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 선생님이 칠판 앞에 있는 TV와 컴퓨터 정리를 하면서 교실을 둘러봤다. 아이들 넷은 각자 자기 자리에 앉아 있었고, 교실 뒷문이 열리면서 여섯 분의 학부모님들이 조심스럽게 교실로 들어오고 계셨다.
"어서 오세요. 얘들아 부모님 오셨다!"
부모님들은 이리저리 교실을 둘러보며 아이들을 한 번씩 쳐다보았다. 새온이 뒤를 돌아 엄마에게 작게 손을 흔들었고, 누리는 환하게 웃으며 엄마에게 하트를 보냈다. 마루는 엄마에게 눈을 찡끗거리며 알 수 없는 신호를 보냈다. 도담이도 엄마 아빠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몽 선생님이 교실 앞으로 나서며 웃었다.
"자, 오늘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한 말씀드릴게요. 오늘은 아이들이 어떻게 수업을 하는지 참관수업을 하는 날입니다. 오늘 무역수업을 준비했는데요. 작은 학교라서 우리가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 오늘 수업에는 인원이 좀 부족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부모님들도 모두 학생이십니다."
교실이 잠시 조용해졌다.
"아이들 수업이니까 나는 대충 하면 되겠지 라는 생각은 하지 말아 주세요. 부모님들도 이제부터 똑같은 학생이 되시는 겁니다."
몽 선생님의 말에 부모님들이 속마음을 들킨 듯 "큭큭" 소리 내며 웃었다. 누리 엄마가 "들켰네요"라고 말하자, 다른 부모님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조를 나눠볼게요. 오늘은 '무역수업을' 게임을 통해 할 건데요, 여섯 개 나라로 나눠서 진행할 겁니다."
몽 선생님이 책상 위에 이름표들을 펼쳐놓았다. 중국, 미국, 브라질, 일본, 에티오피아, 한국.
"아이들 넷과 부모님 여섯 분, 총 열 분이시니까... 나라마다 한 명 또는 두 명씩 배치하겠습니다. 같은 나라 팀원들끼리 협력해서 무역을 하는 거예요. 아이들은 먼저 팀을 짰습니다. 새온과 도담이가 한조, 누리와 마루가 한조입니다. "
조 편성이 시작되었다. 아빠 엄마가 두 분 다 오신 집은 엄마 아빠가 다른 팀으로 배정되었다. 마루 엄마와 도담 아빠가 같은 팀이었다. 새온 아빠와 누리 엄마가 함께였다.
"자, 이제 각자 이름표를 붙이세요. 여러분은 이제 각 나라의 대표입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이름표를 붙였고, 부모님들도 어색하게 웃으며 이름표를 가슴에 달았다. 교실은 서서히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몽 선생님이 책상 위에 자료들을 펼쳐놓았다. 색색깔의 카드들, 각 나라별로 다른 자원 목록들, 그리고 거래 규칙이 적힌 종이들.
"규칙은 간단해요. 각 나라마다 가진 자원이 달라요. 석유, 철, 금, 밀, 커피... 이런 것들이죠. 여러분은 다른 나라와 협상해서 필요한 자원을 모아야 해요. 총 9단계를 먼저 완성하는 팀이 이기는 겁니다!"
게임이 시작되자 교실은 순식간에 시장통이 되었다.
"저희 철 있는데, 금이랑 바꿀래요?"
"에이, 우리 금 필요 없어. 석유 없어?"
책상 사이를 오가며 카드를 들고 흥정하는 모습은 마치 진짜 무역을 하는 것 같았다. 누리는 밝은 목소리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거래를 성사시켰고, 평소 장난치던 마루는 진지해졌다. 신중하게 상대방의 자원을 살피며 협상했다.
도담은 차분하게 계산기를 두드리며 팀의 전략을 짰다. "새온아, 우리 지금 5단계까지 왔어. 다음엔 밀이 필요한데, 브라질한테 가볼까?"
"응, 근데 브라질이 우리한테 줄까?"
"한번 물어보자."
새온이 마루에게 다가갔다. "야, 마루야. 밀 있지?"
마루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있지. 어떤 거랑 거래할 건데?" 턱을 들며 거래 물품을 어디 한 번 들어보자는 듯 입을 씰룩거렸다.
"뭐 필요해?"
"석유 두 개."
"아, 그건 너무 많아! 석유 하나하고 커피 하나 줄게."
"음... 그래, 좋아."
거래가 성사되자 두 아이는 몽 선생님께 가서 무역이 성사되었다고 말씀드렸다. 몽 선생님은 무역 상황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시켜 주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분위기는 점점 더 뜨거워졌다. 누구는 환호하고, 누구는 아쉬워하며, 교실은 웃음과 탄성으로 가득 찼다. 쉬는 시간도 없이 40분을 온전히 무역거래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새온은 8단계를 완성하고 마지막 한 개만 남게 되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저 카드만 얻으면 1등이다. 새온은 교실을 둘러봤다. 그 자원을 가진 팀은...
엄마였다.
새온은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 커피 카드 있지?"
엄마는 카드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응, 있는데... 우리도 이거 필요한데?"
"엄마, 나 진짜 이거 필요해. 이거만 있으면 1등이야."
"그럼 엄마 노동력도 필요하니까 남는 노동력도 같이 줘."
'원래대로라면 노동력까지 주지 않아도 되는데...' 노동력까지 거래하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온은 입술을 깨물었다. 잠시 고민이 길어지는 사이 옆에서 소리가 들렸다.
"우리 이겼다! 1등!" 마루와 누리 팀이 9단계를 완성했다.
마루와 누리가 소리치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누리는 뛰어다니며 "우리가 무역왕이다!"라고 외쳤고, 마루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새온은 자리에 앉아 고개를 푹 숙였다. 아쉬움이 목까지 차올랐다. 1등을 눈앞에 두고 놓쳤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도담이 새온이 옆에 조용히 앉았다.
새온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아깝다..."
"응, 나도 아쉬워. 근데 우리도 거의 다 했잖아. 2등도 잘한 거야."
"엄마가 그냥 줬으면 이겼을 텐데."
도담은 잠시 말이 없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엄마도 게임하는 거잖아. 나 같으면 우리 아빠가 나한테 져주면 좀 그럴 것 같아."
새온은 도담을 돌아봤다. 도담이가 꼭 형처럼 느껴졌다.
몽 선생님이 교실 앞으로 나왔다. "자, 모두 수고했어요. 1등은 브라질 팀! 축하합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마루와 누리가 일어서서 인사했다.
"근데 선생님이 오늘 보고 싶었던 건 꼭 1등 만은 아니에요. 여러분이 어떻게 협상하고, 어떻게 선택하고, 어떻게 친구들과 경쟁하는지... 그 과정이 더 중요했어요. 그리고 여러분, 정말 멋진 무역가들이었습니다."
학부모들이 뒤에서 박수를 쳤다. 새온 엄마가 새온에게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었다.
"속상하지?"
새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도 사실 좀 미안해. 근데 있잖아, 만약 엄마가 그냥 져줬으면 넌 어땠을 것 같아? 진짜로 이긴 것처럼 기뻤을까?"
새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알았다. 아마 기쁘지 않았을 것이다. 이기긴 했지만 뭔가 께름칙했을 것이다.
"다음엔 진짜로 이겨봐. 엄마 안 봐줄 거야." 엄마 때문에 졌다고 한참을 속상했지만, 이겼어도 정정당당하게 이기지 못했을 거란 생각에 무역수업은 잊어버리기로 했다.
대신 오늘 발견한 것들이 있었다. 친구들의 의외의 모습이었다. 누리는 어느 팀을 가서도 능글맞게 웃으며 본인이 원하는 무역을 성사시켰다. 마루는 평소엔 장난만 치는 것 같았는데 오늘따라 꽤 진지했다. 도담이와의 팀워크도 생각났다. 도담이가 조용히 전략을 짜면, 새온이가 여기저기 협상을 하러 다녔다.
부모님들도 모두 집으로 가시고 아이들은 운동장 한쪽에 모여 앉았다.
"근데 진짜 신기하다. 부모님들이랑 같이 수업하니까." 누리가 말했다.
"응. 우리 엄마는 아들이라고 봐주지 않고 진짜 열심히 했던 것 같아." 새온이는 아까까지 속상했던 마음은 사라졌다.
"다음에 또 저런 수업하면 좋겠다. 재밌었어."
마루가 말했고, 도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도."
그렇게 네 아이는 여름 그늘 아래에서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긴 것과 진 것, 아쉬운 것과 재미있었던 것, 그 모든 게 뒤섞인 오전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오늘의 무역수업은 모두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