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 한마디가 없었다.

by 김인숙

“여보세요. 여기 경찰서 교통과입니다”

"뺑소니사고로 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번호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
예상치 못한 ‘뺑소니 신고 접수’라는 말에,

온몸이 얼어붙었다.
그리고 아침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좁은 주차 공간에서 차를 빼느라 꽤 애를 먹었다.
왼쪽에는 제너시스, 오른쪽에는 아반떼, 그 앞으로는 이면주차된 마티즈. 나는 그 사이를 요리조리 핸들을 꺾어가며 조심스럽게 빠져나왔다.
어디에 부딪힌 느낌도, 흔들림도, 이상한 소리도 없었다. 하지만 그 전화 한 통으로 모든 게 무너졌다.


경찰은 내 차량이 CCTV에 찍혔다며 나를 가해자로 지목했고, 믿고 싶지 않은 일이 현실이 되자 억울함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당황한 나는 경찰과 통화하고, 신고한 차주에게 연락했다.
“죄송합니다.”
그 말부터 꺼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성급했고 너무 무방비했다.

상대는 앞 범퍼 도색이 필요하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나는 그 사진을 박에게 보여주었다.
“기스난 위치가 좀 이상한데요?”

“위치가 달라요”

세심하게 사진을 살펴본 박이 말했다.
경찰에 다시 연락해 현장에서 확인을 받기로 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만난 경찰은 내 차를 둘러보며 말했다.
“기스난 위치가 다르네요. 선생님 차는 아니에요.”

잠시 뒤 제너시스 차주가 도착했고, 내 차를 확인하더니 짧게 말했다.
“기스난 위치가 다르네요. 그런데 아침에 CCTV로 봤을 땐 흰색 차가 이 차밖에 없었어요...”

그것이 끝이었다.
그는 계속 CCTV에 내 차만 나왔다는 말을 반복했고, 자기 나름의 생각으로 상황을 정리하려 애썼다.

집에 돌아온 나는 이상하리만큼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문제는 해결됐지만, 마음 한구석은 묘하게 허전했다. 어디서부터 불편했던 걸까. 혼자 곱씹으며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정말 나를 힘들게 한 건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말에 내가 너무 쉽게 흔들렸다는 사실이었다.

“혹시 내가 정말 긁었는데 못 느꼈던 걸까?”
그렇게 나 자신을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나는 차를 빼는데 정말 신중하고 조심했었고 , 꽤 애를 먹었지만, 실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단정적인 말 한마디에 스스로를 의심했던 내가 서글펐다.


정작 슬펐던 건, 끝까지 믿고 싶었던 나를
내가 먼저 의심했다는 사실이다.

내가 나를 믿어주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온전히 믿어줄 수 있을까.

차주의 말만 듣고 무턱대고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던 나는, 과연 자존감 있는 사람이었을까.

그가 “기스 난 위치가 다르네요”라고 말했을 때
비로소 안도했던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던 걸까. 남의 말 한마디에 쉽게 좌우되는 불안한 내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가 단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마음에 남았다.

“제가 잘못 판단했네요. 괜히 놀라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 말 한마디가 없었다.


그 말 한마디만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마음의 상처가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해를 했다면,
그 오해가 풀렸을 때는 사과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의 오해로 인해 내가 보낸 시간들—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무너졌던 시간들이 사과한마디 없었던 탓에 아무 의미 없이 공중에 흩어져 버렸다.

그 상황에서 나는, 단순한 해명이 아니라 사과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사람의 말은 생각보다 큰 힘을 갖고 있다.

말 한마디가 누군가를 무너뜨릴 수도, 세울 수도 있다. 그리고 알았다. 이번 일을 통해서ㅡ
무엇보다 먼저, 나 자신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혹시 누군가를 오해했다면
그 오해가 풀렸을 때 꼭 말해주자.

“미안합니다.”
그 말한마디가 사람을 얼마나 구할 수 있는지를,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