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엄마의 것을 되찾아 드리고 싶었습니다

진정명의회복 소송을 넘지 못한 이유

by 장유미 변호사

그 어떤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깊은 수렁으로 떨어지더라도

결코 당신의 불을 꺼트리지는 마라

- 도나 애슈워스, <불을 지피는 사람> 중에서







그저 엄마 것을 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분은 삼 남매 중 첫째 아들이었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고 오랫동안 부모님과 함께 살았고, 특히 아버지가 병환으로 누우신 뒤에는 사실상 혼자서 부모님을 부양해 왔습니다.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두 동생들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상속문제로 갈등이 생기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말했다고 합니다.

“아버지 명의지만… 사실 이건 원래 엄마 돈으로 산 거잖아. 어머니께 드리자.”

두 동생들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서 삼 남매는 상속을 포기했습니다. 어머니에게 부담되지 않도록, 상속세 없이 안전하게 어머니 앞으로 소유권이 넘어가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무료 상담이 안내한 ‘한 줄’의 답

그분은 여기저기 무료 상담을 다녔고, 여러 곳에서 똑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원래 어머니 것이었다면 어머니를 원고로 해서 진정명의회복 소유권이전등기청구소송을 제기하세요. 충분히 이기실 겁니다.”

처음 듣는 용어였지만, 설명을 들으니 그럴듯했습니다. 실제로 어머니 통장에서 대금이 이체된 내역도 있고, 과거에 어머니 명의로 등기하려고 신청서까지 작성했던 기록이 있으며, 여러 정황상 부동산을 사기 위한 자금은 모두 어머니의 돈에서 나왔다는 증거들이 있었으니까요. 이 정도 증거면 충분하다고, 여러 상담기관으로부터 말을 들었기에 승소에 대한 확신은 더해졌습니다. 그분은 성실하게 자료를 내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판결문을 받는 순간, 그의 믿음은 일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판결문에는 이렇게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원고는 등기명의자였던 적도, 법률상 소유자였던 적도 없어 진정명의회복 청구는 이유 없다.”

이 한 문장으로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그분이 정성 들여 제출한 자료로도, 어머니 돈으로 구매했다는 수많은 증거들도 법원의 문턱을 넘을 수 없었습니다. 판결문을 받아 들고 나서도 그분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원래 엄마의 것이었는데 왜 안 되나요? 왜 증거가 이렇게 많아도 안 되는 겁니까? 항소하면 되겠죠? 아직 기간이 남았잖아요.”

저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명확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소송은 ‘등기명의를 회복하는 소송’입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과거에 한 번도 이 부동산의 등기명의인이 아니었습니다. 존재하지 않았던 명의를 ‘회복’할 방법은 법적으로 없습니다. 항소해도 결과가 바뀌기 어렵습니다.”

그 말에 그분은 한참 동안 침묵했습니다. 그 침묵 너머로, 그동안 혼자 감당했을 마음의 무게가 느껴졌습니다.


‘단정적인 한마디’가 만든 착각

“상담해 주신 분들이 ‘이건 됩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라고 했어요. 그래서 희망이 생겼어요. 그래서 나 홀로 소송을 냈어요.”

여기서 제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무료 상담에 내재된 한계, 즉, 짧은 시간과 제한된 정보만 듣고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은 때로 누군가의 인생을 잘못된 방향으로 안내할 수 있습니다. 사건을 하면서 저는 너무나 자주 경험합니다. ‘변수’는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 처음 들은 사실이 사실이 아닐 때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쟁점이 뒤늦게 등장하기도 하고, 증거라고 믿었던 것들이 법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사건은 언제나 복잡하고, 법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구조적이며, 진실과 승소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건을 맡을 때마다 저는 가능한 한 처음부터 깊이 듣고, 넓게 검토하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려 합니다. 단정이 아니라 조심스러운 판단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분을 잘못된 길로 이끈 것은 그분의 무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분에게 전달된 지나치게 단정적인 한마디였습니다.


돌아서는 뒷모습을 보며

그분은 1심 판결문을 다시 접어들고, 고개를 숙인 채 상담실을 나섰습니다. 그 뒷모습은 누군가를 오랫동안 보살핀 사람의 고된 어깨였습니다. 어머니를 위해 자신의 몫을 내려놓고, 형제를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순간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님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착한 사람일수록 법을 더 잘 알아야 합니다.”

선량함은 미덕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 선량함에 상응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경우가 더 많은 것이 불편한 진실과 씁쓸한 현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법이 어떤 구조로 흘러가는지, 어떤 요건이 필요한지를. 옳은 마음만으로는 원하는 결과에 가 닿기 힘들 수 있습니다. 가능한 결과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우리는 꼭 알아야 합니다. 자신과, 자신이 지키고 싶은 사람을 더 단단히 보호하기 위해서요.


변호사의 마음에서

확신에 차서 시작했던 소송의 결과가 패소로 돌아오자 그분은 깊이 낙담하였습니다. “이기면 상속세 없이 어머니께 드릴 수 있다”는 희망으로 가산세 부담까지 감수하고 버텨 왔는데, 모든 힘이 한순간에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가족을 위해, 어머니를 위해 가장 옳다고 믿는 선택을 했습니다. 여러 곳에서 들은 “됩니다, 이깁니다”라는 말에 희망을 걸었던 것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법의 세계는 의도와 도덕만으로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 특히 선량한 사람일수록 - 법을 더 잘 알아야 합니다. 그 지식은 때로는 방패가 되고, 때로는 방향을 바로잡는 나침반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마음에 남은 상처가 오래 머물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번 경험이 그분에게 ‘법을 정확하게 다룰 줄 아는 힘을 키워야겠다’는 단단한 결심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유노이아 법률사무소, 장유미 변호사 입니다.

법과 삶, 그리고 문학이 만나는 자리.

한 편의 시와 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유노이아의 법률 에세이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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