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꽃 선물을 받을 때가 제일 좋다. 코끝을 스치는 꽃향기를 맡으면 그제야 ‘아, 내가 살아있구나!’ 하는 실감이 난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일이 잘 안 풀려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일부러 꽃집을 찾기도 한다. 싱그러운 꽃들 사이에 서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안개처럼 뿌옇던 머릿속이 금방 환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거울을 보면 이제 '꽃다운 처녀'와는 거리가 멀다. 얼굴에는 주름이 하나둘 자기 자리를 잡았고, 가끔은 나도 모르게 고집스러운 꼰대 기질이 툭 튀어나오는 나이가 됐다. 하지만 내면의 나는 여전히 들판을 뛰어다니는 철부지 어린 아이고, 순수한 소녀다. 세월은 피부 위로 흐르지만, 향기는 나를 언제든 그 푸른 벌판으로 데려다준다.
얼마 전 아이들과 향수 만들기 수업을 했다. 시향지에 향료를 묻혀 하나하나 냄새를 맡아보고, 좋아하는 정도를 1부터 10까지 숫자를 매겼다. 점수가 높은 향료들을 골라 적당한 비율로 섞고 숙성시키는 과정. 곁에서 조물조물 향수를 만드는 아이들을 보니 대부분 달콤한 과일 향을 골랐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많은 아이 중에 똑같은 향이 하나도 없었다. 사람마다 코끝에 닿는 감각이, 그리고 마음이 끌리는 지점이 이토록 다르다니. 향기란 참 지독하게도 주관적인 영역이다.
수업을 하며 만든 인위적인 향기도 나쁘진 않았지만, 사실 나는 들판에서 제멋대로 피어난 야생의 향기를 더 좋아한다. 화려한 꽃집의 꽃들보다 이름 없는 들꽃의 향기에 마음이 더 가는 건 왜일까. 아마도 누구에게 구속되지 않고, 비바람 속에서도 꿋꿋하게 제 향기를 내뿜는 그 ‘위대함’ 때문인 것 같다.
주름진 내 얼굴 뒤에 여전히 소녀의 마음이 숨어있듯, 세상에는 저마다의 숨겨진 향기가 있다.
타인의 기준에 맞춘 향기가 아니라, 내가 진짜 좋아하는 들꽃 향기를 따라가며 살고 싶다.
조금은 꼰대 같고 주름진 모습이면 어때. 내 마음의 벌판에선 여전히 싱그러운 향기가 진동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