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더 아픈 손가락은 있지
요즘 엄마와 며칠 째 냉전 중이야. 40대 중반이 되어서도, 엄마가 오빠를 '편애'한다고 여전히 심술부리는 중이거든.
엄마에게 오빠는 늘 아픈 손가락이었어. 스물다섯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아빠를 만나 대책 없는 혼전임신으로 낳은 첫아이.
다큐시리즈에서난 나올 만한 불가능한 환경 속에서 우리를 키워낸 엄마의 눈물의 사연을 책으로 몇 권을 써내도 모자랄 거야. 깡촌 시골집에서 시댁에서 병원에도 못 가고 힘든 목숨 건 출산을 겪고, 산후조리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 찬물만 마시고 몸이 망가진 이야기, 먹을 게 없어 신생아와 굶기가 일쑤였던 지난 시절 속 중심에는 언제나 가련한 아들이 있었으니까. 홍역 때문에 아파서 죽을뻔한 이야기, 아기 때 아궁이에 빠질뻔한 거 겨우 삼촌이 잡아서 큰 사고는 면했지만, 이마에 남아있는 화상자국. 잘 먹지 못해, 항상 아프고 약했던 오빠.
2년 뒤 낳은 나는, 이쁜 딸이 아닌, 가난 속에서 힘든 삶을 더 궁핍하게 만든 짐이었고, 친정에서 쌀을 얻어 집에 올 때, 버스비가 없어 딸은 업고, 아들을 안고 걸어서 집에 올 때는, 자신의 지독한 ‘팔자’만을 탓했다고 해.
엄마의 청춘과 맞 바꾼, 나란 존재. 나는 그런 엄마의 인정을 받고자 더욱 완벽한 딸이 되려 노력했던 거 같아. 엄마의 보조 따위 없이도, 학교에서는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중학생 때 이민 간 후에는 부모님이 운영하는 식당에 매일 가서 일을 돕고, 통역을 하며, 가사를 도우면서도, 엄마가 그렇게 원하던 명문대 입학까지 했으니.
그때 나에겐 단지 엄마의 따뜻한 말이 절실했던 거 같아. ‘엄마, 나 잘하고 있는 거지?’ 하지만, 엄마는 그렇게 애쓰는 내가 너무나 안쓰럽고 미안해서, 나를 외면한 걸까?, 단지 ‘그래, 너는 엄마 닮아 똑똑해서, 잘 살 거야’라고만 일관했고, 그런 무뚝뚝함이 나를 더 목마르게 했을지도.
그리고 요즘, 세 딸들을 케어하며 사는 전업엄마가 된 나는 요즘, 문득 엄마를 닮아가는 내 모습이 보여. 세 아이들 중 유난히 엄마의 관심에 목말라하는 첫째 딸의 모습에서 더욱더.
첫째 딸은 자기도 아직 아기였던 16개월 때 동생이 태어난 후로는, 항상 아빠와 보모 손에 맡겨지고, 엄마의 관심을 받지 못하며 자랐거든. 엄마가 안아주고 봐주길 바랐지만, 힘들게 동생을 출산한 엄마는, 신생아 동생을 케어하느라 힘겨웠고, 아빠는 그런 엄마와 동생이 힘들까 봐, 한 살짜리 딸을 보모에게 맡겼어. 그렇게 몸도 마음도 멀었던 엄마에 대한 갈망일까?
5살에 이미 킨더에서 모범생으로 불리는 첫째 딸은, 학교선생님에게도 '엄마가 보고 싶어 슬프다'라는 말을 종종 한다고 해. 방과 후에 놀이터에 같이 가면, 엄마의 관심을 받기 위해 소리쳐 ‘Mom, Look!’ ‘Mom, I want to show you something!’, ‘Mom, look what I can do!’ 아직은 16개월에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한 셋째를 따라다니라 바쁜 엄마는, 다 큰 딸이 한시의 틈도 주지 않고 불러재끼는 목소리에 은근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곤 하지. ‘이수야, I am busy, can you just go on and play with other kids?’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는 딸을 보며, 이런 생각이 가끔 들어. 혹시 내 엄마에게도 아픈 손가락은 오빠가 아니라, 내가 아니었을까? 항상 마음이 쓰이지만, 힘에 벅차 애써 외면해 버릴 수밖에 없었던 딸.
그 돌고 돌아, ‘내 아이들은 차별 없이 키우겠다’고 다짐 다짐하던 딸조차, 이미 힘에 벅찬 엄마가 되어, 아이들의 마음을 돌아봐줄 여유조차 잃어가는 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