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숲.
비가 추적추적 많이 내리는 날.
강변 동서울 터미널에서 출발 5분 전 표를 사서 급히 타고 동생과 경주에 이어 양양으로 두 번째 여행을 떠났다. 바닷가 지역에서 만나는 고즈넉한 숙소.
주변에는 가정집 몇 개만 자리한 위치의 숙소.
흔히 생각하는 양양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어울리지 않은 그런 숙소.
간판 하나 없어 들어가는 입구조차 헷갈려
남의 집으로 들어가는 뻔뻔한 당당함까지 갖게 하는
두 번의 숙소 찾기 실패 후
세 번째 시도 끝에 찾아낸 숙소
숙소의 주인장 분이 우산을 쓰고 나오셨다.
헷갈려하시는 것 같다며 나오셨다고 조심스레 이곳에 온 게 맞냐는 물음에 나는 기다렸다는 듯 네. 맞아요. 대답을 했다
친절한 안내 덕분에 수월하게 들어온 숙소 안
현관을 통해 들어오면 맞은편에 침대가 보이고
침대 옆으로 숲이 보이는 통창의 뷰
고개를 살짝 돌리면 두 권의 책이 나란히 꽂혀 있는 책장과 인샌스를 피울 수 있는 홀더가 올려져 있다.
안쪽에는 화장실과 건식세면대 그리고 자쿠지 욕조까지 갖추고 있는 숙소.
완전한 고립을 위한 맞춤형 장소.
책을 위한 공간.
쉼이 목적이 되는 장소
내향인을 위한 공간
언어가 정적과 고요를 위해 잠시 자리를 내어주는 곳.
빗소리와 음악 소리가 전부인 곳.
시간이 멈춘듯한 공간.
정적인 공간이 주는 마법 같은 힘.
우린 4시 정도가 되서야 늦은 점심을 먹었고
커피를 마시며 책장을 빠르게 넘긴다.
어느새 절반까지 읽어 내려갔다.
그 중 오늘의 마음과 똑 닮은 시를 발견했다.
•
처음 가는 마을
처음 가는 마을로 들어설 때에
나의 마음은 어렴풋이 두근거린다
국숫집이 있고
초밥집이 있고
청바지가 걸려 있고
먼지바람이 불고
타다 만 자전거가 놓여 있고
별반 다를 것 없는 마을
그래도 나는 충분히 두근 거란다
•
낯선 산이 다가오고
낯선 강이 흐르고
몇몇 전설이 잠들어 있다
나는 금세 찾아낸다
그 마을의 상처를
그 마을의 비밀을
그 마을의 비명을
•
처음 가는 마을로 들어설 때에
나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떠돌이처럼 걷는다
설령 볼일이 있어 왔다고 해도
이바라기 노리코 <처음 가는 미을>
*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음악이 흐르고
우산이 놓여 있고
읽을 책이 있고
몇몇 시가 살아나고
그래서 나는 충분히 두근거린다
처음 가는 마을로 들어서는 일은
언제나 두근거리고 설레는 일
우산을 손에 꽉 움켜쥐고
열심히 발걸음을 재촉한다
설령 갈 곳 이 없다고 해도
이 마을 이 도시
이 공간 이 순간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
잠들어 있던 여행 가방을 깨우고
머나먼 곳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고
처음 가는 마을로 입성
*
그곳은 언어가 달아나는 마을.
그곳은 언어가 잠드는 마을.
음악을 길잡이 삼아
울창한 책의 숲으로 들어간다
아름다운 언어의 숲으로 들어간다.
다시 언어가 살아난다.
책장 사이를 날아다니는 비밀스런 그림자 하나
고요와 언어사이를 넘나들며
12월의 얼굴
비와 눈
자연과 사람
그리고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