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모두가 잠든 새벽, 무인상점에 드리운 그림자

절도 범인은 잡혔는데, 피해 보상은요?

by 장유미 변호사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 정호승,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중에서






새벽 세 시, 깨진 신뢰

새벽 3시 13분. 무인으로 운영되는 상점의 CCTV에는 냉장고 앞을 두리번거리는 낯선 그림자가 비쳤습니다. 검은색 후드티 모자를 뒤집어쓴 그 사람은 냉장고를 한참 바라보더니 7개 제품, 총 11개 수량의 밀키트 상품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새벽에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양을 구매하는 건 흔치 않은 일입니다. 그 새벽의 불안은, 언제나 그렇듯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이 다녀간 자리에는 텅 빈 냉장고만 있었을 뿐, 결제 POS에는 그 어떤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가져간 것의 총금액은 99,800원. 누군가에게는 적은 금액일지 몰라도, 사장님에게 그것은 가족의 생계이자 성실하게 살아온 시간의 결과였습니다.


무인상점은 사람의 양심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기반으로 운영됩니다. 사장님은 낮에는 직접 손님을 맞이하고, 밤에는 손님들의 정직에 그 자리를 내어줍니다. 가끔씩 무인 운영시간 이후 재고와 계산이 맞지 않는 일도 있었지만, 대부분 손님들의 단순한 실수로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노골적으로, 계획적으로, 의도적으로, 대량의 물품을 훔쳐간 사건을 겪고 나니 “이제 이 공간을 믿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싹 틔기 시작하였습니다. 신뢰가 불안으로 바뀌는 데 걸리는 시간은 채 5분도 되지 않았습니다.


범인은 잡혔는데, 돈은 왜 안 돌아오죠?

사장님은 즉시 경찰서에 신고하였고, CCTV에 선명히 찍힌 얼굴 덕분에 범인은 금방 잡혔습니다. 이전에도 비슷한 피해를 당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얼굴이 특정되지 않아 사건이 흐지부지 끝났다고 합니다. 이번엔 달랐습니다. 범인을 잡았으니 이제는 피해 보상을 받을 줄 알았습니다. 실제로 경찰에서 합의금액을 물어왔기에, 곧 보상이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사장님이 받은 건 범인에 대한 처분 통지서 한 장뿐이었습니다. 피해금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사장님은 저에게 물어왔습니다. 언제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를. 사장님의 물음에 저는 차근히 설명드렸습니다. 형사절차는 ‘처벌’을 위한 것이고, 피해자가 ‘배상’을 받기 위해서는 별도의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한다고요. 설명을 들은 사장님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냥… 소송까지는 못 하겠어요. 시간도, 정신도, 돈도 다 드니까요”

그건 체념이 아니었습니다. 하루하루 매출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의 현실적인 한숨이었습니다. 정당한 권리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 권리를 되찾기 위해 감당해야 할 것들이 너무 버거웠던 겁니다.


지켜야 할 작은 정의

사장님은 절도라는 범죄의 피해자입니다. 피해 금액의 대소를 불문하고 이를 감당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절도 범인이 알아서 피해를 보상하지 않는 경우, 받아낼 방법은 소송 밖에 없습니다. 모두가 잘 아시다시피 소송은 돈과 시간, 그리고 온 신경과 에너지가 드는 여간 머리 아픈 일이 아닙니다. 힘 없이 돌아가는 사장님을 배웅하고 그분이 제출한 서류를 정리하던 중, 사장님께서 직접 자필로 작성한 ‘수사협조요청서’의 한 문장에 눈길이 멈췄습니다.

“자영업자 매출 너무 안 나옵니다. 꼭 잡아주십사 하는 요청입니다”

경찰관에게 건넨 그 문장이 제게는 절규로 들렸습니다. 이분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피해보상이 아니라, 무너진 마음을 일으킬 온기였습니다. 그래서 사장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민사 소송에 드는 수고는 제가 맡을게요. 이번에는 끝까지 가보시죠.” 사장님은 망설임 없이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증거 자료를 보내주셨습니다.


저는 절도 피해금액 99,800원에 정신적 손해까지 더해 총 1,099,800원을 상대방에게 청구하였습니다. 실제 절도 범인으로부터 얼마만큼의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는 소송을 해 보아야 알겠지만, 이렇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것으로도 사장님에게 다시 활력이 느껴졌습니다.


변호사의 마음에서

우리가 법의 힘을 빌려 이루고자 하는 건, 사건의 해결이라는 결과뿐만 아니라 회복의 과정을 통해 삶을 다시 지탱하는 길을 찾는 일일 것입니다. 금액이 적다 하여 그 권리마저 작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소액사건(3,000만 원 이하의 소가) 비율은 전체 805,366건 중 63.1%에 해당하는 507,804건입니다(사법정보공개포털 2024년 사건개황). 그만큼 작은 분쟁 속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걸려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작은 정의’를 가볍게 여깁니다. 하지만 그 작은 순간들이 모여 세상의 상식을 바로 세웁니다. 작다고, 귀찮다고, 그냥 넘기지 마세요. 그 작은 한 걸음이, 여러분의 권리와 세상의 정의를 지킵니다.


유노이아 법률사무소, 장유미 변호사 입니다.




법과 삶, 그리고 문학이 만나는 자리.

한 편의 시와 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유노이아의 법률 에세이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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