 시간도 흐르지 않는단다. 네가 원한다면, 너의 남은 시간을 이 완벽한 순간과 바꿔줄 수 있다.”


이노는 손바닥 위에서 반짝이는 완벽한 행복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습니다.

이노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따뜻하고, 아름답고, 그리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죽어있는 행복이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이노는 더 이상의 소망이 없었습니다. 소망. 그것은 온기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노가 늘 꿈꿔왔고, 떠올리고 간직했던 그것. 그런 소망이 있었기에 이노는 지금껏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노에게 소망이 없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고민하던 이노는 노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면, 행복한가요? 할아버지는 그런 삶을 선택하셨을 거 같아요. 그러니, 이곳에서 저를 기다리고 계셨던 거겠죠? 할아버지는 행복하셨나요?”


노인은 쉽게 답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노인은 이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네가 생각하는 행복의 답이 뭐니?”

“저는 지금을 살아가고 싶어요.”


지금. 이노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노인을 만나 이야기하는 지금, 살아 숨 쉬고 있었기에 여기에 도달할 수 있었고, 앞으로 미래에 어떤 일이 있든, 어떤 일을 겪든 이노는 지금을 살아갈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 대답에 한치의 부끄러움도 망설임도 없었습니다.


“그래. 그것이 너의 대답이라면.”


노인은 천천히 휠체어를 끌고 자리를 비켜주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의 뒤편에는, 낡고 오래된 문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문을 열 거라.”


이노는 조심히 문고리를 잡았습니다. 그러자 문 너머의 어둠 속으로, 새하얗고 투명한 계단이 별빛처럼 빛나며 더 높은 곳을 향해 이노를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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