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엄마의 운명을 닮는다

by 박은정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멕시코 포스트에 특채로 발령된 남편을 따라 선뜻 멕시코시티로 이사를 갔어.


박사 학위를 마치고 5년 정도 일하면서, 만족스러운 연봉에 대학 시절부터 꿈꿔왔던 직장까지.

워싱턴 D.C. 의 고급(지지만 작은) 아파트에서 살며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딱히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지.

그런데 회사 생활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좀 달랐거든... 아니, 어쩌면 원하는 아기가 생기지 않아서 더 조바심이 났던 걸지도 모르겠다.


남편이 멕시코 사람이었기 때문에, 만나기 시작했을 때부터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막상 이사할 때까지도 능숙하게 대화할 정도는 아니었어.


그러다 멕시코에 도착하고 두 달쯤 지나 임신이 되었어. 그렇게 기다리던 소중한 아기였는데, 임신 기간 내내 너무 힘들어서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만 있던 기억뿐이야. 스페인어 수업도 꾸준히 들으려고 했는데, 임신기간 입덧 때문에 메슥거림을 견디지 못하고 수업도 취소하고, 카우치 포테이토로 지내는 바람에, 스페인어 배우면서, 멕시코시티에서 직장 알아보려던 계획은 멀어져만 갔지.


남편은 본사에서만 일하다가 처음으로 필드에서 일하게 된 거라, 아침 8시에 출근해서 밤까지 8시 정도까지 하루 12시간 정도 오피스에서 일만 했어. 나는 언어도 통하지 않는 외딴곳의 아파트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 있었고, 그래도 그동안 학교 다니고 직장 다니며 바쁘고 고된 생활에 지쳐 있었던 탓인지, 처음엔 그 고요함이 나쁘지만은 않았어.


남편이 출장 간 사이, 예고 없는 출산


출산이 임박했을 때, 남편은 미국 본사로 일주일간 출장을 가게 됐어.

산부인과 의사는 “Es común que el primer bebé nazca después de la fecha prevista. Como aún faltan tres semanas, está bien que haga el viaje (첫 아이는 예정일보다 늦게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아직 3주나 남았으니 출장 괜찮습니다).”라고 했고, 나도 동의했지.


남편이 월요일에 출발해 토요일 일정을 마치고 일요일 오전에 돌아오는 계획이었는데... 혼자 있던 며칠 동안 몸 상태가 이상하긴 했지만, 첫 임신이기도 했고 크게 움직이지 않다 보니 별다른 변화를 느끼지 못했었어. 금요일 오후, 산책을 하던 중에 갑자기 느낌이 이상해서... "My belly isn’t as bouncy as before… and I think I can feel the baby’s back. It’s strange—something just doesn’t feel right. (배가 예전처럼 통통거리지 않아.. 아기 등이 손에 만져지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이상해) 라며 횡설수설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고.


남편이 산부인과 의사에게 연락을 바로 했더라고. 금요일 밤 8시쯤 임에도 불구하고, 의사가 진료실로 오라고 했대, 그냥 막달 증상일 거야.. 그러면서 '별일 아닌데 귀찮게..'라고 생각하며 우버를 타고 갔지.. 영어로, 늦은 시간인데 시간 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검사를 받으니, 의사가 양수가 많이 빠져 있다고 했다.


"¿Desde cuándo sintió que estaba perdiendo líquido? Si se ha perdido tanto, seguramente lo habría notado…(언제부터 양수가 빠졌나요? 이 정도면 분명 느낌이 있었을 텐데..)

"Well, I’m not sure. I just thought I was going to the bathroom more often because it's the last month of pregnancy… (글쎄요, 막달이라 그런지 소변이 자주 나오는 것 같긴 했는데요)”


의사가 더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며, 바로 유도 분만을 해야 한다고 바로 병원으로 가라고 했어. 남편은 갑자기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 말을 잃었어. 오마의.


혼자 병원으로, 그리고 긴 출산의 시작


출산을 예약해 둔 병원으로 바로 이동하니 한 밤 10시 정도가 되었고, 집에 들러 출산 가방을 챙기려 했지만, 아기 옷과 용품들은 모두 남편이 미국 출장에서 가져올 예정이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어, 그래서 그 난리통에 저녁도 못 먹은 게 생각나서, 그냥 냉장고에 있던 음식을 좀 데워 먹고, 속옷과 갈아입을 옷만 가방에 챙겨 우버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지.


병원에 들어가자 직원이 물었어. “Que le puedo ayudar?”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Buenas noches, aquí estoy para tener mi bebé.” (안녕하세요, 아기 낳으러 왔어요.)

직원이 동그랗게 눈을 뜨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혼자서 작은 가방을 들고 걸어 들어온 산모는 아마 처음 본 모양이야. 그때서야, 내 처지가 실감이 나기 시작했어.


입구에서부터 휠체어에 강제로 앉히다시피 해서 (글쎄, 걸어갈 수 있다니깐...) 병실로 대려다 주길래, 가서 있자니, 미리 예약해 둔 둘라(Doula)가 도착했어... 'We've got to register you, is there anyone that can come and help you? 병원 수속 해야 하는데, 보호자 어딨어?' 남편 곧 올 거라고, 내가 서류할 수 있다고 우겨도 병원 측에서 보호자를 계속 요구한다고 하더라고. 결국에는 둘라가 그냥 보호자로 사인하고, 의사도 곧 도착해서, 유도분만을 시작했지.


남편은 비행기표를 바꿔 바로 출발했지만, 직항 편이 없어서 워싱턴 D.C. → 뉴욕 → 멕시코시티 경로로 이동해야 했기에 출산을 지켜보지 못하는 건 확정시되었고... 첫째 아이를 타국에서 혼자 낳을 와이프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잔뜩 긴장한 게 말투에서 전달이 되더라고.


유도 분만이 잘 되지 않았고, 양수가 거의 다 빠진 상태에서 아기의 심박수에 변화가 생겨, 결국

새벽 5시경, 결국 응급 제왕절개로 아기를 출산했어. 의사를 만나고 오는 길에 먹었던 음식이 문제가 되긴 했는데... (의사가 병원에 오는 길에 뭘 먹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던지, 당황하더라고), 그래도 그나마 탈 없이 마취 & 수술을 할 수 있었어.


아기는 병원에서 케어하다가 오전 10시쯤, 내가 정신을 차리자 데려다주었어. 병실에 다랑 단 둘이, 처음 내 딸과 만난 그 순간은... 그냥 아이가 편안해 보여서 다행이다,라고 기억해. 솔직히 마취기에 피곤함 때문인지, 아기는 크립에서, 나는 병실에서 계속 잤던 기억만 나네. 오후 4시쯤, 공항에서 도착한 남편이 가져온 옷을 빨지도 못하고 급히 입히고, 그렇게 예정보다 3주나 빨리 우리는 부모가 되었어.


엄마, 그리고 우리의 닮은 운명


머나먼 타국에서 혼자 출산을 하고 '고생'한 내게, 엄마는 이렇게 말했어.

“참… 딸이라고 이런 운명까지 닮았니…”


엄마도 두 번의 출산을 혼자 견뎌야 했다고 해.

아빠가 해외에서 건설 인력으로 일하는 동안, 오빠를 출산할 때도 남편도, 친정엄마도 없이, 낯선 시댁에서 홀로 아이를 낳았고... 진통이 심하게 오는 동안에도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고통을 견뎠다고 해.


내가 태어났을 때도, 아빠는 해외 원정 중이었대.

그리고 나는 태어난 지 6개월이 지나서야 아빠를 처음 만났는데,

아빠는 그때의 기억을 이렇게 말하곤 하지. “택시 안에서 엄마 젖 먹다가 힐끔힐끔 쳐다보던 얼굴이 참 귀여웠어.”


그러고 보면, 할머니도 막내삼촌을 임신했을 때, 보따리 장사를 하다가 기차를 타고 이동 중에 진통이 시작됐다고 하고, 결국 기차역에서 출산을 하셨고 해. 아이를 갖고 출산하고, 당연시 여기는 일이지만, 의학이 발전되고 편리시설이 생겨나도, 여전히 힘들게 이어지고 있는 건 분명한 듯.


이렇게 보면,

할머니, 엄마, 그리고 나, 세 사람의 출산 이야기 중에서 내 팔자가 가장 나았던 걸까?

세상이 더 좋아지고 있어도, 지독하게 닮은 엄마의 운명, 그래도 난 ‘덜 고생한’ 것 같기도 하네.

내 딸도 나의 운명을 닮겠지...?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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