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저작권 침해소송의 피고라고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김소월, <초혼> 중에서
당당히 맞선 사람
“제가 침해자라니요. 오히려 선수를 당한 겁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습니다. 억울함에 짓눌려 저를 찾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상황을 똑바로 직시하며, 차분하고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놓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소송의 피고가 되어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결코 가볍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세 시간을 넘긴 상담 내내 웃음이 이어졌습니다.
그는 작사가였습니다. 무대 위에서 배우들의 목소리를 통해 흘러나온 노랫말을 쓴 사람. 그러나 공연이 열리고 무대가 밝아질 때마다, 그의 이름은 어김없이 지워져 있었습니다. 다른 이가 창작자로 기재된 데서 멈추지 않고, 이제는 침해자로 몰리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법의 장에서 마침내 따져볼 때가 왔다”라고 말하며 담담하게 웃었습니다. 민사소송의 피소를 당하기 전, 이미 형사고소를 준비하고 있었던 사람이니까요.
법의 언어로 옮겨온 싸움
그는 오래전부터 혼자 힘으로 저작권을 지켜왔습니다.누군가 쉽게 넘보지 못하도록 목소리를 내고, 증거를 모으며 홀로 싸워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자신이 지켜온 권리를 이제는 법의 언어로 풀어내야 합니다. 그는 단순히 민사소송을 방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반소와 형사고소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의 태도는 단호했습니다.
“이건 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언젠가 또 다른 창작자들이 겪을 수 있는 일이니까요.”
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스스로의 권리뿐 아니라 동료 창작자들을 향한 연대의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함께하는 목소리들
그를 응원하는 창작자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지지는 단순한 격려를 넘어, 이 싸움이 개인의 다툼에 머무르지 않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한 사람이 용기 내어 나서면, 그 용기는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지는 법입니다. 소장의 피고는 오직 그 한 사람이었지만, 그 뒤에는 같은 길을 걸어온 이들의 숨결이 함께했습니다. 실제로 이 상담 자리에도 뮤지컬의 작곡가님이 동행해 주었고, 그 역시 굳은 의지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저는 그의 말투에서 흔들리지 않는 균형감을 느꼈습니다. 소송은 길어질 수 있고, 상대방의 주장은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말투에는 불안이 없었습니다. 힘든 길임을 충분히 알면서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고요한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지워질 수 없는 이름
작사가의 작품은 수많은 밤을 지나며 길어 올린 언어의 결정체입니다. 그 이름을 지운다는 것은 곧 그 시간과 노력, 삶의 흔적을 함께 지우려는 시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름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작품 속에 깃든 창작자의 혼을 온전히 지울 수는 없습니다. 작품을 따라다니는 울림과 결은 결국 그가 남긴 흔적을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그는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억울함을 앞세우거나 분노에 매달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웃음을 잃지 않은 채 전략을 가다듬고, 차분히 길을 준비했습니다.
변호사의 마음에서
상담을 마치고도 그의 표정과 말투는 오래도록 남았습니다. 지쳐 보이지도, 위축되어 있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이 걷는 길이 옳다는 확신, 그리고 그 길을 법이라는 도구로 증명해 내겠다는 결심이 그의 눈빛 속에 또렷했습니다.
법은 느리고, 절차는 복잡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서만 되찾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지워진 이름, 빼앗긴 목소리, 잊힌 존엄 같은 것들입니다.
그는 이미 그 길 위에 서 있었습니다. 혼자 싸우며 쌓아온 시간은 그의 내면을 더 단단하게 해 주었고, 이제는 많은 이들의 응원을 등에 업은 채 더 큰 무대에서 권리를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권리를 되찾는 과정이 아니라, 다른 창작자들에게도 용기를 전하는 깊은 울림이 될 것입니다. 저는 그 자리에 앉아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름은 지워질 수 없고, 어떤 목소리도 끝내는 침묵을 강요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 사실을 증명하는 과정이 곧 지금 그가 서 있는 싸움이자, 제 눈앞에 선명히 남아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유노이아 법률사무소, 장유미 변호사 입니다.
법과 삶, 그리고 문학이 만나는 자리.
한 편의 시와 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유노이아의 법률 에세이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