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 시화전

by 여산희

'검은 토끼의 해'에 걸맞게 신바람나게 뛰었는가? 어느덧 2023년 계묘년의 끝자락을 의식하면서 자문해 본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일정과 무관하게 괜스레 마음이 바쁘다. 그렇다고 연말에 특별한 일을 꾸미는 스타일이 아니다. 모름지기 연말은 조용하고 여유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런데 올 12월에는 특별한 일이 기다리고 있다. 시인으로서 첫 시화전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시조시인으로 등단은 했지만 그동안 시조 창작에 매달린 적이 없다. 이따금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로만 시조를 썼다. 그러다가 평소 애정하는 한 문학인 모임에서 시화전을 개최하기로 했다. 몇 달 전의 일이다. 이 시화전은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처음 시화전이라는 단어를 듣고 마음이 두근거렸다. 게다가 실력 있는 캘리그라피 작가가 직접 시를 써 준다니. 얼마나 고마운 기회인가. 그 두근거림은 창작으로 이어졌다. 사회전의 취지를 헤아리며 단시조를 몇 편 썼다. 좋은 작품을 쓰는 게 쉽지 않기에 시화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자는 마음만은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출품한 작품은 '가족'이라는 제목의 단시조다.


손바닥

정원 안에

옹기종기

모인 꽃들


햇살엔

같이 방긋

빗물엔

함께 쑥쑥


울타리

하나 세우면

사시사철

봄봄봄


이 시조를 쓸 때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그러면서 올봄에 마주한 사랑스러운 풍경이 하나 떠올랐다. 보도블록 틈새에 핀 보랏빛 제비꽃. 한 뼘도 되지 않는 땅에 무려 20여 송이나 피어 있었다. 흥부가 와서 봤다면 기절초풍했을 것이다. 집은 비좁지만 온 식구가 하나같이 활짝 웃고 있는 가족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어쩌면 이 시조는 제비꽃이 나에게 준 선물인 셈이다.


내 인생의 첫 시화전이 시나브로 다가온다. 좋은 글벗들과 함께하니 마음 든든하고 기대가 된다. 올봄에 보랏빛 제비꽃 가족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 덕분에 시조를 쓰고 시화전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졸시이지만 내 작품이 시화전을 찾은 이들에게 작은 기쁨과 행복을 전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리고 이번 시화전이 시인으로서 더욱 성장하는 소중한 씨앗이 되리라 믿어 본다.


2023년 11월 14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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