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자녀에게 주어야 할 것

우리는 자녀에게 무엇을 남겨주어야 할까요?

by 장유미 변호사

세상에 와서

내가 가진 생각 가운데서

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


- 나태주, <너를 두고> 중에서




그래도 하나뿐인 내 아들이니까요

상담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습니다. 불편한 걸음으로 들어오신 그분은 마스크를 벗어도 되겠느냐며 조심스럽게 물으셨습니다. 몸은 많이 쇠약해 보였지만, 눈빛만은 유난히 또렷했습니다.


“사십이 다 된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그분이 담담하게 꺼낸 이야기 안에 그렇게 참담한 현실이 숨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5년 전, 하나뿐인 아들이 재혼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그분은 아들의 새 출발을 누구보다 기뻐하며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아들 명의로 아파트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사면 아들이 자기 아내 볼 낯이 없을 것 같았어요. 재혼하는 입장에서 아들의 기를 살려주고 싶었어요. 하나뿐인 제 아들이니까요.”


당시 구입가는 5억 원이었습니다. 구입대금, 취득세, 중개수수료까지 모두 그분이 부담하셨습니다. 마음 한구석에는 조심스러운 바람이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이미 일흔이 넘은 나이였기에, 혹시라도 나중에 돈이 필요하게 되면 이 집을 팔아서 살아야겠다고요. 하지만 그 말은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셨습니다. 아들에게 부담이 될까 봐서요.


가등기 해제가 시작이었습니다

아들은 그 집을 담보로 여러 번 대출을 받았습니다. 평소 아들의 씀씀이를 잘 아셨기에, 그분은 불안해졌습니다. 그래서 집을 지키기 위해 최초 매입가 5억 원에 대해 자신의 이름으로 가등기를 설정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분은 남은 여생이 7개월뿐이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의사의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아들의 집에 설정된 자신의 가등기였습니다. 혹시라도 갑자기 몸이 더 나빠져 아들에게 부담이 될까 서둘러 가등기를 해제해야겠다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날, 병원을 나서자마자 그분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등기소였습니다.


그분의 아내는 아들에게 아버지의 건강 상태와 가등기 해제 사실을 알렸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아들의 전화는 뜸해졌고, 그분의 전화는 부재중 통화로 남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죽더라도 치료는 받고 싶었습니다

그분은 처음에는 약을 드시지 않았습니다. 한 달 약값만 해도 700만 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살면 얼마나 산다고’ 생각하셨습니다. 남은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으셨던 겁니다. 하지만 몸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이러다 얼마 남지 않은 여생도 못 채우고 죽겠다 싶었어요.” 결국 항암치료를 시작하셨습니다. 치료 덕분에 타는 듯한 고통은 줄었지만,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집을 팔아서 아버지 약값 좀 하자.”

그 집의 시세는 20억 원에 달했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부담한 구입대금 5억 원만 요청하셨고, 나머지는 아들이 모두 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아들의 연락은 완전히 끊겼습니다.


유난히 길었던 올해 추석,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는 시간은 더욱 길게만 느껴졌습니다. 결국 그분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아들의 집을 찾아가셨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병세를 잘 알면서도, “아버지가 무슨 돈이 필요하냐”며 가족을 데리고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1시간쯤 후, 문을 두드린 것은 아들이 아니라 경찰관이었습니다.

“주거침입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나가 주셔야 합니다.”


그분은 말없이 터덜터덜 밖으로 걸어 나오셨습니다.

“아들에게 배신을 당하니까… 사실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그래도 죽더라도 끝까지 치료는 받고 싶습니다.”


아들에게 준 집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이 집, 다시 제 이름으로 돌려받을 수는 없나요?”
그분의 질문 안에는 후회와 절망이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법적으로 그분의 상황은 ‘부담부 증여’ 혹은 ‘명의신탁약정’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부담부 증여는 일정한 조건을 걸고 재산을 이전했을 때, 그 의무가 이행되지 않으면 증여를 취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아들에게 “부양을 조건으로 한다”는 말을 명시적으로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법은 마음속의 바람이 아니라 증거로 남은 약속만 보호합니다.


그렇다면, 명의신탁약정으로 주장할 수 있을까요. 아파트 구입에 필요한 모든 대금을 그분이 부담하시고, 등기필증을 보관하며 세금과 공과금도 계속 납부해 오셨다면, 실질적 소유자는 그분으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이 사건의 매도인은 부자 사이의 명의신탁약정을 알지 못했기에, 아들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는 유효합니다. 결국 그분은 아들에게 “명의신탁 약정이 무효이므로 집 자체를 돌려달라”라고 주장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아들이 부당하게 얻은 이익 — 즉 매입가 5억 원과 각종 세금, 중개수수료 상당액 — 에 대해서는 반환청구가 가능할 여지가 있습니다.


변호사의 마음에서

그분의 사연을 들으며, “이 일이 악몽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마주해야 하는 지독한 현실이라는 사실이 제 마음을 크게 짓눌렀습니다.


이 글을 통해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모님들, 자식에 대한 사랑을 재산으로 증명하지 마십시오. 자식에게 주어야 할 것은 돈보다는 스스로 삶을 살아낼 힘입니다.


이 말은 부모이자 변호사인 제 마음의 다짐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두 아이의 엄마이니까요.


유노이아 법률사무소, 장유미 변호사 입니다.




법과 삶, 그리고 문학이 만나는 자리.

한 편의 시와 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유노이아의 법률 에세이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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