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수상한 아이들

by 하얀

새온은 교실 구석 자기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책을 보고 있는 척했다. 마루와 누리 도담이는 교실 안에서 서로 축하해주고 있었다. 부모님들에게도 이른 아침부터 아이들의 수상을 알렸다.

[양양군 미술대회에서 수상하였습니다. 명단에 새온이 이름이 없어 아쉽지만 ㅜㅜ 모두 수고했습니다. 수상한 아이들 축하해 주세요] 단톡방은 수상한 아이들의 축하 메시지가 이어졌다.

새온만 혼자 미술대회에서 상을 받지 못했다.

'나도 그 미술 수업 들었으면...'

증조할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연락에 급하게 서울로 내려갔던 그날이 자꾸 떠올랐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핸드폰 화면 속 '축하해요'라는 말들이 유난히 새온이를 괴롭히는 것 같았다.

"새온아."

도담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옆자리에 앉았다. 도담은 잠시 망설이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사실 꼴찌로 상 받은 거 같아. 저번 글짓기 대회 때는 네가 상 탔잖아. 이번엔 그냥 미술 수업 하나 빠진 거라서 그런 거니까..."

도담의 위로가 고마웠지만, 마음 한구석이 뭉친 느낌이 들었다. 친구들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은데, 마음이 자꾸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다.

오후 수업 시간, 몽 선생님이 환하게 웃으며 들어왔다.

"자, 여러분! 내일은 양양 전체 초등학교 육상대회가 있는 날입니다. 대회 나가는 친구들, 겉옷이랑 운동화 꼭 챙겨 오도록!"

새온과 도담은 100미터, 200미터, 800미터, 그리고 계주까지 네 종목을 뛰게 되어 있었다. 누리는 포환 던지기와 100미터, 마루는 200미터에 나가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양양종합운동장은 양양의 많은 아이들로 가득했다. 가을바람에 각 학교 천막들이 빨강, 파랑, 노랑으로 펄럭였다.

"파이팅!" 이들은 목이 쉴 때까지 응원했다. 응원 점수도 있다는 말에 더욱 힘차게 소리쳤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아이들의 함성이 운동장 가득 울려 퍼졌다.

"와, 저 애들 봐. 완전 빠르다."

누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육상부가 있는 학교 아이들은 달랐다. 출발선에서부터 자세가 달랐고, 달리는 모습도 달랐다.

"우리... 저런 애들이랑 같이 뛰어야 돼?"

마루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아침마다 운동장 10바퀴씩 뛰었던 게 헛되지 않았다. 첫 경기에서 새온이가 800미터에서 2등을 했고, 도담이는 200미터에서 2등을 했다. 누리는 투포환에서 1등을 했다. 육상부 아이를 이긴 순간, 아이들은 서로 껴안고 환호성을 질렀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지나고 점점 마지막 육상경기로 향하고 있었다. 마지막 경기는 새온과 도담이가 함께 뛰는 계주였다.

"선생님... 떨려요. 육상부를 이길 수 있을까요?"

도담이가 손을 비비며 말했다.

"괜찮아. 1등 안 해도 괜찮아. 제네들 이기면 너네 육상 해야 한다!"

몽 선생님은 아이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농담을 했다.

출발선에 다섯 학교 아이들이 섰다. 육상부가 있는 학교가 바로 옆에 있었다. 몽 선생님이 멀리서 손을 흔들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탕!

총소리와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새온이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첫 주자가 바통을 넘기고, 두 번째 주자가 달렸다. 이제 새온이 차례였다. 바통을 받는 순간, 온 세상 소리가 사라진 것 같았다. 오직 트랙과 앞만 보였다.

발밑에서 바람이 일었다. 팔을 힘차게 저으며 달렸다. 육상부 아이들을 이길 수는 없었지만, 도담이와 새온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 달렸다.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새온이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2등이야! 은메달!"

친구들이 트랙으로 뛰어 내려왔다. 숨이 차서 한동안 말도 못 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시원했다.

시상식이 끝나고 천막으로 돌아왔을 때, 새온은 문득 깨달았다. 마루만 오늘 상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마루는 괜찮은 척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이 어제 자신의 웃음과 똑같다는 걸 새온이는 알았다. 축하한다는 말에 영혼이 없었다. 새온은 웃으며 마루에게 다가갔다.

"마루야."

"응?"

"나 어제... 미술대회에서 상 못 받아서 진짜 속상했거든."

마루가 고개를 돌려 새온을 봤다.

"알아. 나도... 오늘 좀 그래."

둘은 잠시 말없이 서 있었다.

"근데 말이야."

새온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계주 달릴 때, 네가 제일 크게 응원해 줬잖아. 그거 들리더라."

깜짝 놀라며 마루의 눈이 약간 커졌다. 그러나 다시 어깨가 축 늘어지며 말했다.

"거짓말하지 마."

"진짜야. 네가 응원해 줘서 진짜 고마웠어." 둘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마음이 느껴졌다.

멀리서 누리와 도담이가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야! 간식으로 치킨 나왔대!"

"빨리 와서 먹어!"

마루가 먼저 웃었다. 이번엔 진짜 웃음이었다.

"빨리 먹으러 가자."

"응."

두 아이는 나란히 천막을 향해 뛰어갔다. 운동장에는 낙엽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상을 받고 못 받고 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친구가 힘들 때 옆에 있어주는 것, 그게 더 중요하다는 걸 새온과 마루는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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