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네 개의 책상

by 하얀

새 학기가 시작된 구룡령 현서분교는 조용했다. 얼마 전까지 함께 있었던 6학년 누나들도 졸업을하고, 다른 지역으로 친구도 이사갔다. 지금은 도담이와 마루만 남아있었다. 6학년이 된 도담과 마루, 그리고 몽 선생님. 딱 세 명뿐이었다.

"올해는 우리 셋이구나." 마루가 의자를 뒤로 젖히며 말했다. 어딘가 조금 아쉬운 목소리였다.

도담은 교실 뒤편 사물함을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표정만 봐도 같은 생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몽 선생님이 책을 덮으며 웃었다.

"그래도 나쁘지 않지? 우리끼리면 더 재밌는 것도 많이 할 수 있고... 올해는 우리 하고 싶은 거 다 해보자."

"맞아요. 근데..." 마루가 창밖을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그때 교무실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네, 학교입니다... 아, 전학 문의요?"

선생님의 목소리가 점점 밝아졌다. 아이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몇 분 후, 선생님이 교실로 돌아왔다.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얘들아, 놀라지 마. 내일 두 명이 전학상담하러 온데."

"진짜요?" 마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넘어가는 듯했다.

"응. 6학년이고, 너네가 알고 있는 친구일 수도 있어!"

도담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마루는 벌써 눈치챈 모양이었다.

"혹시 새온이요?"

"정답. 그리고 누리라는 친구도 함께 올 거야."

그날 밤 마루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도담도 마찬가지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세 명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다섯 명이 된다니. 뭔가 꿈같았다.




전날 잠을 이루지 못한 마루와 도담이처럼 새온과 누리도 늦은 밤까지 잠에 들지 못했다. 기대가 되기도 했다가 걱정이 커지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한 대가 구룡령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새온은 차창에 이마를 대고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넓은 계곡을 지나고 멀리 설악산 끝자락이 보였다. 나무들이 더 빽빽해졌다. 멀리서 계곡물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진짜 산으로 들어가는구나.'

앞 좌석에 앉은 엄마들의 대화는 끊이지가 않았다. 새온과 누리의 걱정과 달리 엄마들은 여행 가는 듯했다. 새온은 혼자만 걱정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옆좌석의 누리도 오늘따라 조용했다. 누리는 손을 꼭 쥐고 있었다. 누리도 긴장한 게 눈에 보였다.

"괜찮을까?" 누리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새온은 잠시 생각했다. 사실 자신도 떨렸다. 새로운 학교, 새로운 친구들.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모르겠어. 근데 선생님은 좋은 분이야. 예전에 지금 우리 학교에 계셨던 분이야."

"친구들은 어떨까?"

"마루는 너도 알고 있고. 야구랑 오락 좋아하니까 너랑 잘 지내지 않을까?" 새온이 기억을 더듬었다.

"도담이라는 친구도 있다던데, 예전에 코딩수업에서 한 번 본 적 있어."

차가 학교 앞에 멈췄을 때, 몽 선생님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뛰어나왔다.

"얘들아! 드디어 왔구나!"

새온과 누리는 차에서 내리며 서로를 힐끗 바라봤다. 둘 다 미소를 띠며 인사하고 있었지만, 온몸에는 긴장감이 흘렸다.

"다른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어. 들어가서 인사하고 학교 보고 있을래?"

학교는 생각보다 아담했지만 따뜻한 느낌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바로 자전거가 보였다.

"너희들이 오게 되면 같이 자전거도 탈 수 있어. 마침 딱 누리랑 새온이 자전거도 딱 준비가 되어있어!!"

진짜 누리와 새온이가 오기라도 기다렸던 것처럼 자전거 2대가 눈에 띄었다.

1층에서 바로 오른쪽에 교무실이 있었다. 선생님의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에서는 모두의 공간이었다. 복도에서 말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마루와 도담이도 새로운 친구들이 궁금했다. 독서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둘은 새 친구들을 보러 나왔다.

"얘들아, 새온이랑 누리 왔다."

마루가 환하게 웃으며 뛰어왔다. "야, 새온아! 누리야! 진짜 왔네!"

도담은 천천히 걸어와 조용히 인사했다. 얼굴이 조금 빨개진 것 같았다.

누리가 먼저 다가갔다. 밝은 목소리고 인사했다. "안녕, 나 누리야."

"안녕... 도담이야." 도담의 목소리에는 쑥스러움과 함께 반가움이 묻어있었다.

"마루 도담이, 새온이랑 누리랑 같이 학교 구경 좀 시켜주고 있어. 선생님은 어머님들이랑 이야기하고 있을게."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는 진열장이 있었다. 누리와 새온의 발걸음이 동시에 멈췄다.

건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윙제로, 스트라이크 프리덤, 바바토스... 각각 다른 크기와 색깔이었지만 모두 정성스럽게 만들어져 있었다.

"우와..." 자신들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너 건담 좋아하는구나." 도담이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이거 예전에 다 만든 거야. 너도 만들 줄 알아?"

새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가락이 간질간질해졌다. 이곳을 다니게 되면 건담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새온이의 마음은 전학으로 결정됐다. 누리는 학교 구석구석을 보았다. 친구들의 그림을 한 참 보면서 생각했다.

'여기에 오면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

둘 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곳이 자신들의 학교가 될 거라는 직감을 했다. 그 직감은 마루와 도담이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이제 우리 다섯 명이네." 마루가 손가락으로 하나씩 세며 말했다. "정말 좋은데?"

그 순간 도담이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뭔가... 비어있던 자리가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새온, 누리, 마루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조용히 창밖을 보며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함께 노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창밖으로는 봄 햇살이 살며시 들어오고, 어디선가 꽃향기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 앞으로 어떤 일들이 생길까?" 누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마루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재밌는 일 많을 거야. 우리는 학교 말고 다른 곳에 가서도 수업하기도 해."

"촬영수업할 때는 우리 비밀장소도 있어"

"비밀장소?" 새온의 눈이 반짝였다.

"응. 나중에 보여줄게. 우리만 아는 곳들."

도담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재미있는 곳이 많아."

그렇게 구룡령의 작은 학교에서 네 아이와 선생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아직은 서로 어색하고 조심스럽지만, 뭔가 특별한 1년이 될 것 같은 예감이 교실 안을 감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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