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강
“나, 얼마 전에 상무로 승진했다.”(J)
“연말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거야.”(L)
“큰애가 삼성전자 1차 시험에 합격하고 2차를 준비하고 있어.”(P)
“뭐, 우리 사랑은 계속 잘되고 있지.”(E)
2023년 시월 중순, 가산디지털단지역 근처에 있는 생태탕집. 따끈하고 시원한 국물이 보글보글 끓었다. 아울러 여러 가지 좋은 소식이 감칠맛을 더했다. 초등학교 친구 다섯이 모인 자리는 언제나처럼 즐거웠다.
살면서 여러 모임을 경험한다. 떠올리기만 해도 웃음이 피어나는 모임도 있지만, ‘굳이’라는 단어를 앞세우게 되는 모임도 분명히 있다. 또 모임의 구성이나 성격에 따라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거나 부담을 가지기도 한다. 그런데 내게는 완전한 무방비로 참석하는 모임이 있다. 바로 초등학교 동창 모임이다. 친구들과 약속이 잡히면 그때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는 걸음마다 설렘이 따라붙는다.
처음 모임을 시작한 때는 2014년 1월. 우리는 오랜 공백을 깨고 40대 초반에 만났다. 이후 해마다 서너 번 정도 모임을 이어오다 보니 어느덧 10년을 헤아리게 됐다. 내가 네이버 밴드에 동창회 모임을 만들 때만 해도 이렇게 모임이 지속될 줄은 몰랐다. 그렇지만 우리는 저마다 각별한 그리움을 품고 있는 듯하다. 먼 시골에서 유년을 함께한 친구들을 수도권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니, 그저 감격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장곡초등학교. 경북 칠곡군 석적읍 중리에 있는 모교다. 지금은 학교도 번듯하고 학생 수도 많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사뭇 달랐다. 낡은 교실에 학년마다 반이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30명도 안 되는 친구들과 6년 내내 함께 공부하고 뛰어놀았다. 서로를 속속들이 알 수밖에 없었다. 그때 학교 주위는 온통 논밭이었다. 가을이면 낙동강 둔치로 소풍을 가고, 겨울이 되면 난로에 땔 나무를 하러 가던 풍경이 눈앞에 선하다.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시절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마음의 보물을 얻은 시기였다.
동창 모임은 소박하다. 거창한 이야기는 필요 없다. 네댓 명이 모여서 안부나 근황을 나눈다. 좋은 일이 있으면 축하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어깨들 두드려 준다. 그리고 모임 때마다 초등학교 시절을 재생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신기한 것은 그 시절을 자꾸 재생해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는 점이다. 아마도 옛날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10대로 돌아가는 기쁨을 맛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고향에 살고 있는 친구들의 소식을 공유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하나둘 몸에 문제가 생기다 보니 건강에 관한 이야기가 빠짐없이 나온다. 서로 50대를 잘 헤쳐 가자고 입을 모은다.
세상에 유년의 나를 기억하는 친구는 몇 없다. 나의 유년과 오늘을 모두 알고 있는 친구는 더 적다. 그래서 초등학교 동창회 친구들이 소중하다. 다시 만난 그들과 지금까지 10년을 함께 웃었으니 앞으로도 건강하게 20년, 30년을 함께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두 사람 사이에 서로 물길이 튼다/한 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기뻐서 출렁이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마종기의 시 ‘우화의 강’ 중 일부를 읊조려 본다. 기쁨과 슬픔을 모두 끌어안으며 오랜 세월 유유히 흐르는 우정을 강을 그려본다. 그래, 새로운 친구도 좋지만 친구는 역시 오랜 친구다.
2023년 10월 17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