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지만 또 만나자 꽁이야!”: 갑작스러운 이별
<김녀사네 장미 친구 꽁이 이야기>
“갑작스럽지만 또 만나자 꽁이야!”
:갑작스러운 이별
장미는 감사하게도 강아지 친구들이 많습니다.
나이가 어린 동생들도 있지만, 그보다 형님 강아지들이 더 많지요.
꽁이도 그중 한 명으로, 아홉 살이었던 형님 강아지였습니다.
꽁이의 보호자는 중학생 시절부터 이어진 오랜 친구라, 꽁이의 퍼피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연스럽게 함께 시간을 나눠왔습니다.
사랑하는 반려견을 떠나보내는 일은 언제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노환으로 이별을 맞이하는 것도 충분히 슬프지만, 예고 없이 찾아오는 갑작스러운 이별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죄책감과 상실감을 남깁니다.
오늘은 아홉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꽁이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보려 합니다.
꽁이 어머니, 꽁이와 처음 만났던 순간과 함께 지낸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꽁이를 처음 만난 날, 꽁이는 우리를 보자 너무 신이 나서 방방 뛰었어요.
그 모습에 우리는 수많은 강아지들 사이에서 꽁이라는 솜뭉치를 데려오게 되었죠.
저는 마당이 있는 집에서 자라 마당개는 많이 키워봤지만, 꽁이는 제 손으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첫 반려견이었어요.
꽁이를 데려온 이후로 책도 보지 않던 제가 책과 유튜브를 찾아보며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첫 아이를 낳았을 때처럼 공부하며 애지중지 키웠던 것 같아요.
남편과 제가 출근하면 꽁이는 퇴근 시간까지 혼자 있어야 했어요. 아이를 낳고도 설치해본 적 없던 홈카메라를, 꽁이를 위해 설치하기도 했죠.
그만큼 꽁이는 우리에게 지키고 싶은 보석 같은 존재였습니다.
꽁이와 함께한 기억 중 특히 마음에 남는 순간이 있을까요?
꽁이와는 분리수면을 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늘 같은 베개를 베고 잤습니다.
꽁이가 자기 엉덩이를 우리 얼굴 쪽으로 바짝 대고 자던 모습이 지금도 자꾸 떠올라요.
꽁이는 특별한 존재라기보다, 그냥 우리 일상의 일부였습니다.
이별을 앞두고 이상 신호를 느꼈던 순간이 있었나요?
늘 통통했던 꽁이가 한 달 사이에 체중이 눈에 띄게 빠졌어요.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이미 아팠던 것 같아요.
사람 곁을 무척 좋아하던 아이였는데, 죽기 이틀 전부터는 어둡고 조용한 곳에 혼자 있으려 했습니다.
폭신한 곳으로 옮겨줘도 힘든 몸을 이끌고 다시 어둡고 조용한 곳으로 들어가더라고요.
급성으로 진행된 신부전증이었고,
수술 날짜를 이틀 남긴 상태에서 꽁이는 무지개다리를 건넜습니다.
병원 방문과 마지막 순간을 지나며 가장 강렬했던 감정은 무엇이었나요?
꽁이가 아팠던 것이 제 탓이었을까요?
전부 제 잘못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저는 아픈 아이를 지켜보며 제 모든 행동을 되짚어보았답니다.
슬픔보다도 죄책감이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죄책감은 의사 선생님을 향한 원망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저는 꽁이의 슬픔을 애도하기보다 병원에서 진행한 수 많은 검사들 속에서 분노할 대상을 찾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저의 오만함이였을까요.
포메라니안이라는 견종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슬개골 외의 다른 가능성들은 미처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꽁이를 떠나보낸 뒤, 우리가 놓친 것이 있었다는 죄책감이 우리 가족을 더 깊은 상실감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꽁이를 떠나보내며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 있다면요?
꽁이의 죽음은 너무 갑작스러워서, 우리는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어요.
이별 이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장례는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막막함 속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사랑하는 아이를 잘 보내기 위해서는, 미리 죽음과 이별에 대해 생각해보는 연습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요.
꽁이의 빈자리를 마주하며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저는 꽁이의 물건을 비교적 빨리 정리했어요. 남겨두는 것이 더 힘들었거든요.
떠난 반려견의 물건을 간직하는 분들도 있지만, 저에게는 모든 것이 슬픔으로 이어졌습니다.
꽁이가 떠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꽁이가 머물던 자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여전히 눈물이 납니다.
그러나 물건을 정리했다고 끝난 게 아니었어요.
꽁이와 함께했던 시간은 이미 제 일상이 되어 있었고, 모든 것에 꽁이가 남아 있었습니다.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순간에도 눈물이 차오릅니다.
장례를 앞두고 남편이 꽁이의 털을 조금 남겨두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지만, 그때의 저는 아무런 판단도 할 수 없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꽁이의 털을 남겨두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그 부드러운 촉감이 지금은 너무 그립거든요.
시간이 지나며 꽁이에 대한 슬픔은 어떻게 변하고 있나요?
아직은 꽁이 이야기를 오래 하지 못할 것 같아요.
이야기할 수 없어요.
그냥 ‘꽁이’라는 이름만 불러도 마음이 무너집니다.
보고 싶어요.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