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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ergeia Oct 25. 2024

무엇보다 책방

먼 곳보다 내 주변부터

살다 보면 등잔 밑이 어두운 경우가 부지기수다. 봄이 어디 있는지 짚신이 닳도록 돌아다녔건만, 돌아와 보니 봄은 우리 집 매화나무 가지에 걸려 있었다는 중국의 시도 맥을 같이한다. 나에게는 그 이야기가 책방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전국 사방팔방 책방을 찾아다니면서 정작 내가 사는 동네책방은 아직 한 곳도 발길을 두지 못했다. 많은 동네책방의 마감시간이 오후 7시이기에 평일은 어렵다는 것을 내세워 보지만, 그저 핑계일 뿐이라는 걸 스스로 너무 잘 안다. 그러던 어느 수요일, 평소보다 이른 퇴근시간으로 인해 내가 사는 동네의 책방(그야말로 ‘동네책방’)에 당도할 수 있는 틈이 생겼다. 앞뒤 재지 않고 돌진했다. 틈새시장은 늘 짜릿하니까!

책방은 책이라는 상품을 판매하는 곳이다. 다만, 다른 제품과는 다르게 책은 네모난 종이가 결합된 물건 자체의 값어치보다는 그 속에 씐 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에게만 극도의 가치를 지닌다. 책방 주인은 책의 판매로 인하여 사익을 추구하지만 사회를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이끄는 공공의 역할의 중심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책방 운영이 일가의 경제를 책임지는 것으로 자리매김하였다면 일단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야 한다(고 나는 또 생각한다). 내가 <무엇보다 책방>을 가고 싶었던 것은 접근의 용이성을 주요 전략으로 삼지 않고 한적한 곳에 꽁꽁 숨어 책의 진가를 아는 사람이 왔으면 한다는 인터뷰를 본 이후였다. 진짜일까? 정말로? 이런 마음이 들었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가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이 시대에 그 실행이 가능한 건가? 그런 마음으로 운영하는 곳은 어떠할지에 대한 강한 호기심이 나를 이끌었다.

이동시간은 예측한 시간을 넘어가기 일쑤다. 꾸물거리다가 책방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1시간에서 30분으로 금세 반 토막 났다. 급한 마음에 스스로 발걸음을 채근하는데, 책방이 있을 것이라 생각지 못한 어느 곳이 도착장소라고 지도 앱이 알려주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 뚜벅뚜벅 계단을 오르면 <무엇보다 책방>을 만날 수 있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살짝 문을 열었다. 작은 공간은 책들로 가득했고 입구 오른쪽에는 그림책이 있었다. 책방에 오면 아는 책이 있는지 살펴보는 재미가 있는데 이곳은 공간의 반 이상이 독립출판물로 채워져 있기에 구면은 없었다(한쪽에는 기성 출판물도 있었는데 시간상 자세히 보지는 못하였다). 제목 하나하나 살펴보는 재미가 더해질수록 책장 간 이동 속도가 느려졌다. 나는 책방 전체가 커다란 선물인 양, 포장지를 조심스레 벗겨내는 아이처럼 그렇게 천천히 시선을 옮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기둥에 붙여진 이 문구를 발견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면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섬에 있는 서점 중>


내가 책을 읽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었다. 책을 읽다 보면 타인과의 유대, 연대, 공감, 연결이 자연스러워진다. 내 안의 당신이, 당신 안의 내가 확장되고 그만큼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진다. 나와 분명히 다를 수밖에 없는 타인과 함께일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 가능성의 시작이 책이다. 그 길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기 위해 책을 든다. 독립출판물 <나의 가시>, <엄마는 오늘도 일하러 갑니다>, <작은 책방 사용 설명서>가 오늘의 선생님이다.


무엇보다 책방은 온라인 서점을 운영하고 있었고, 참고서나 문제집도 주문이 가능하다고 한다. 미루어 짐작컨대, 대외 노출을 꺼린다고 보이지는 않았다. 인터뷰의 주인공이 바뀌었는지, 내가 다른 인터뷰와 헛갈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의 오해였다고 하더라도 그 덕분에 좋은 공간에 머물 수 있어서 감사하다. 어떤 생각으로 책방의 문을 열었든 그 문을 닫고 나가는 마음에는 따뜻함과 여유, 포근함과 포용력이 넘쳐흐른다. 만만치 않은 세상을 살아갈 에너지를 급속충전했다(급속방전되지 않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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