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더워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찰리의 중학교를 어디로 갈 것인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찰리가 다시 도시로 갈 것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이 궁금한 것만큼 나도 궁금했다. 양양에서 찰리의 중학교 생활을 보내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다. 과연 1년 뒤에 찰리는 어디에 있게 될까? 나의 고민 끝에 답은 6학년을 보냈을 때 어디로 가더라도 상관없을 만한 것을 해보자!로 생각했다. 특히나 내가 찰리를 데리고 도시에 있었더라면 하지 않았을 그런 일을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그리고 궁리 끝에 찰리에게 제안한 것은 '90일 작가 되기'였다. 90일 만에 자기 책을 자기 손으로 만드는 프로젝트에 참여시키고 싶었다. 책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고, 무엇보다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써야 하는데 가능할지가 물음표였다. 혼자서 일주일정도 고민의 시간을 보냈다. 괜히 이야기를 꺼냈다가 서로 짜증만 내고 결국 책도 못 내게 되는 것은 아닐지? 그럴 것이라면 시작조차 안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자료들을 찾아봤다. 초등생이 혼자서 책을 쓴 경우가 있을까? 출판사에서 내주거나 자비출판이 아니라 자가출판으로 가능할까? 자가출판이라면 어디까지 가능할까? 여러 고민 끝에 90일 작가 되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가장 걱정되었던 글쓰기. 작가니까 당연히 써야 하는 글쓰기이지만 초등학생이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내가 책을 쓸 때보다 몇 배는 더 신경이 쓰였다. 나는 어떤 날은 몰아서 쓴 날도 있었고, 새벽 4~5시부터 눈 떠서 점심 전까지 원고를 붙들고 있었던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을 아이한테는 시킬 수 없을 텐데... 그게 가장 걱정이었다.
6월 첫 주부터 시작하는 글쓰기였다. 찰리와는 5월 중순부터 이미 책의 콘셉트에 대해 이야기하고 어떤 글을 쓸지를 의논했다. 자연스럽게 아이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길어지기도 하고,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6월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바로 목차를 완성하였다. 대략의 목차 구성하는 방법을 설명하자 알아들고 스스로 목차를 쓰기 시작했다. 목차가 한참 비어보인 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가 무엇을 더 추가해 줄 생각도 없었다. 비어보이면 좀 부족한 대로 책을 쓰자. 아이가 쓰는 책인데 더 치밀해 보이는 게 이상한 것이라 여겼다.
아침 6시 30분.
알람소리와 함께 찰리가 일어나서 노트북 앞으로 갔다. 나도 함께 강제기상되는 날들이었다. 아침잠이 많은 아이는 아니라서 매일 6시 30분 노트북 앞이 어렵지는 않았다. 2주 차가 넘어가면서 고비가 시작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날들이 생겼다. 오후에 학교와 학원을 다녀오고 나서야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어느 날은 키우던 햄스터를 데리고 와 노트북 위에 놓고 빨리 타자를 치라고 햄스터를 다그쳤다.
"엄마 글이 너무 안 써져."
"그런 날도 있는 거야. 글이 매일 잘 써지면 글 쓰는 게 쉽지! 어려우니까 다들 책 쓰는 게 어렵다고 하지."
더 따뜻한 위로와 응원의 말을 해줘도 부족할판에 다그치듯 말하기도 했다.
"찰리야 하루에 3~4줄만 써도 되니까 조금이라도 써야 해. 안 쓰면 나중에 쓰기가 더 힘들어."
글 쓴 내용은 잘 봐주지 않았다. 맞춤법이나 너무 말이 안 맞는 정도가 아니라면 글 쓴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글을 쓰면서 자신이 예전에 키우면 곤충이 생각이 나기도 했는지, 밀웜을 키우면 안 되겠냐며 나를 졸랐다. 글 쓰는데 도움이 된다면야 밀웜정도야 모 키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어렸을 때도 스스로 키우던 밀웜이었는데 모가 어려울까.
4주 차쯤 되자 드디어 슬럼프가 왔다. 아침에 7시 30분이 되어도 못 일어나는 날들이 생기기도 했고, 저녁에는 날이 더워 밖에서 더 놀다 오고 싶어 했다. 책 쓰기를 시켜서 오히려 글쓰기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머릿속으로는 생각이 되는데 아직 타자가 느려 생각과 타자의 속도차이에서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 글 쓰는 것이 즐거웠으면 해서 책 쓰기를 시작한 것인데 그 반대가 될까 두려웠다. 마지막까지 힘들다고 투정은 부렸어도 글을 쓰기 싫다고는 한 적이 없었다.
그렇게 2024. 7. 19. 찰리의 초고는 끝이 났다.
초고가 끝이 났다는 것은 또 다른 시작이지만, 찰리는 행복했다. 자신이 무엇인가 끝을 냈다는 것에 좋아했고 다시 원고를 보면서 수정하면 된다고 어쨌든 끝이 났다며 좋아했다. 자가출판이기에 또 다른 일들이 있다. 어려운 편집의 과정을 찰리가 또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 딱 한 달 뒤쯤 찰리의 책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