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은 딸'과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
엄마는, 내가 외할머니 이야기를 꺼내면, 눈시울부터 붉어져. 자식을 위해 미국에 이민을 강행해서 일만 하며 살았던 엄마에게 외할머니는, 말로 다 못할 '한'으로 가슴에 남아있어.
너무나도 정정하시던 외할머니는, 80대에 치매가 찾아오셨고, 그 많던 자식들은 돌 볼 엄두를 내지 못해, 결국 요양원에 모시게 되었는데, 엄마는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딸과, 막 홀로서기를 시작한 아들을 두고 한국에 갈 수 없어, 할 수 있는 거라곤, 매달 요양원 비용을 보내는 것뿐이었어.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늘 똑같은 말을 되뇌듯 하시지.
‘내가 한국에서 모실 수 있었더라면, 약에 절어 정신이 혼미한 채로 누워서 힘들게 가시게 하지 않았을 텐데..’
가난 탓에 자식들 공부 한 번 제대로 못 시키고, 고생만 시키셨다며 평생 할머니를 원망하던 엄마는,
정작 할머니의 노후를 지켜드리지 못한 죄책감에 가슴이 미어지듯 아파서, 할머니에 대한 생각 조차에 못하셔.
못 배워 취직도 안 되던 엄마 아빠는, 한 푼 한 푼 모은 돈으로 장사를 하셨어. 식당, 하숙, 노래방... 동네의 작은 규모 가게들의 매상은 엄마아빠의 노동력에 비례했기에, 주말도 없이, 휴가도 없이 일만 하셨고, 최대한 지출을 줄이기 위해 외식도, 쇼핑도, 여행도 하지 않으셨지.
어린 시절, 나는 허름한 엄마가 창피했고, 무뚝뚝하고 센스 없는 엄마의 딸인 게 싫었어. 학교 행사나, 비 오는 날 우산을 가져다주거나, 선생님 면담을 하거나.. 어떤 이유로도 엄마가 학교에 한 번도 오지 않으셨지만, 오히려 그게 더 안심이 됐어. 사람들이 엄마를 보는 게 부끄러웠거든.
‘너희 엄마는 그렇게 돈 악착같이 모아서, 아마 숨겨놓은 돈이 엄청날 거다.’라고 삼촌이나 고모들이 떠들어대도, 엄마는 눈 깜짝하지도 않고, 같은 생활을 이어나가셨고, 엄마는 그렇게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딸 공부시키면서, 자신의 인생에 큰 성공을 이룬 것처럼 자랑스러워하셨지.
이제 70대 중반이 되어있는 내 엄마는, 할머니에게는 부끄러운 딸이지만, 자신의 딸에게는 부끄럽지 않은 엄마로 남고 싶어 매일 고민하셔.
딸이 돈 때문에 고생하지 않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
세 딸을 키우느라 정신없이 살며, 혹이나 밥을 대충 먹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아이들을 돌보느라 몸을 축내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혹시 아이들 태우고 운전하며 가다가 교통사고라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
해외에 살면서 1년에 한 번도 잘 못 보는 딸의 가족, 바쁠까 봐 망설이며 전화도 자주 못하는 엄마는, 딸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어, 가끔 하는 전화통화에도 ‘딸에게 항상 밥 잘 챙겨 먹고 건강 잘 챙겨라’라는 말만 반복하시고, 자신의 이야기나, 아픈 이야기는 나에게는 하지도 않으시고, 아빠가 이것저것 말하는걸 옆에서 들으면서 ‘왜 바쁜 애한테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해..”하면서 타박하시지.
이제 나도 엄마가 되어보니, 자식들 키우기 위해, 자신을 버리고 평생을 살아낸 내 엄마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알게 되었고, 엄마를 부끄럽게 여기던 철없던 시절을 반성해.
그리고 생각하지, '이제 늙어가는 내 엄마에게, 나는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될 수 있을까?'
하루하루 버겁게 살아내고 있는 나는, 내 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