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기다림 대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길

임대차 명도소송

by 장유미 변호사

이웃을 그대들 몸처럼 사랑하라.

하지만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가 되라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믿음이 불안으로 바뀌는 순간

인천의 한 연립주택. 보증금 3천만 원, 월세 150만 원. 2년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첫 월세를 받을 때만 해도 해도 평범했습니다. 나이가 있으시고 몸도 약하신 의뢰인은 특별한 직업이 없으셨고, 이 임대차계약에서 나오는 차임으로 생활비를 하며 삶을 이어가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임차인은 계약이 체결된 지 두 달 만에 월세를 연체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주엔 꼭 드릴게요.”, “지금 은행 다녀오는 중이에요. 금방 연락드릴게요.” 의뢰인은 처음에는 그런 말을 믿었다고 합니다. 월세가 한두 달 밀리는 일은 흔한 일이니까요. ‘보증금에서 차감하면 되겠지, 잠시 사정이 어려운 것이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 때에 들어오지 않은 월세를 기다리는 것은 일상이 되었고, 급기야는 전기요금과 가스요금까지 밀려 임차인이 ‘공급중단 안내문’을 받은 사실을 알았을 때, 이제는 정말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뢰인은 또다시 기다렸습니다. 사정이 나아지면 바로 갚겠다는 말을 믿으며, 이번 달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더 이상 ‘사정’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문제라는 것을요. 지금 생각해 보면 믿어야 할 이유보다는, 그저 사람을 믿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이었습니다.


선의가 나를 해칠 때

의뢰인은 참 오랫동안 묵묵히 기다렸습니다. 상대의 어려움을 이해하려 노력했고, 2년의 임대차계약기간이 만료하고도 갈 곳이 없는 임차인에게 차임을 깎아주기도 하였습니다. 스스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상대방에게 기회를 준 것입니다. 보기 드문 선한 임대인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착함이 자신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불안은 커졌고, 자신이 권리자인데도 마치 채무자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휴대폰에 임차인의 번호가 뜨면 ‘이번에는 또 무슨 핑계를 대서 월세를 안 줄까’라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했고, 매번 ‘다음, 다음’을 말하는 임차인의 말에는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습니다. 의뢰인 역시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기에 차임을 받지 못해 텅 빈 통장을 볼 때는 ‘왜 모질지 못했을까’ 하며 스스로를 탓하기도 하였습니다. 상대의 사정을 헤아리느라 내 마음의 평화를 잃은 것입니다. 그렇게 의뢰인은 점점 말수가 줄었고, 결국 건강까지 악화되었습니다. 이제는 기다림을 멈추고, 스스로를 지켜야 할 시점이었습니다.


기다림 대신 선택한 행동

소송은 언제나 최후의 수단이어야 합니다. 저 역시 그렇게 믿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는 달랐습니다. 이미 2년 넘게 월세가 받지 못하였기에 보증금은 바닥이 났고, 임차인이 지급하지 않은 월세는 부당이득으로 쌓여갔습니다. 임대인은 못 받은 차임은 포기하겠으니 임대차목적물만 돌려달라고 했지만, 임차인은 차일피일 미루며 막무가내로 점유를 이어갔습니다.


저는 의뢰인에게 명도소송과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을 권했습니다. 그것은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소송이 아니라, 의뢰인이 다시 일상을 되찾기 위한 최소한의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의뢰인은 망설였습니다. 누군가를 법정에 세운다는 것이 내키지 않으셨나 봅니다. 그래서 저희는, 마지막으로 임차인에게 기회를 주고자, 명도를 요청하는 내용증명을 보냈습니다. 2주간의 시간을 부여했지만, 임차인은 아무런 답변도 없었습니다. 법원에 소장을 접수하자, 소장을 받은 임차인은 즉시 집을 비워주겠다며 소를 취하해 달라고 했습니다. 의뢰인은 그제야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될 걸, 왜 더 빨리 내 권리를 지키지 않았을까요.”


배려에도 필요한 경계

남을 배려하는 일은 분명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배려가 자신을 무너뜨린다면, 그것은 더 이상 선의가 아닙니다. 상대의 사정을 이해하려는 마음은 아름답지만, 상대가 그 마음을 이용하는 순간 그 관계는 균형을 잃습니다. 의뢰인은 여러 번 양보했고, 상대는 여러 번 약속을 어겼습니다. 그럼에도 의뢰인은 “그래도 한 번 더 기다려보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거저 얻은 호의는 사람의 태도를 바꾸지 못했습니다. 감사는커녕 당연함만 남았고, 그 결과는 의뢰인에게 또 다른 상처로 돌아왔습니다. 진짜 배려는 나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만 가능합니다. 남을 위하려면 먼저 나 자신이 단단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 채로는, 누구도 진정으로 도울 수 없습니다.


법의 냉정함이 우리를 지킬 때

법은 종종 차갑게 느껴집니다. 사건에 깃든 수많은 사정보다는 객관적인 증거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차가움이야말로 때로는 사람의 선의를 보호하는 마지막 울타리가 됩니다. 법적 절차를 밟는다는 것은 상대를 벌하기 위한 일이 아니라, 무너진 균형을 되돌리고 내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법정까지 가면 진흙탕 싸움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주저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때로는 법의 문을 두드리는 일이야말로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기다림이 선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다림이 나를 병들게 한다면, 그건 더 이상 선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지키는 일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결국 더 큰 선을 위한 출발입니다.


변호사의 마음에서

유노이아는 언제나 ‘소송은 마지막이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만큼은 예외였습니다. 2년 넘게 이어진 기다림 속에서 의뢰인은 권리자이면서도 늘 불안했고, 상대방의 눈치를 보며 살았습니다. 그 시간은 너무 길고 고단했습니다. 제가 의뢰인에게 권한 소송은상대를 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스스로의 삶을 되찾도록 돕기 위한 권유였습니다.


기다림이 선이 되는 순간이 있고, 결단이 선이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기다림은 어떤 모습인가요? 그 기다림이 당신을 지키고 있나요, 아니면 당신을 조금씩 사라지게 하고 있나요?


당신의 권리는 말해야 살아납니다. 당신의 평화는 스스로의 선택에서 시작됩니다.
진짜 배려는, 나를 단단히 세우는 데서 시작됩니다.


유노이아 법률사무소, 장유미 변호사 입니다.


법과 삶, 그리고 문학이 만나는 자리.

한 편의 시와 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유노이아의 법률 에세이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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