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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엠 그라운드 자기소개 하기!
아! 이거 또 시작이구나

추억의 자기소개 게임... 어떤 진심이 담겨져 있는걸까?

by 관돌

머리가 쭈뼛쭈뼛 서고,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러넘쳤다.

쿵쾅쿵쾅... 귀가 따가울 정도로 심장박동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부로 ㅇㅇ부에 전입 온 관돌대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신규 입사나 발령은 한두 번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그 첫날은 꽁꽁 언 얼음장같이 긴장상태다.

아는 사람이 있건, 없건 간에 그 낯선 분위기에 적응하는 건 나에겐 쉬운 일이 아니다.

좋은 이미지를 선보이기 위해 새로 산 와이셔츠는 어느 순간부터 축축이 젖었음이 느껴졌다.

아마 지금 여기 서 있는 내 모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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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인사를 마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앞으로 함께 일하게 될 동료들이 나를 포함해 새로 전입 온 직원들을 위해 환영의 박수를 쳐주고 있었다.

그제야 주변의 모습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상사 분을 비롯해 동료 한 분 한 분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며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건넸다.


이 시간은 길어야 오분 내지 십분 정도 밖엔 되지 않았지만, 내겐 최소 몇 시간은 걸린 듯 힘겨운 순간이었다.

인사를 마친 후, 드디어 사무실 한편에 마련되어 있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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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썩... 휴~ 이제 다 끝났네! 두 번 발령 났다간 진짜 쓰러지겠네!'


그러나 다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잊고 있었다.

바로 지사장님과의 면담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 맞다... 이게 또 남아 있었네? 메인이벤트...'

'무슨 말을 해야 되나?'

'제발 같이 오신 분 중에 얘기하는 거 좋아하시는 분 있으면 좋을 텐데...'

단체로 들어갈 때, 누군가 옆에서 쉼 없이 얘기를 해주면 조용한 나로서는 완전 땡큐라는 생각에.


행정팀장님의 안내로 우리는 지사장님 방으로 들어갔다.

"ㅇㅇ지사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자! 편하게 앉으세요."

얼굴은 분명 웃고 있지만, 마음은 여느 때보다 불편했다.

'포부를 물어보실 건가? 결혼여부? 왜 아직 결혼을 안 했다고 또 물어보실 건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솔직히 발령은 어쩔 수 없다. 인사규정에 따라 나는 거니깐...

그런데 이런 형식적인 소개시간은 정말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게 나의 작은 소망이었다.

그냥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알아가는 게 좋은데... 소심한 성격의 나에겐 말이다.

물론 지사장님 입장에서 본다면 권위를 내세우기 위함이 아니라 어쩌면 당연한 자리이기에 이해는 되지만,

남 앞에 나서거나 아직 친하지도 않은 사람과의 마주함은 정말 곤혹스러움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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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시작되었다.

간담회 형식이 아니었다. 한 사람씩 순서를 정해 돌아가면서 인사를 하는 방식이었다.

'아~~~'

이건 첫 스타트를 누가 어떻게 끊느냐에 따라 상황이 완전히 달라지는 게임이다.

이 순간 또 한 번 혼신을 다해 기도해 본다. 이번 기도는 방을 들어오기 전과는 정반대 되는 내용이다.


'제발... 첫 번째 소개하시는 사람이 말수가 없는 분이시면 정말 좋을 텐데...'

'제발 짧게 해 주세요... 플리즈...'


"안녕하십니까. 전 홍길동입니다. ㅇㅇ지사에서 ㅁㅁ업무를 3년간 맡아왔고, 작년에 과장으로 승진했습니다.

이번에 오게 된 ㅇㅇ지사 소문으로 듣기엔 지사장님 인품도 훌륭하시고, 일하기 좋은 곳으로 이미 소문난 것

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말 제가 운이 좋은 건지 원하는 곳에 발령이 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앞으로 지사장님 이하 여러 동료분들과 함께 더 좋은 지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직원이 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IC...망했다.

'저 과장님 이번에 선거에 출마하시는 건가? 왜 저렇게 말씀을 잘하셔?'

'근데... 배려심은 부족하네. 저렇게 혼자 좋은 말을 술술 하시면 뒷사람은 무슨 말을 하라는 거지?'

더군다나 난 전입 온 다섯 명 중 젤 마지막 자리에 앉아있었다.

두 번째, 세 번째 계속 인사는 이어져갔다. 첫 번째 과장님 소개 이후론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전부 귓등에서 튕겨져 나갔다.

'관돌아! 생각을 하자! 너 뭐라고 소개할 건데?'

갑자기 들려오는 박수소리... 그리고 익숙한 이름이 호명되었다.


"다음! 관돌대리님!"

"아.. 네!"

"소개 부탁드려요. 편하게 해 주세요. 앞에 분들이 너무 잘하셔서 긴장되시죠?"

"아... 네.. 아니, 아닙니다."

'뭐라는 거야? 긴장이 된다는 거야? 괜찮다는 거야?' 나도 헷갈렸다.


입을 떼려는 그 순간...

지사장님께서 먼저 선수를 치셨다.

"이제 관돌 대리님이 마지막이죠? 앞에 분들 다 재밌게 해 주셔서 그런지 많이 부담되시는 건 아닌가요?

괜찮아요. 그냥 편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그래도 마지막이라 그런지 기대는 해봐도 되죠?"


이 무슨 개똥 같은 말씀이신지?

부담이 되니깐 편하게 말하라면서 무슨 기대감까지 갖고 계신다는 거지?

분명 이 자린 면접도 아니었다. 말실수를 한다고 해서 합격의 당락이 결정되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편하게 말해도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그 순간의 분위기가 결정될 뿐이다.


"음... 안녕하십니까! ㅇㅇ지사에서 온 관돌대리입니다. ㅇㅇ업무를 담당해 왔고, 아직 이곳이 익숙지

않아서 많이 긴장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기대감을 저버리고 짤고 간략하게 끝내버렸다.

무슨 말을 더 보태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고, 지사장님의 뭔지 모를 기대감을 애써 충족시켜 드리고 싶은

생각도 애초에 없었다. 왠지 이 상태에서 말을 더 길게 했다간 오히려 실수를 할 것 같았다.


'설마 이게 다야? 끝이라고?' 라며 따가운 눈총과 레이저가 눈앞에 아른거리기도 했지만, 무시해 버렸다.

그리고 잠깐의 정적이 흐르긴 했지만, 예의상 그들은 나의 인사에 대한 화답의 박수를 쳐주셨다.

감사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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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사에 오신걸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재밌게 잘 지내봅시다!"


이젠 진짜 다 끝났다. 메인이벤트까지!


그리고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의자에 걸쳐 두었다. 다행히 와이셔츠는 실제 축축하진 않았다.

아마 심리적인 긴장감 탓에 그 찝찝한 촉감을 혼자만 느낀 듯했다.


낯선 공간, 새로운 동료들... 그리고 처음 맡게 된 업무.

긴장감이 높은 나로서는 겉으론 내색하지 않았지만, 피로감이 극에 차오른 상태였다.

퇴근 시간까지 누군가에겐 정말 멀뚱멀뚱하고 어리바리해 보였을 진 모르겠지만,

나에겐 정말 전쟁이 터진 것 마냥 치열하고 무서운 하루였었다.


이는 불과, 약 일 년 전 내가 실제 겪었던 상황이었다.

3년간 일했던 곳에서 또다시 발령을 받아, 익숙한 지역으로 왔지만 근무지는 처음 와 본 낯선 곳이었다.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다.

긴 시간도 주지 않는다. 또한 한정된 시간이기에 길게 얘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스스로 드러내는 성격이 아니기에 몇 번을 경험해 봐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일인건 확실하다.


'아엠 그라운드 자기소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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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친구들과 박자에 맞춰 손짓, 몸짓을 곁들이며 했었던 그 게임.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게임 속 나 또한 누군가에게 내 이름이 불려지는걸 속으로 꺼려했었다.

박자에 맞춰 손짓과 몸짓을 해야 되는 것도 어려웠었고, 그 보단 여러 무리 중에 순간일지라도 나를 드러내는

행위 자체가 싫었다. 그런 탓인지 게임 내내 긴장을 했었던 기억이 있다.

겉으론 웃으며 함께 했었지만, 진심으로 웃고 즐기지 못했던 그 추억의 게임.


지금도 남들에게 나를 소개하는 상황이면 웃기는 말이지만, 자동적으로 머릿속에서 그 리듬을 흥얼거린다.

"아엠 그라운드 자기소개 하기~~"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공개적으로 자신을 잘 드러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하는 반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나와 같은 곤혹스러움을 주는 게임인 것 같다.


그러나 곤혹스럽다고 해도 이젠 어쩔 수 없다. 그렇게만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기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항상 누군가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

그게 바로 동물과 다른 인간의 삶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나다움을 가장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그런 문구나 문장 하나쯤

미리 생각해 보는 것이 이제야 드는 생각이지만

어쩌면 나를 위해 더 이롭겠다는 결론을 가져보게 되었다.


일 년 후, 삼 년 후... 십 년 후에도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하는 일은 또 있을 테니깐..

기왕 해야 되는 일이라면 우물쭈물하기보단 더 멋진 표현을 찾는 게 나은 일이겠지?

나를 위해서도... 그리고 기대감을 가지고 듣는 그 누군가를 위해서도 말이다.


어쩌면, 이 게임이 말하고자 하는 숨은 그 의도는...

짤지만, 임팩트 있게 어느 순간에도 긴장하지 않고

나 자신에 대해 표현해 볼 수 있는 연습의 장을 미리 만들어 주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아엠 그라운드 자기소개 하기! 멋쨍이 관돌!"


이렇게 당당히 웃으며 나 자신을 표현해 볼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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