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가을을 느끼기 좋은 날씨였다.
점심식사를 마친 영주와 혜순은 노란 은행잎이 융단처럼 쌓인 거리를 느긋하게 걸었다.
"영주언니!
이 책 뭐예요?"
아까부터 궁금했던 종이가방을 열어보며 혜순이 물었다.
"청림! 브런치작가 되었다며?
고전 명작이 좋을까 이게 좋을까 고민하다 이걸로 골랐어!"
"올해 <젊은 작가상수상작품집>이네요!
아유 너무 고마워요!
책 잘 읽을게요."
"청림은 아이들도 다 컸는데 일은 계속 안 할 작정이야?"
"이력서를 몇 군데 내긴 했는데 연락이 없네요.
호호호
그냥 살림하고 취미로 간간히 글이나 쓰죠 뭐!"
혜순과 영주의 인연은 서예교실에서 만나 16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혜순이 서예교실에 처음 발을 들일 때 영주는 총무를 맡고 있었는데 워낙 다정한 성격이라 신입회원 입장인 혜순은 전적으로 영주에게 의지했었고, 19살 나이차이에도 문학이라는 공통분모는 둘의 우정을 더욱 돈독히 하기에 좋았던 것이었다.
혜순을 여전히 청림(아호)이라고 부르는 영주를 혜순은 참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오랜만의 외출이라 피곤이 몰아쳐오는 걸 느낀 혜순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침대에 곯아떨어졌다.
얼마나 잤을까?
밖이 어스름해져 오는 것이 보였다.
휴대폰을 열어보니 저녁 6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모르는 번호의 부재중 전화 1 통과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김혜순 선생님
링고결혼정보회사 나냉정 상무입니다
우리 회사에 입사지원서 내주셨죠?
면접 일정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문자 확인하시면 연락부탁드립니다 ]
'엉?
이 회사에 이력서 낸 지가 언젠데 왜 이제 연락 오는 거지?
혹시 스팸인 건가?'
의심을 떨치지 못한 채 혜순은
전화를 걸어보았다.
몇 번 신호음이 울린 후 그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김혜순이라고 합니다.
부재중 전화가 있어 연락드렸습니다."
"아! 김혜순 선생님이신가요?
저는 링고결혼정보회사 나냉정상무입니다.
내일 면접 보러 오실 수 있을까요?
시간은 오전 11시입니다.
위치는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지원서를 낸 건 맞는데 오래되어서 잊어버리고 있었네요.
약 두 달이 넘었죠?
그때는 그 일이 하고 싶었는데 막상 하려니까 제 역량이 될까 싶네요."
혜순이 주저하며 망설이자
나냉정상무는
"자기소개서 보니까 일 잘하시겠던걸요."
브런치작가로 활동해 온 지 2년이 다 되어 가는 혜순에게 자기소개서는 식은 죽 먹기였다.
그 회사가 요구하는 역량을 강점으로 내세우며 적당한 자신감과 성실함을 섞어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면 웬만한 서류통과는 쉽게 이루어지곤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찾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조금 있으니 문자가 울렸다.
사무실이 시내 중심가 메디컬빌딩에 있다는 안내였다.
혜순은 급히 링고결혼정보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업계 1위라는 타이틀의 광고가 눈에 확 들어왔다.
상담매니저가 하는 일과 연봉소개 영상을 두세 편 보고 나니 더 확신이 들었다.
'그래 이왕이면 대형 결혼정보회사에서 일하는 거야!'
혜순은 기대와 설렘으로 가슴이 빠르게 뛰어오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