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보단 더 나은 너의 삶

엄마가 된 딸의 치맛바람

by 박은정







어렸을 때는 많은 추억이 없어. 엄마가 날 유치원에 보내지 않았기에, 엄마 아빠가 운영하던 식당 구석에서 자랐거든. 글씨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길거리 간판을 읽는다던지, 전단지를 본다던지 하면서, 글을 배웠고, 어렸을 때부터 뭐든 혼자 배우고, 혼자 해결에 나가는 것에 익숙하게 컸지.


동네 국민학교에 처음 입학하던 날 너무 벅차하던 기분이 생각나. 드디어 학교를 간다는 감격..

‘나는 동생들 줄줄이 낳아놓고, 일 하러 나간 할머니 때문에, 국민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막내 동생 업고 하루 종일 보냈다..’라는 엄마는, 아무런 걱정 없이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것에 감사하라고 가르쳤어.


하지만, 학교에 그 흔한 촌지도, 선생님 선물도 사들고 한 번도 오지 않은 엄마.

‘숙제는 다 했니?’ 나는 것 말고는, 아무런 보조도 해주지 않았던 엄마.


초등학교 방과 후 활동으로 클래식 기타 수업이 있었어. 아빠가 가르쳐준 도레미 덕에 자연스럽게 기타에 흥미가 생겼고, 열정 넘치던 젊은 선생님 덕분에 기타부에 들어가 무료로 수업도 들을 수 있었지.

소질 있다고 예쁨도 받았지만, 결국 기타는 혼자 즐기는 취미로만 남았어, 그리고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

“그때 엄마가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셨다면, 나는 지금 클래식 기타리스트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영특하지만,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는, 공부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지.

반에서 10등 안팎.. 아주 눈에 띄지도, 그렇다 할 문제도 없이 정말 평범하게 자란 나는, 그 당시 내 동네 친구들도 다 비슷한 상황으로 자랐기에 엄마아빠한테 특별히 서운하거나, 억울한 감정도 없이 자랐던 거 같아.


그렇지만, 힘든 이민 생활. 부모의 보조가 없어, 언제나 수면 위에 간신히 떠 있기 위해 팔다리를 쉬지 않고 휘저어야 했던 삶. 어떤 일이든 스스로 알아내고, 스스로 해결해야 했기에, 나는 늘 ‘평균보다 약간 위’의 삶, 그 이상으로 오르지는 못했어.


좋은 대학을 평균 학점으로 졸업하고, 동기들이 가는 좋은 회사 취직은 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에, 학위의 학위를 거듭해, 석사, 박사를 졸업했고, 결국엔 학교에서 만난 선배의 인맥으로 국제기구에 취직까지 했지만,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벽에 부딪히며 끊임없이 버둥거리며 사는 삶.


결국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남편을 따라 주재원 배우자의 삶을 살고 있고, 국제이사를 자주 해야 한다는 어려움은 있지만, 현지에서, 아이들을 최고 수준의 사립학교에 보낼 수 있다 것에 감사하지. 재정 걱정 없이,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의 방과 후 활동도 시킬 수도 있고.


아직 킨더도 시작 안 했지만, 내 큰 딸은, 영어, 스페인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발레, 리듬체조, 수영, 그리고 어반댄스까지 하고 있어. 둘째도 이제 4돌이 지났고, 리듬체조는 힘들다고 관뒀지만, 춤추는 것은 좋아해 어반댄스 수업은 몇 달째 꾸준히 하고 있고.


아이들의 운전기사로, 방과 후 액티비티를 데리고 다니는 게 나의 일상이 되었지만, 아이들에게 내가 누리지 못한 특례를 주는 것이 나에겐 큰 보람이야. 나는 항상 수면에 간신히 떠 있는 삶을 살았지만, 내가 보조해 주는 나의 딸들의 인생 내 삶보다 조금 더 낫다면, 그걸로 난.. 충분히 감사해.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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