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
위 내용은 양심[良心]의 사전적 정의를 나타낸 것이다.
일상 대화에서 '양심'이라는 단어는 종종 사용되는 편이다.
무언가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인지한 경우, "양심의 가책 느끼지 않아?"
옳고 그름에 대해 선택을 해야 되는 상황인 경우, "너 양심에 맡길게!"
잘못된 행동에 대해 지적을 하는 경우, "양심이 없네!"
이 보다 더 많은 표현들도 있겠지만, 솔직히 현재 떠오르는 것들이 여기까지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필자와 비슷한 또래인 40대 전후의 사람들에게 양심이라는 단어를 뇌리에 각인시킨 인물은 아마도 개그맨 이경규 씨가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국민학교 시절 도덕 아니, 부모님께 먼저 양심에 대해 배우고 자란 게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다수의 대중들에게 임팩트 있는 영향력을 끼친 건 앞에서 언급한 이경규 씨라 생각된다. 당대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한 코너에서 진행된 '이경규가 간다! 양심냉장고'는 다수의 국민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양심을 지켜나가는 모습을 보여준 프로그램이다.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이 프로는 1996년 11월 3일부터 1998년 12월까지 진행되었는데, 주된 내용은 당시 우리나라의 운전 문화는 매우 후진적이었고, 교통 법규 준수도 미흡했다. 이에 쌀집아저씨로 불리던 김영희 PD는 교통 단속이 없고, 운전자가 교통 규칙에 무관심해질 만한 야심한 시간대를 골라 임의의 도로에 잠복하여 안전선 지키기 또는 안전 속도 주행 등의 기본적인 교통안전 규칙을 지키는 차량에 대해 냉장고 한 대를 준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이다 [출처. 네이버 나무위키> 양심냉장고>1. 개요 중]
기획은 했지만, 당시 방송국 PD들의 의견도 분분했다고 한다.
'과연 아무도 보지 않는 심야시간대에 신호를 지키는 사람이 있을까?'
시청자들은 편집된 내용만을 보기에 길어야 30분 내외로 결과를 확인해 볼 수 있지만, 실제 촬영팀들은 이 장면을 찍기 위해 최소 하루 이틀은 밤을 지새워야 했다고 한다. 다행이라고 해야 될까?
첫 방송부터 주인공이 나타났다. 거의 촬영이 끝나갈 때 즈음해서.
새벽 4시 13분쯤, 파란색 티코 한 대가 남들은 다 지나가던 횡단보다 앞을 지나가지 않고 일단정지를 했고, 신호와 함께 정지선을 지킨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기에 제작진 또한 얼떨떨했다고 한다. 그리고 신호가 바뀌고 차는 출발했고, 제작진은 놓칠세라 그들을 쫓아 멈춰 세웠다. 카메라 플래시에 당황한 운전자는 차문을 열고 내렸다. '왜 신호를 지켰나요?'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운전자는 무덤덤했다.
"내... 가.... 늘.... 지켜요."
단, 한마디였다.
이 방송은 예능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각종 언론은 물론, 지금처럼 유튜브나 SNS 매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얻게 되면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질서, 공중도덕에 대해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방송이 시작되고 3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우리 사회는 양심적인 사회로 거듭나고 있을까?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분명 양심적인 사회로 변모해 왔다고 생각된다.
양심이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누군가 강요해서 지키는 것이 아닌 개인의 판단에 의해 지켜지는 것이기에 기준도 개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양심적인 사회'라는 정의 또한, 어떤 것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틀 전, 일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좀 많이 놀랐었다.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기에...
퇴근을 하고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때 즈음, 편의점에서 교복을 입은 남학생 두 명이 대화를 하며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때까지는 특별한 게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거쳐간 길에 꽤 큼지막한 흔적을 두고 지나갔다.
'어! 저게 뭐지?'
뒤돌아 보니 이미 그들은 저만치 멀어진 후였고, 전혀 개의치 않고 자연스럽게 걸어가고 있었다.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분명 한 명의 손에 과자가 들려져 있었고, 바닥에 떨어진 건 그 과자 봉지였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니 이뿐만 아니라 속에 있는 봉지도 뜯어서 버린 상태였다.
'아... 이렇게 밝은 대낮에 저 큰 쓰레기를 이렇게 버리고 간다고?'
'그것도 교복을 입은 상태로? 이렇게 큰 길가에?'
꽤 오랜만에 본 광경이다. 솔직히 담배 피우는 어른들이 꽁초를 버리는 건 자주 보는 모습이라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걸 봐도 크게 개의치 않는 편인데. 하지만 이런 경우는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괜히 당황스러웠다.
딱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니 큰 이유 중 하나는 그 친구의 너무 자연스러운 행동 때문이었을 것이다.
과자를 뜯고, 자연스레 길바닥에 놓아 버리는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정말... 양심의 가책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모습이었다.
분명 아는 친구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의 그런 모습에 실망감이 꽤 컸었던 것 같다.
(원래 나도 이런 행동을 하는 편은 아니지만, 쓰레기를 주워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내 시선이 닿은 곳...
그로 인해 또 한 번 당황스러운 장면이 연출되었다. 길 건너편이었다.
거기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든 청소부 아저씨가 계셨다. 이 날은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열심히 빗질을 하며 빠른 걸음으로 쓰레기를 치우고 계셨다.
웃긴 상황이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열심히 버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열심히 쓸어 담고 있었다.
같은 공간이지만, 서로 상대방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하는 게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분명 그 학생도 습관적으로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싶다.
'단지, 순간의 실수였겠지?'
양심.
지키는 것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일상에서 양심을 지키는 행동은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최소한의 것들은 지켜 나갈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성숙도는 분명 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사회법규와 도덕을 준수하는 수준 또한 높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개인의 삶에서 조금만 더 불편해지고,
나 보다 너를 위해,.. 우리를 위해...라는 배려심을 가져본다면,
지금보다 또 한 단계 더 성숙해질 수 있지 않을까?
괜히 사소한 경험 따위를 가지고, 마치 우리 사회가 비양심적인 것 마냥 너무 큰 일로 확대 해석 하는 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과거보다 현재가, 현재보다 미래가 더 깨끗하고 밝아지면 좋을 것 같은 기대감이 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