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내가 아니라, 당신 자녀에게 주라는 겁니다

과거 양육비 청구

by 장유미 변호사

내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유일한 것은

내가 먼저 잘 사는 것,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이다.

- 박노해,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중에서




30년 만에 꺼낸 마음

오래된 마음이 문을 두드릴 때가 있습니다. 잊으려 했고, 묻어두려 했던 시간이 어느 날 조용히 고개를 들고 말을 건네는 순간이요.

“요즘 TV에서 과거 양육비를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나니까… 자꾸 생각이 나서요.”

그분이 이혼한 지는 30년이 넘었습니다. 아이들은 이미 성인이 된 지 오래되었고, 정신없이 살아온 세월은 앞만 보게 만들었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말 앞에 그분은 서 계셨습니다.


스물여섯의 엄마에게 남겨진 것

스물 하나의 어린 나이에 그분은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남편은 생활비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목숨을 위협하는 폭력과 자존감을 짓밟고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외도가 있었지만, 미안해하기보다는 외려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잦아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전화해서는 법원 앞으로 나오라고 했답니다. 돌도 되지 않은 둘째를 업고 나간 자리에서 그분은 남편이 내민 이혼서류에 서명을 했습니다. 그날 이후 남편은 영영 사라졌습니다. 위자료도, 재산분할도, 양육비 약속도 없었습니다. 남은 것은 스물여섯의 엄마와 다섯 살, 두 살 된 아이들과 보증금 몇 백만 원짜리 지하 단칸방뿐이었습니다.


엄마의 자리를 지키는 일

홀로 아이 둘을 키우려 하니 생활에 대한 막막함이 그분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둘째 아이는 할머니에게 맡기기로 하였습니다. 말도 하지 못하는 어린 아기가 엄마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아기는 시골로 내려가는 길 내내 울었습니다. 찢어지는 마음을 뒤로하고 아기를 두고 돌아왔지만, 며칠이 지나도 헤어질 때 모습 그대로 서럽게 울기만 한다는 말을 듣자 눈앞에 아른거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아기를 다시 데려왔습니다.


그분은 곧바로 봉제공장 미싱일을 시작했고, 하루 종일 미싱 앞에 앉았습니다. 월급 43만 원 중 절반 가까운 돈이 둘째 아이를 맡기는 탁아소와 기저귀, 우유 값으로 나갔습니다. 둘째 아이는 그 탁아소의 문을 열고 들어가고 문을 닫고 나오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밤, 야근을 끝내고 부랴부랴 탁아소를 향했는데 불 꺼진 탁아소 한 구석에 남아 있는 아이는 그분의 아이뿐이었습니다. 아이를 업고 나오는데, 아이가 그분의 얼굴을 매만지면서 속삭였습니다. “엄마, 나 좀 일찍 데리러 오면 안 돼?”


그날, 그분은 결심했습니다. 나는 오로지 아이들의 엄마로만 살 거라고. 아무리 힘들어도, 사무치듯 외로워도… 그때부터 전쟁 같은 기나긴 날들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이 둘을 혼자 키우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살아온 세월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분은 늘 ‘지금이 제일 좋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신다고 합니다. 그런 그분이 되돌아본 과거는, 살아서 버틴 것이 아니라 버티다 보니 살아낸 것이었습니다.


돈 이야기가 나오면 끊어진 인연

가끔 아버지가 탁아소에 나타날 때가 있었지만, 원장님께서 “아버님도 탁아소 비용 좀 내주면 어떠냐”라고 말하자 그 후로 발길을 뚝 끊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아이가 대학 등록금을 부탁하자 자기는 돈이 없고 할머니한테 받아서 주겠노라고 하였습니다. 또 다른 아이가 독립할 때 도움을 요청하자 이번에도 어김없이 연락이 끊겼습니다. 아버지로서 마땅히 책임져야 할 상황 앞에서 그 사람은 늘 회피하고 사라졌습니다. 그런 사람을 그래도 아버지라고 마주해야 하는 아이들의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고 합니다.

그땐 법을 몰랐어요. 이제라도 바로 잡고 싶습니다.

스물여섯에 이혼을 했고, 그분만 바라보는 두 아이가 있기에 그저 하루하루 생존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때는 양육비가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설사 알았다고 하더라도 이를 청구할 시간적, 경제적, 심적 여유가 없었을 거라고 합니다. 그러다 최근 TV 속 뉴스에서 과거 양육비도 청구가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동안은 내 팔자니 운명이려니 살아왔는데, 보호받아야 할 정당한 권리였다는 사실을 안 순간 오랜 억울함이 가슴을 세차게 두드렸습니다.


우리가 제기한 과거 양육비 청구 소송은 조정으로 회부되었습니다. 30여 년 만에 그 사람을 마주해야 하는 그분의 걱정과 우려가 보였습니다. 조정 과정은 길고 조용했습니다. 상대방은 처음에는 무심하게 대응했고, 오히려 “지금 와서 무슨 양육비냐”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분은 억눌린 감정을 쏟아내는 대신, 오랜 시간 정리해 온 문장으로 덤덤했습니다.


“내가 받자는 게 아니라 당신 자녀에게 주라는 겁니다. 아버지의 부재로 정서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결핍하게 자라온 우리 아이들이 불쌍하지도 않습니까” 결국 상대방은 매달 100만 원씩, 3년간 총 3,600만 원을 지급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변호사의 마음에서

양육비 청구는 표면적으로는 돈을 청구하는 것이지만, 이건 단순한 돈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부의 인연은 끝날 수 있어도, 부모의 책임은 끝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남편이 아니어도 됩니다. 하지만, 한 번 아버지가 된 사람은 끝까지 아버지여야 합니다. 아이를 세상에 데려온 사람이라면, 그 아이의 삶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을 결코 벗을 수 없습니다. 부모 일방이 혼자 아이를 키웠고 상대방이 이에 대하여 전혀 부담하지 않았다면, 과거 양육비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키운 시간과 책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혹시 당신도, 혼자 아이를 키우셨나요? 양육비를 한 번도 받지 못하셨나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기억해 주세요. 권리는 말해야 살아납니다. 당신이 견딘 시간은 유효합니다. 책임은 늦게라도 물을 수 있습니다. 눈물로 지새운 밤이 지워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시간에 정당한 이름을 붙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침묵이 아니라, 권리의 언어로 남을 수 있습니다.


유노이아 법률사무소, 장유미 변호사 입니다.




법과 삶, 그리고 문학이 만나는 자리.

한 편의 시와 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유노이아의 법률 에세이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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