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례하지만, 저 설레도 되나요?
눈부신 햇살이 윤슬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던 날, 호반의 도시 춘천으로 향했다. 교외 방문의 목적이 무엇이든 나에게는 하나가 더 추가된다. 그곳에만 존재하는 동네 책방에 잠시 몸을 맡겨 보는 것, 낯선 지역에서 익숙한 장소를 찾아가는 것만큼 안락함이 또 있을까. 설렘이 가득한 채 실레책방으로 향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책방을 마주한다는 건 춘천이라고 다르지 않았지만, 가로수가 아닌 자연수들 사이를 지난다는 것은 새뜻했다.
차가 시동을 멈추기 전, 저 멀리서 눈에 들어온 책방을 보자 마음이 먼저 뛰어나갔다. 책방의 외관은 여느 시골집과 닮아있어 포근함과 정겨움이 내풍기고 있었다. 책방 앞마당에는 남자 한 분이 자전거의 체인을 손보고 계셨다. 손님인지 책방지기님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매우 조심스럽게 그리고 신중하게 물건을 다루는 모습을 보니, 무언가 이곳과 관련이 있으신 분 같기는 하였다.
책방에 들어서기 전에 오른쪽에 위치한 별도의 공간인 ‘참외방’을 들여다보니 조명, 액자, 액세서리들이 아기자기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깜찍하고 귀여운 공간에 금세 마음을 사로잡혔는데, 책방을 다 둘러보고 나니 여기는 인트로였을 뿐이다. 참외방 위 작은 옥상에도 오를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꼭대기에서 기지개를 켜고 상쾌한 공기를 머금고 내려왔다.
책방 안으로 발을 내밀자 오른쪽에서 나를 반기는 것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켜켜이 쌓인 중고책들이었다. 한 겹 한 겹 구경하느라 책방에 들어선 지 5분이 넘도록 내 자리는 여전히 문간이었다. 여기서 이미 감이 왔다. 이곳에서의 나의 컨셉은 걸음이 느린 아이가 될 것이라는 것을. 쭉 뻗은 복도를 성큼성큼 갈 수 없었던 건 벽면에 촘촘하게 채워진 것을 하나하나 눈에 담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이곳 실레마을이 소설가 김유정의 고향이며, <봄봄>과 <동백꽃>의 실제 배경이라는 것을 알았다. 몰랐기에 더 크게 다가왔던 감흥을 안고 본격적으로 책방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의 원래 용도였던 가정집의 모습을 유지한 채 공간을 활용해서인지 방방마다 따로 또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가 보았던 책방은 하나의 공간, 즉 원룸이었다면, 실레책방은 무려 포룸이었다. 책은 없지만 의자는 있었고 각종 꽃들이 즐비한 뒤뜰 같은 베란다까지 포함한다면 파이브룸이다!! 일타쌍피도 감지덕지할 마당에 일타오피라니, 횡재가 별거 있나 싶다. 공간마다 자리를 차지한 아기자기한 각종 소품들은 이곳을 빛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책방이라고 소개되어 있고, 책을 판매하고 있기에 책방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의심의 여지는 없지만, 이를 넘어선 문학관처럼 보였다. 얼마나 마음이 충족해졌는지 입장료를 내고 들어와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스쳤다.
곳곳에 많은 의자도 체류시간을 한없이 늘려준다. 책방 주인이 없으면 편하게 놀다 가라는 안내문은 안 그래도 이미 편한 마음에 든든한 보증서가 되어 주었다. 그래서일까? 이 아담한 공간에 나는 1시간 30분을 머물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리느라 애를 먹었다. 최근에 읽은 <안나 카레니나>의 영향으로 톨스토이의 소설 <결혼>과, 이곳에 앉아 읽었던 공지영 작가의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를 두 손에 들고 아쉬움을 달래 본다.
언젠간, 다시 인생을 보내고 싶은 곳, 확신형 인간이 아닌 내가 확신을 하고 있다. 실레책방은 분명 그런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