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구상의 시 '꽃자리'의 한 구절이다. 나는 이 작품을 이렇게 읽어 본다.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가 더할 나위 없는 동네라고 말이다.
매체를 통해서 세계를 보면 한번쯤 살고 싶다는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곳이 참 많다. 탄성을 자아내는 풍광을 갖춘 곳이라든지, 순수하고 인정이 많은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룬 곳이라든지, 여유로운 풍류의 삶을 실현한 곳이라든지. 굳이 세계로 눈을 돌리지 않더라도 살기 좋은 동네는 국내에도 많다. 그렇지만 좋아 보이는 곳은 좋아 보이는 곳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곳은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다.
내게는 광명이 가장 소중한 동네다. 결혼과 동시에 광명에 정착했다. 새로운 삶을 꾸리고 두 아들을 낳아 길렀다. 어느덧 20여 년을 살았다. 돌아보니 고향에서 보낸 시간은 기껏 중학교 때까지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자취를 시작해 여러 동네를 거쳤다. 그리고 광명에 깊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앞으로도 그 뿌리가 쉬이 뽑히지는 않을 듯하다.
그렇지만 광명을 모르고 살았다. 20~30대에는 회사 업무를 막중한 지상 과제로 삼았다. 일을 좇아 바쁘게 다니다 보니 광명은 그냥 사는 곳이었다. 주말에 안양천을 걷거나 도덕산, 구름산을 올랐지만 거기까지였다. 광명에 어떤 문화 공간이 있고, 어떤 축제가 있는지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지역의 모임에서 활동해 보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2020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 대유행. 수년 동안 지구촌이 갑갑한 상황에서 나 역시 비껴갈 수 없었다. 그 무렵 종로나 강남에서 열리는 독서모임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모임이 뚝 끊어졌다. 언제 다시 대면 모임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되니 갈망이 더 커졌다. 결국 내가 사는 광명에서 독서모임을 시도해 보자고 마음을 먹게 됐다.
2021년 7월 손수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이웃과 책을 읽고 대화하며 풍요한 삶을 함께 일구는 ‘광명산책’(광명에서 산보하듯 책 읽기)이다. 매월 거르지 않고 정기 모임을 진행해 2023년 10월 현재 26회의 독서모임을 했다. 처음엔 혼자 시작했지만 지금은 다른 독서모임이 부럽지 않을 정도의 이웃이 함께하고 있다.
광명산책을 시작으로 광명에 대한 사랑이 조금씩 커졌다. 지난해에는 광명자치대학 마을공동체학과에 입학했다. 광명자치대학은 살기 좋은 광명시를 만들고 싶어하는 주민 활동가를 양성하기 위해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마을공동체학과에 입학했는데, 그곳에서 만난 이웃들이 신선한 자극을 줬다. 주민자치에 앞장서는 분, 봉사를 묵묵히 실천하는 분, 지역의 문제를 제대로 파고드는 분 등 활동 분야는 달랐지만 광명에 대한 애정이 큰 분들이었다. 그리고 내가 즐겁게 참여하는 독서모임도 지역공동체에 분명히 보탬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얼마 전에는 차를 타고 가다가 흥미로운 플래카드를 접했다. 광명시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공익활동 홍보기자단 1기를 모집한다는 소식이었다. 기자로 일한 경험이 있는 나는 별로 고민하지 않고 지원했고, 일명 '공익홀씨단'의 일원으로 조만간 활동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어떤 활동을 할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즐겁게 참여해 보겠다.
구상의 시 ‘꽃자리’를 다시 읽어 본다. 내가 사는 곳이 낙원이고 천국이다. 광명이 바로 꽃자리다. 그렇다면 ‘광명 꽃자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가져 본다.
2023년 10월 24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