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오프 더레코드

by 하얀

일요일 아침, 단체 카톡방이 쉴 새 없이 울렸다. 마루는 이불속에서 눈을 비비며 핸드폰을 들었다.

[오늘 택시는 11시에 종합운동장 앞에서 대기합니다. 촬영은 12시부터 시작할 예정입니다]

몽 선생님의 메시지가 올라오자 곧바로 엄마들의 답장이 줄줄이 이어졌다.

"선생님! 혹시 저희도 구경 가도 될까요?"

"저도 가고 싶어요! 촬영 구경 가능할까요?"

"너무 보고 싶은데 안 되겠죠...?"

마루는 씨익 웃음을 지었다. 촬영은 우리가 하는데 엄마들이 더 신난 게 느껴졌다.

[일단은 아이들만 먼저 촬영하고, 4시 이후에 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뒷부분은 부모님들도 함께하시면 됩니다!] 대표 엄마의 답장에 카톡방이 순식간에 하트와 박수 이모티콘으로 가득 찼다.

"마루야, 일어났어?"

엄마 목소리에 마루는 후다닥 일어났다. 평소 같으면 세수만 대충 하고 학교에 갔을 텐데, 오늘만큼은 달랐다. 머리도 꼼꼼하게 감고, 엄마가 꺼내준 깨끗한 옷도 입었다. 거울을 보니 왠지 모르게 오늘은 더 잘생겨 보였다.

새온, 누리, 도담이를 택시 앞에서 만났다. 모두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다. 모두 깔끔하고 괜찮아 보였다.


학교에 도착하자 몽 선생님은 벌써 와 계셨다. 아이들이 택시 타고 학교에 도착하면 항상 선생님만 계셨는데 오늘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 학교에 이렇게 많은 사람은 처음인 거 같아." 도담이가 놀란 듯 말했다.

교실에서는 몽 선생님이 방송국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카메라가 여러 대 세워져 있고, 조명도 설치되어 있었다. 긴 마이크를 든 사람, 전선을 정리하는 사람, 뭔가를 꼼꼼하게 체크하는 사람들로 학교가 북적였다.

"얘들아, 잠깐만 여기 모여봐." 몽 선생님이 손짓했다.

"오늘 촬영은 밖에서 할 거야. 날씨도 좋고, 가을 분위기도 살리고 싶대."

"밖에서요?" 새온이가 눈을 반짝였다.

"응, 운동장 큰 나무 밑에서. 거기서 찍으면 이쁘게 나올 거 같다고 하시니까 교실에서 잠깐 찍고 밖으로 나가자!"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자 또 다른 촬영장소로 순간이동이 된 것 같았다. 교실에서도 여러 대의 카메라와 조명들이 있었는데, 언제 밖으로 다 옮겨졌는지 신기했다.

정문 앞 커다란 나무 아래에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나무 밑으로는 노란색과 주황색 빨간색 낙엽들이 땅을 가득 덮고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낙엽들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와, 여기가 이렇게 이뻤나?" 누리가 감탄했다.

칠판도 밖으로 옮겨져 나무 옆에 세워졌다. 평소 교실에서만 보던 초록색 칠판이 낙엽 더미 옆에 서 있으니 묘하게 어울렸다.

"그리고 여기, 인사드려. 오늘 수업해 주실 선생님이야."

"와..." 도담이가 작은 탄성을 냈다. 평소에 TV에서만 보던 유명한 역사 선생님이 눈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유명한 진행자 두 분도 계셨다. 모두 꿈에서라도 볼 수 있을까 했던 분들이 앞에 있다는 사실에 아이들은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 오늘 재미있게 공부해 보자." 선생님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 아이들 옷깃에 작은 마이크를 달아주었다. 누리는 마이크가 신기한 듯 계속 만지작거렸다.

"이거 진짜 소리 녹음돼요?"

"응, 그러니까 촬영 중에는 이상한 말 하면 안 돼." 새온이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촬영 들어갑니다! 자, 모두 준비됐죠?"




긴장감이 운동장을 가득 채웠다. 평소에는 자기들끼리만 뛰놀던 운동장이 갑자기 낯선 공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막상 수업이 시작되자,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오늘은 여러분과 이야기할 주제는 안중근입니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마치 그 시간 속으로 데려가는 것 같았다. 책으로만 보던 역사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생생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안중근을 알고 있을 거야! 그런데 실제로 그때 안중근은 혼자가 아니었어요. 항상 거사를 함께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안중근을 포함해서 몇 명이였을까요?"

"100명?" 누리가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며 말했다.

"4명이었습니다!"선생님은 아이들을 향해 손가락을 가르치며 말했다.

"오! 우리도 4명이에요!" 도담이 선생님의 말을 눈치챘다.

"그리고 그 배후에 선생님도 계셨어요. 지금 여러분들의 상황과 너무 잘 어울리는 안중근 의사를 맞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수와 함께 수업은 시작되었다.

중간중간 개그맨 삼촌이 재미있는 질문을 던지면,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다. 어느새 아이들과 친해져 아이들에게 삼촌이 되어있었다. 개그맨 삼촌은 아이들을 웃겨주며 긴장을 풀어주었다.

수업하는 동안 낙엽들은 땅 위에서 빙글빙글 춤을 추듯 돌았다. 낙엽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역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가을 하늘 아래 어우러졌다.

"만약 너희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어땠을 것 같아?"

도담이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저는... 무서워서 못했을 것 같아요. 근데 안중근 의사님 옆에 있었다면, 용기를 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 바로 그거야. 혼자는 어려워도 함께라면 용기가 생기는 거지."

새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마음 깊이 와닿았다. 자기들도 혼자였다면 이 작은 학교에서 1년을 버티기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조금씩 기울면서 그림자가 길어졌다. 낙엽 위로 비치는 햇빛이 빛났다. 잠시 쉬는 시간이 오기도 했다. 아이들은 어느새 삼촌들과 친해져서 "삼촌, 이거 맞아요?" 하며 스스럼없이 질문을 던졌다.

가을 햇살 아래, 낙엽 속에서 웃고 있는 네 명의 아이들 속으로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부모님들이었다. 모두가 숨죽여 마지막 촬영을 구경하였다.

수업이 끝나고, 역사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선물을 꺼냈다. 한 명 한 명 사인을 해주고 역사책을 주셨다.

"오늘 정말 고마웠어. 너희 덕분에 나도 즐거웠어. 계속 역사 공부 열심히 하고, 나중에 크면 또 만나자."

사진 촬영이 이어졌다. 아이들은 선생님들 사이에 서서 환하게 웃었다. 배경에는 은행나무와 낙엽 더미, 그리고 빨간 벽돌의 학교 건물이 보였다.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이 순간이 영원히 남는다는 게 실감 났다.

촬영이 모두 끝나고, 방송국 사람들이 짐을 싸기 시작했다. 몽 선생님은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아이들 정말 잘했어요. 솔직히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해주었어요."

끝났다는 말에도 아이들은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낙엽 더미 위를 뛰어다녔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도담이는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오늘 하루가 꿈같았다. TV에서만 보던 사람들을 만나고, 카메라 앞에서 수업을 듣고, 부모님들이 자랑스러운 눈으로 자기들을 바라보는 것까지 모두 좋았다.

누리는 여전히 신난 목소리로 오늘 있었던 일을 떠들었고, 마루는 피곤한지 눈을 감았다 떴다 반복했다. 새온이는 창밖을 보며 조용히 미소 짓고 있었다.

"야, 우리 진짜 TV 나오는 거지?" 마루가 갑자기 물었다.

"당연하지. 촬영했는데." 새온이가 답했다.

"대박... 우리 유명해지는 거 아니야?" 누리가 깔깔 웃었다.

집에 도착해서도 도담이는 잠이 오지 않았다. 오늘 하루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방송이 나가면 전국에 자기들 얼굴이 나온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부끄러웠다.

핸드폰을 열어보니 단체 카톡방에 사진들이 잔뜩 올라와 있었다. 엄마들이 찍은 사진, 방송국에서 찍어준 사진, 몽 선생님이 찍은 사진들. 모두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아무도 몰랐던 몽 선생님의 영상편지. 방송국 촬영 중에 따로 남긴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목소리를 남겼다. 선생님의 속마음은 방송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 네 명이 이렇게 한 학교에서 만나 마지막 해를 보낸다는 게 얼마나 특별한 인연인지, 지금은 모를 거예요. 하지만 나중에 크면,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게 될 거예요. 졸업하고, 학교가 문을 닫고, 뿔뿔이 흩어져도... 이 1년의 기억만큼은 평생 간직하길 바랍니다. 선생님도 너희를 평생 기억할게. 사랑한다, 우리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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