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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선생이다

손절

by 에이프럴

댄스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남편을 만났다.

우연히 만나니 더 반가운 사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집에 다 와 갈 무렵 낯익은 여자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앗!!! 쪼물쟁이 선생님 아니세요?"

머리로 생각도 하기 전에 입에서 먼저 말이 튀어나왔다.

"누구... 시죠?"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그녀에게

"아... 예전에 선생님께 쪼물쟁이 수업 들었던 아이 엄마입니다. 아이들도 많이 컸죠?"

"아! 안녕하세요? 네! 많이 컸어요."

"이 동네로 이사 오셨나 봐요?"

"네 저쪽 아파트에..."

그녀는 길 건너편 아파트 단지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 끝을 흐렸다.

그 순간 나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가 나와 말 섞는 걸 불편해한다는 것을......

흐지부지 안부를 묻고 그녀가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씁쓸해하고 있을 때

"당신은 오지랖 그만 부려라! 반가워하지도 않는구먼 뭐 하러 아는 체를 해가지고는... 쯧!!"

하고 남편이 한마디 했다.

누가 이럴 줄 알았냐고?

시무룩해하는 내게 남편이 누군데? 하고 물었다.

"아! 우리 예전 L아파트 살 때 알고 지낸 공부방 아줌마, 환이 무료로 공부도 봐주고 클레이 선생님이기도 했고..."

"......"

"이사 올 때쯤 내가 손절당했어....... 연락했는데 씹더라고......

처음엔 나를 그렇게 좋아하더니.... 맨날 장바구니 한가득 나에게 선물도 많이 줬는데..."

"당신이 말을 잘못했겠지! 맨날 그러잖아!"

"그래... 그렇겠지? 뭔가 서운한 게 있었겠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그녀가 어느 부분에서 서운했는지, 나의 어떤 점이 불편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짐작만 할 뿐...

그녀는 처음에 나를 언니언니하며 정말 잘 따라었다.

아이가 네 명이나 되는 그것도 세 살배기 아이를 데리고 자신의 집 방한칸을 클레이교실 겸 공부방으로 운영하던 억척스럽던 여자였다.

하루를 분단위로 쪼개어 살만큼 계획적인 사람

아이들 선행학습은 필수인 교육에 진심인 사람

놀아도 어차피 시간은 가니 뭐라도 배우는 게 낫다는 치열한 사람......

나와는 정반대의 성향이란 건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며 차츰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나를 이상화했던 걸까?

그러다 평가절하하게 되었나?


그녀가 나를 손절하는 방식은 내가 손절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어떤 인연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나는 직감적으로 그 사람을 평가한다. 많이 겪어 보지도 않은 채

관계를 계속 이어갈 사람으로 판단이 되면 그 사람은 내게 이상화되어 결함 없는 존재가 된다.

집으로 초대하기도 하고

선물공세도 하고

상대의 필요한 부분을 헤아려 도움주기도 하면서

친밀해지기 위한 노력에 온 에너지를 쏟는다.

그러다가 좀 더 친해졌을 때 알게 된 나와는 너무 다른 가치관, 삶의 방식, 행동과 말 등에 상처를 크게 받고 관계를 끊는다. 어떤 설명도 없이....


그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나며 손절하기도 하고 손절당하기도 하면서 내가 관계 맺는 방식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언제나 외로웠고 관계에 대한 갈증으로 성급했다.

적당히 거리 두는 걸 몰랐으며 좋은 사람이다 싶으면 엎어졌다.

그 사람 실체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나 혼자 높였다가 내팽개치곤 했다.

이제 좀 더 나에게 집중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내가 건강하게, 단단하게 바로 서 있으면 나에게 걸맞은 누군가가 다가올 거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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