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이득반환 소송 공동 제기
희망은 결코 절망한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을 위해서 있기 때문이다
- 김광규, 「희망」 중에서
닫힌 문 앞에서 멈춘 발걸음
그날 저를 찾아온 이들은 한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목소리를 높였고, 또 다른 이는 담담히 사정을 설명했지만, 그 눈빛 속에는 깊은 분노가 서려 있었습니다. 사연은 모두 같았습니다. 다니던 대형 헬스장이 2025년 5월 30일 자로 일방적으로 폐업 공지를 하였다고. 회원들은 전날까지만 해도 6월 수업 시간표를 보고 서로의 일정을 확인하며 운동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만, 다음날 새벽 헬스장 문은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고요함이 흐르는 적막 가운데 폐업 공고문만 떡하니 붙어 있었습니다.
“변호사님, 저희는 돈을 냈는데 운동은커녕, 환불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제 의뢰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언론에도 보도된(*),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던 사건이었습니다. 제가 맡은 사건이 기사화되었다는 사실은, 이것이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 이데일리 보도 : 헬스장 ‘먹튀’ 피해 속출…70명 피해 접수, 단톡방 400명 몰려
유혹의 가격표
헬스장은 늘 장기 회원권을 권했고, 결제방식에 대하여도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현금으로 내시면 더 저렴하게 해 드립니다.”
가계가 빠듯한 사람들에게 그 말은 큰 유혹이었습니다. 그래서 회원권 1년 치를, PT 100회를, 현금으로 결제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덫이 되었습니다. 카드 결제를 한 회원들은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카드사를 통해 환불을 받을 수 있었지만, 현금을 낸 이들은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습니다. 헬스장 측에서 먼저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회원들도 이런 일이 발생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하였기에 만일에 대비하여 현금영수증을 받아두어야 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하였습니다.
다시 말하기 시작한 사람들
특히 마음이 아팠던 건, 한 회원의 이야기였습니다. 500만 원에 PT 100회를 계약하고 이제 막 20회를 채웠을 무렵, 헬스장은 문을 닫았습니다. 그분은 아직 400만 원어치 수업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분의 딸도 PT 60회 중 17회만 마쳤을 뿐, 나머지 200만 원이 넘는 금액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회원은 매일 아침 에어로빅을 위해 1년 회원권을 끊었지만, 이제 겨우 석 달만 이용했을 뿐이었습니다. 남은 기간 동안 함께 운동할 수 있던 기회도, 60만 원이 넘는 돈도 사라졌습니다. 사연을 나누는 동안 회원들은 조금씩 목소리를 되찾았습니다. 처음에는 답답함에 눌려 겨우 내던 목소리가, 하나 둘 자신의 피해를 또렷하게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순간 저는 느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니라, 잃어버린 권리를 다시 말하는 과정이라는 것을요.
법정에서 마주한 벽
저는 그들과 함께 민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폐업 공지문, 헬스장 운영 시간표, 계좌이체 내역, 카톡 대화까지. 우리가 모을 수 있는 증거는 모두 모았습니다. 그러나 피고 법인은 피해자들에게 갚을 돈은 없으면서도 변호사를 선임해 곧 답변서를 내겠다며 차일피일 시간을 끌었습니다. 결국, 헬스장을 운영하던 법인은 파산을 알리며 소송을 멈춰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회원들은 두 번 무너졌습니다. 하루아침에 닫힌 헬스장 문 앞에서 한 번, 그리고 파산 소식 앞에서 또 한 번.
함께 세워야 할 울타리
이 사건은 어느 한 헬스장의 특수한 상황이 아닙니다. 그 업계 전반에서 되풀이되는 구조적 문제입니다. 최근 4년간(’ 21~’ 24) 소비자원에 접수된 체육시설 관련 피해 상담만 해도 헬스장이 11,637건에 이릅니다. 사실 피트니스 운영자가 가입할 수 있는 보험은 예전에도 있었습니다.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손해배상책임보험은 있었지만, 정작 폐업 같은 상황에서 회원을 지켜주는 장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은 달라질 것입니다. 2025년 8월 29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중요한 표시·광고사항 고시』의 개정을 행정예고 하였습니다. 앞으로 헬스장은 선불로 받은 이용료에 대해 보증보험 가입 여부를 반드시 고지하고, 이를 계약서·신청서에 표시해야 합니다. 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다니는 헬스장이 보증보험에 가입하였는지 여부는 미리 확인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소비자 스스로도 권리를 지키기 위한 실천이 필요합니다. 헬스장을 등록할 때는 보증보험 가입 여부를 꼭 확인하고, 가능하다면 신용카드 할부 결제를 이용해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할부 항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변호사의 마음에서
“그래도 변호사님이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소송도 제기하여 주셔서 억울한 마음이 조금은 풀렸습니다. 변호사님 만나기 전에는 우리끼리 만나서 상대방을 욕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거든요” 한 회원이 남긴 이 말이 오래도록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법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피해를 끝까지 회복시켜주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목소리를 잃은 사람들이 다시 자기 권리를 말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변호사의 자리라고. 소송은 중단되었지만, 이제 그들은 파산절차라는 또 다른 문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길은 멀고 복잡하지만, 적어도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가, 단지 한 사건의 회한으로 끝나지 않고 제도와 사회를 조금씩 움직이는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유노이아 법률사무소, 장유미 변호사 입니다.
법과 삶, 그리고 문학이 만나는 자리.
한 편의 시와 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유노이아의 법률 에세이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