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손으로 치면 부서질 듯한 살얼음. 길 가장자리에 고인 빗물이 살짝 얼어붙은 것이다. 아침 출근길에 올겨울 첫 얼음을 만났다. 머지않아 동장군이 겨울왕국의 문을 활짝 열 것이다. 그렇지만 밖이 아무리 추워도 집에서 수도꼭지를 틀면 금세 따뜻한 물이 흘러나온다. 가끔 세수를 하다 보면 온수가 귀했던 유년의 겨울이 떠오른다.
강원도 두메산골은 아니지만 시골의 겨울은 늘 추웠다. 수도를 틀면 당연히 찬물만 나온다. 온수를 얻으려면 아궁이에 장작을 한참 때야 한다. 그렇게 물을 펄펄 끓인 뒤 찬물과 섞어서 쓴다. 요즘 말로 하자면 날이면 날마다 ‘불멍’을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게 겨울날이다. 그러다 한파에 수도가 얼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샘이나 개울에서 물을 길어와야 하니까. 칼바람을 맞으며 물지게를 지는 일은 동네 아이들에게 만만치 않는 도전이었다.
그래도 돌아보면 유년의 겨울왕국은 최고였다. 빛나는 궁전은 없었지만 압도적으로 재밌는 놀이가 있었으니까. 나는 겨울 내내 연날리기, 썰매나 눈썰매 타기를 실컷 하며 놀았다.
먼저 연날리기. 겨울 방학 동안 보통 연을 10여 개 만든다. 대나무를 얇게 깎아 연살을 만들고 달력을 붙여 손쉽게 완성한다. 멋진 방패연은 연살이 많고 균형 잡기가 쉽지 않아서 손쉬운 가오리연만 숱하게 만들었다. 들판이 모두 놀이터이니 아무런 방해가 없다. 그저 쌩쌩 부는 겨울바람에 날리고 또 날린다. 손수 만든 연이 하늘 높이 자유롭게 누비는 모습을 지켜보면 얼마나 짜릿한지 모른다. 친구들과 같이 연을 날릴 때면 서로 높이 띄우기 위해 승부욕에 불타곤 한다.
지금이야 손재주가 형편없지만 어릴 때는 달랐다. 시골 아이들은 낫이나 톱, 칼을 사용해 뭐든지 척척 만든다. 그러니 썰매를 만드는 게 별일은 아니다. 연장을 이용해 한두 시간 뚝딱거리면 마음에 드는 썰매를 손에 넣을 수 있다. 추위가 심해지면 마을에 하나뿐인 저수지가 꽝꽝 얼어붙는다. 그러면 너 나 할 것 없이 저수지 빙판에서 썰매를 즐긴다. 그렇게 빙판을 쉴 새 없이 달리다 보면 추위는 그냥 사라진다.
겨울 놀이의 최고봉은 단연 눈썰매 타기다. 눈썰매장은 길고 경사진 밭. 펑펑 눈이 쏟아지는 날이면 동네 아이들이 대부분 그곳으로 모인다. 저마다 비료포대 썰매를 하나씩 갖고 씽씽 달린다. 빨리 달리기는 기본이고 일부러 부딪히고 엉덩방아를 찧고 제멋대로 뒹군다. 그 쾌감은 잘 갖춰진 놀이공원 눈썰매장에 비할 바가 아니다.
세월이 지나도 유년의 겨울왕국은 생생하다. 겨울이 찾아오면 내 가슴을 뛰게 하고 해맑은 웃음을 불러온다. 날씨를 보아하니 머지않아 눈꽃이 제대로 날릴 것이다. 그러면 저절로 겨울왕국의 마법에 걸려들지 않을까.
2023년 11월 28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