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3일, 꾸준하게 남산을 오르면 건강 회복에도 좋고, 정서적으로 좋을 거 같다는 생각에 무작정 남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주 1회를 목표로 눈이 와도 비가 와도 간다라는 강한 포부와는 다르게 몇 주간 가지 않을 때도 있었고, 심지어 근처까지 갔다가 오르기 싫어서 집으로 향한 적도 여러 번이다. 정말 한 시간만 꾹 참고 천천히 오르면 되는 이 길을 포기한다면, 내 삶의 제대로 이룬 것이 없어 보임과 동시에 초라해 보일 것만 같았다. 싫어도 그저 묵묵히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꾸준히 오르려고 노력했다. 오늘은 오르지 못했다고 좌절하지 않았다. 내일을 꼭 오르겠다고 나 자신을 다독이면서 1년 2개월이 흐른 지금, 못해도 일주일에 2번 이상 남산을 오른다. 나는 남산을 오른다. 출근 전이나 퇴근 후, 혹은 주말 새벽에 나는 남산을 오른다. 체중 감량을 목표로 오르던 남산은 이제 하루를 시작할 때, 하루를 마감할 때, 그리고 내가 위로받고 싶을 때 등, 다양한 순간 나와 함께하고 있었다. 내가 남산을 올랐다는 것을 기록하기 위해 똑같은 자리에 찍었던 150번의 순간을 보며 내가 똑같은 남산을 오르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날씨가 변하기도 했고, 사람이 붐비기도 했고, 더 나아가 산책로가 바뀌기도 했다. 다양한 남산을 나는 매일 오르다 보니 인생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포기, 좌절, 그리고 우연
무리하고 무식하게 일만 하던 나의 20대는 지금의 나에게 값진 경험과 지혜를 줬지만, 모든 일에 대가가 따르듯 나는 건강과 열정을 잃었다. 한창 일을 할 나이에 누워서 재활을 받기도 했고, 직업적인 좋은 기회도 결국 망가진 허리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내려놓아야 했다. 20대에 고생하며 온몸으로 부딪치며 배운 분야에서 준전문가적 지식을 쌓았고, 내 실력을 뽐낼 준비가 된 시점 나는 무너진 것이다. 4, 5년간 준비한 내 커리어를 내려놓으면서 난 실패한 인생이라고 낙인찍고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
우연이 때로는 삶의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 어느 날 새벽에 우연히 본 공고에 무턱대고 지원했고, 임시직, 계약을 거쳐 정규 사원으로 새 분야에 적응하고 있다. 건강도 많이 회복하면서 하루하루 감사함을 가지고 살았지만, 제대로 내 삶에 이룬 것이 없어 보여 초라해 보였다.
작은 습관의 시작
미 해군 대장이었던 해군 대장 윌리엄 맥레이븐의 스피치를 우연히 보며 감명받았던 내용이 있다. 모든 일의 시작은 이불을 개면서 시작된다고 말씀하셨다. 무언가 큰일을 이루어야만 성취했다고 할 수 없고, 가장 기본적이고 어렵지 않은 일부터 꾸준히 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고 나는 남산 오르는 걸 목표로 삼았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여러 번 쉬어가며 겨우 오르던 남산이었다. 수없이 포기하고 싶었고, 주저앉고 싶었다. 어렵지 않은 이일도 하지 못한다면 다른 것도 똑같을 것만 같았다. 일주일만 해보자 하루만 더 해보자 꾸준하게 오르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쉬지 않고 남산을 오르게 되었다. 내 앞에 놓여있는 남산 계단만 보였던 나날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앞이 보이고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야가 넓어지면서 풍경을 보게 되고 나 자신을 돌아보며 나를 재정비하는 시간까지. 치열하게 살아온 나를 잘 다듬어주는 시간이 되었다.
같은 곳이지만, 남산은 늘 달랐다.
남산이 보이는 똑같은 장소에서의 사진촬영은 묘하게 큰 위로가 되었다. 안개가 끼어 보이지 않는 남산, 눈이 쌓인 남산, 화창한 남산, 비바람으로 희미하게 비 오는 남산, 수없이 다양한 남산의 사진을 보며 마치 인생 같다고 느꼈다. 같은 곳이지만, 다양한 상황이 있는 것처럼, 내가 처한 상황도 곧 지나갈 거라고 요동치던 내 마음은 전보단 잠잠해졌다. 남산을 오르는 것 마치 삶을 살아가는 것 같다. 칠흑같이 어두워 보이지 않아도 정상이 어디인지 알기에 묵묵히 오른다. 무더위에도 묵묵히 오르다 보면 늘 마주치는 그 남산에 내가 서있다. 어쩌면 인생에서 '묵묵히' 나아가는 것이 하나의 정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