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회생, 회복의 여정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
(...)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
- 정호승,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중에서
나에게 온 사연
제가 이 사건을 맡게 된 계기는 조금 특별합니다. 업무로 알게 된 한 분과 자주 소통을 하던 중, 어느 날 그분이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혹시 개인적인 걸 여쭤봐도 될까요?”
사정을 들어보니, 아내분이 수감 중이라는 무거운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 법률문제를 여러 차례 문의해 오셨고, 저는 아는 범위를 넘어 모르는 것도 찾아가며 답변을 드렸습니다. 인연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분의 자녀가 하루아침에 엄마를 잃은 상황이 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래서 힘이 닿는 한 돕고자 했습니다. 8개월 뒤 열린 항소심에서, 다행히 집행유예가 선고되었고, 아내분은 사회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무렵, 저는 14년간의 공공기관과 기업 내 변호사 생활을 뒤로하고 개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출소 소식이 전해진 지 사흘 뒤, 그분은 다시 연락을 주셨습니다. “변호사님, 혹시 개업하셨나요? 제가 꼭 변호사님의 첫 번째 의뢰인이 되어 드리고 싶습니다. 아내가 개인회생을 받아야 하는데 그 사건을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첫 만남, 낯선 자리에서
첫 상담 날, 의뢰인은 남편의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제 사무실에 들어오신 것처럼 보였습니다. 작은 체구에 움츠러든 어깨, 시선을 자꾸 피하던 모습은 여전히 교도소 생활의 그림자를 안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 자리에선 주로 남편이 말했습니다. 아내의 사정을 설명하는 것도, 앞으로의 바람을 전하는 것도 모두 남편의 목소리였습니다. 저는 그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아직 자기 이야기를 꺼낼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소에서 다시 살아나는 빛
하지만 두 번째 상담에서는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의뢰인은 변호사와 직접 소통하고 싶다고 강하게 어필했습니다. 남편을 사이에 두지 않고, 자기 문제를 자기 목소리로 전하고 싶다는 뜻이 분명했습니다. 그 눈빛 속에는 이제는 삶을 스스로 회복해 나가겠다는 단단한 의지도 담겨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그녀가 단순히 보호받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다시 세워가는 주체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상담을 마치고 사무실 문을 나서던 그녀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습니다. 아주 작은 미소였지만, 그것은 교도소에서의 긴 시간 동안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아가는 신호처럼 보였습니다.
진술서에서 읽은 삶
개인회생을 신청하려면 반드시 ‘진술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개인회생을 신청하게 된 계기, 채무의 원인, 채무를 갚기 위한 노력, 앞으로의 각오 등이 담겨있는 이 진술서에는 의뢰인이 살아온 세월의 무게가 담겨 있습니다. 결혼과 출산, 양육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늘어난 생활비, 반복되는 소득 공백, 그리고 대출과 카드 사용으로 이어진 빚의 고리. 거기에 코로나로 인한 갑작스러운 퇴직, 그리고 깊이 생각하지 못한 선택으로 엮인 불행한 사건까지.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의뢰인은 채무를 상환하려 꾸준히 애써왔습니다. 수감 전까지는 어떠한 방법으로든 상환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수감이라는 불가피한 사정 때문에 멈춤은 있었지만, 회피는 없었습니다.
출소 후, 의뢰인은 다시 일자리를 얻었고 매달 일정한 급여를 받게 되었습니다. 금액은 크지 않지만, 자신의 힘으로 생계를 꾸려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은 이미 다른 궤도를 타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제 다시는 잘못된 길을 걷지 않겠습니다.”
그녀의 이 다짐은 종이에 적힌 문장이 아니라 삶을 다시 세워가는 선언처럼 다가왔습니다.
변호사의 마음에서
우리는 누구나 삶의 어느 순간에 실수를 합니다. 어떤 이는 넘어져도 금방 일어나지만, 어떤 이는 더 깊은 구렁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넘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저의 첫 의뢰인은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습니다. 교도소라는 긴 어둠을 지나, 빚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새로운 삶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저에게는 더욱 특별합니다.
저는 의뢰인이 빛나는 일상을 회복하도록 돕고 싶습니다. 단순히 빚을 정리하는 절차가 아니라,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고, 다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당당히 서는 과정으로서 말입니다. 의뢰인이 보여준 변화, 그리고 그 작은 미소 하나가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작은 미소가, 앞으로 더 환하고 단단한 웃음으로 피어나길 바랍니다.
유노이아 법률사무소, 장유미 변호사 입니다.
법과 삶, 그리고 문학이 만나는 자리.
한 편의 시와 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유노이아의 법률 에세이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