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예술꽃이 피었습니다.

by 하얀


12월의 해가 넘어가기 시작했다. 구룡령 산자락 너머로 붉은 노을이 번지고 있었다. 평소 이 시간이면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학교는 텅 비어 조용해지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현서분교 운동장에 차들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승용차와 트럭으로 좁은 운동장이 금세 차들로 가득 찼다.

"사람들이 점점 많이 와."

2층 교실 창가에서 새온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정장 차림의 새온은 평소보다 훨씬 어른스러워 보였다. 긴장이 되는지 넥타이를 만지작 거렸다.

"엄마 아빠들만 오시는 줄 알았는데 모르는 분들도 많이 오네." 누리가 입구 쪽을 가리켰다. 주차장에서 내린 사람들이 학교로 걸어오고 있었다.

"어! 우리 텃밭 도와주시는 할머님들도 오셨어!" 누리가 반가운 마음에 창문도 열지 않은 채 꾸벅 인사를 했다.

"자전거 라이딩 도와주시는 사장님도 오셨는데?" 도담이의 눈도 계속 새로운 분들을 찾고 있었다.

아이들은 쉴 새 없이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창문 너머로 인사를 했다. 긴장감이 손끝까지 전해졌다.

해질 무렵, 현서분교의 모든 교실에 불이 켜졌다. 1층 복도, 2층 복도, 계단, 심지어 화장실까지. 학교 전체가 환하게 빛났다. 어둑해진 구룡령에서 학교는 빛을 내고 있었다.


손님들이 학교 입구를 지나며 가장 먼저 보는 문구가 있었다.

[현서분교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을 어르신들은 그 문구를 보며 잠시 멈춰 섰다. 눈이 침침하신지 눈문이 나시는지 눈을 비비는 분도 계셨다. 1층 복도에는 학교의 역사가 펼쳐져 있었다. 오래된 흑백 사진 속 아이들, 운동회 날의 만국기, 소풍 가던 날의 웃음들. 20년의 학교 역사가 복도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마루 누나는 자신이 찍힌 사진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6학년 졸업사진이었다. 이 복도를 뛰어다니던 기억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엄마..." 누나는 마루 엄마의 품에 안겼다. 마루 엄마는 딸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학교가 정말 마지막이라는 게 실감 났다.

손님들은 천천히 2층으로 올라갔다. 계단 양옆으로 아이들의 1년이 전시되어 있었다. 미술시간에 그린 유화, 영상시간에 찍은 사진들, 논술시간에 쓴 시까지. 한 계단 오를 때마다 추억 하나씩을 만났다.

2층에 다다르자 교실 하나가 발표회장으로 변해 있었다. 책상들을 모두 치우고 의자들을 객석처럼 배치했다. 교실 앞쪽은 작은 무대가 되어 있었다. 피아노와 기타, 드럼 세트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좁은 공간이었지만 정성껏 꾸며져 있었다.

교실 안으로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의자가 부족해 뒤쪽에는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생겼다. 복도까지 사람들이 서 있었다. 누군가는 문 밖에서 고개를 들이밀기도 했다.

몽 선생님이 교실 옆 작은 공간에서 아이들을 불렀다.

"자, 다들 모여봐."

네 명의 아이들이 둥그렇게 모였다. 몽 선생님은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생각보다 손님들이 많지? 긴장되지?"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담은 입술을 깨물었다. 마루는 자꾸만 넥타이를 만지작거렸다.

"나도 긴장돼. 근데 말이야." 몽 선생님이 웃었다.

"너희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연습했는지 선생님은 알고 있어. 부모님들도 다 아실 거고. 실수해도 괜찮아. 여기 있는 사람들은 너희를 응원하러 온 거야. 완벽한 연주를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너희의 1년을 보고 싶어서 온 거니까 긴장하지 말고 해 보자!"

아이들은 모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누간가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위아래로 손들이 포개지고 몽 선생님도 웃으며 마지막으로 손바닥을 올렸다.

"선생님. 우리 파이팅 해요!" 누리가 말했다.

"좋아! 하나, 둘, 셋!"

"파이팅!"

손님이 모여있는 교실로 몽 선생님이 들어왔다. 웅성거리던 소리가 잦아들었다. 몽 선생님이 무대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 이렇게 현서분교의 마지막 예술꽃 발표회에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좁은 교실 안에서 박수 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아이들이 긴장을 많이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특별한 방식으로 발표회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원래는 연주를 듣고 나서 박수를 치잖아요? 오늘은 연주 전에 먼저 응원을 해주시면 어떨까요? 응원에 힘입어 연주하는 신개념 발표회!입니다."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누군가 "잘하세요!" 하고 외쳤다. 여기저기서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그럼 입장하겠습니다!"

마루부터 한 명씩 입장하기 시작했다. 마루, 도담, 누리, 새 온. 교실 앞의 작은 공간이 무대였다.

"우와!"

"멋있다!"

객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네 명의 아이들이 나란히 서자 박수 소리가 교실을 가득 채웠다.




첫 곡은 각자의 피아노 독주였다. 마루가 먼저 시작했다. 처음 몇 소절은 손이 조금 굳어 있었다. 하지만 점차 익숙한 선율이 흘러나오면서 마루의 어깨에서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연주하기 시작했다. 맨 앞줄의 할머니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박자를 맞췄다. 아이들은 박자를 살짝 놓치기도 했지만, 객석에서는 눈치채지 못했다. 협주곡을 할 때에는 서로 자연스럽게 눈을 마주치며 서로의 속도를 맞췄다.

바로 기타 협주 시간이었다. 네 명이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각자의 기타를 무릎에 올렸다. 아이들이 음악 선생님과 상의해서 결정한 곡이었다. 누리가 먼저 시작했다. 네 개의 기타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졌다.

객석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누군가는 무릎을 두드렸다. 뒤에 서있던 누군가는 머리 위로 양손을 흔들기도 했다. 기타의 선율이 사람들의 몸을 움직이게 했다. 마음까지 따뜻하게 채워졌다.

기타 연주가 끝나자 무대 뒤에서 드럼 세트가 등장했다. 도담은 드럼 스틱을 들었다. 새온이 베이스를 멨다. 누리는 보컬을 맡고, 마루는 키보드 앞에 섰다.

"다음 곡은 여러분도 다 아시는 노래입니다! 함께 불러주세요!"

몽 선생님의 안내가 끝나자 마루가 드럼을 쳤다. 쿵, 쿵, 딱! 익숙한 리듬이었다. 객석에서 누군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금방 모두가 따라 불렀다. 다 같이 부르는 노래에 반주가 안 들리기도 했다.

마지막 구절을 부를 때는 교실 전체가 하나가 되어 노래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선생님도, 모두가 하나였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그 순간만큼은 사라졌다.

노래가 끝나고 박수가 쏟아졌다. 아이들이 교실 앞 중앙에 서서 손을 잡고 함께 인사했다.

"정말 멋진 연주였습니다.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박수 부탁드려요." 또 한 차례 박수가 이어졌다.

"이제 인사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학부모 대표님 말씀 듣겠습니다."

마루의 아빠가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마이크를 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한참을 말없이 서 있던 마루의 아빠는 입을 열었다.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저, 그리고 제 딸과 아들까지 4대가 이 학교를 나왔습니다."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이 학교에서 뛰어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봄에는 벚꽃 아래서, 여름에는 학교 앞 계곡에서, 가을에는 운동장 은행나무 아래서, 겨울에는 눈 쌓인 운동장에서. 이 아이들도 그런 추억을 만들었을 겁니다. 아쉽지만 올해가 마지막이 되겠네요" 메이는 목소리로 천천히 말씀하셨다.

"우리 마지막 후배님들, 졸업을 축하합니다." 마지막 후배님이라는 말은 긴 여운을 남겼다. 그 한마디에 교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참고 있던 눈물들이 터져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학교의 마지막을 슬퍼했다. 아이들만이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내일도 학교를 나온다는 사실에 아직 마지막이라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이제 아이들의 차례였다. 새온이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1년 동안 정말 좋았어요. 처음 전학 왔을 때는 걱정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여기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친구들이랑 선생님이랑 보낸 시간, 행복했어요." 새온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누리가 마이크를 받았다.

"친구들이 너무 잘 받아줘서 금방 적응했어요. 그동안 함께한 시간들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몽 선생님 사랑해요." 누리의 목소리는 밝았지만 눈가가 촉촉했다.

마루가 마이크를 받았다. 평소처럼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으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몽 선생님이 부드럽게 물었다.

"마루는 어때?"

마루가 억지로 웃었다. "좋아요. 후련해요."

그런데 표정은 전혀 후련해 보이지 않았다. 아랫입술을 이빨로 꽉 물로 있었다.

"아, 그래? 마루는 좋구나!"

몽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마루의 눈이 빨개지기 시작했다. 마루가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뚝, 뚝, 떨어졌다. 몽 선생님이 마루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마루는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어깨가 들썩였다.

"사실은 마루가 제일 학교를 아꼈어요."

마루는 이 학교를 누구보다 사랑했다. 폐교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이제 시골 안쪽까지 안 들어와서 좋다"라고 큰소리쳤던 마루였다. 하지만 그건 진심이 아니었다. 학교를 지키고 싶었다. 사실은 학교가 영원하길 바랐다.

도담이 조용히 마루 옆으로 다가갔다. 6년간 마루와 함께해 온 도담은 마루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교실 안의 사람들이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좁은 공간이었지만 박수 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컸다. 아이들이 손을 잡고 다시 한번 깊이 인사했다.

발표회가 끝나고 사람들은 천천히 교실 밖으로 나왔다.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다. 1층 식당에서는 선생님이 준비한 김밥과 치킨, 간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사람들은 음식을 나눠 먹으며 복도에 전시된 작품들을 다시 둘러봤다. 학교의 역사가 담긴 사진들 앞에서 오래 서 있기도 했다.


해는 완전히 넘어간 저녁이었다. 평소 이 시간이면 구룡령은 깜깜했다. 가로등도 많지 않아 칠흑 같은 어둠이 마을을 덮었다. 학교는 더 조용했다.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빈 교실에는 불이 꺼졌다. 운동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구룡령에 큰 별 하나가 떨어진 듯 밝았다.

구룡령의 밤은 더 깊어졌다. 학교는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오늘 밤의 빛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마음에도, 아이들의 마음속에서도 그날의 빛은 계속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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