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2심의 문턱에서

자전거 충돌 사건, 이례적 실형 판결 이후

by 장유미 변호사

내 지금까지 결코 버리지 않은 게 하나 있다면

그것은 희망의 그림자다

버릴 것은 다 버리고

그래도 가슴에 끝까지 부여안고 있는게 단 하나 있다면

(...) 희망의 푸른 그림자다

- 정호승, <희망의 그림자> 중에서






다급한 목소리

“변호사님, 너무 억울합니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죠?”

다급한 목소리로 걸려온 전화는, 통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제 가슴을 조여 왔습니다. 사람은 정말로 절박할 때, 숨부터 가빠집니다. 그 떨림은 전화기 너머에서도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단 한 번의 재판 결과로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현실 앞에서, 절박함은 가장 먼저 목소리에 나타납니다.


의뢰인의 아버지는 자전거 전용도로에서 충돌사고에 휘말렸습니다. 사건의 전말은 처음부터 다툼의 여지가 적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추돌이 있었는지, 넘어짐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등 객관적 영상이나 명확한 물증 없이, 피해자의 진술과 상처만으로 판단이 내려진 사건이었습니다.


1심의 결과는, 금고 4개월.

법률가에게는 익숙한 형량 표현일지 모르지만, 평범한 한 가족에게는 삶의 기반을 뒤흔드는 판결이었습니다. 실형의 결과 앞에서 가족의 일상은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1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말

의뢰인은 1심 판결 이후 여러 곳을 찾아다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은 늘 비슷했습니다.
“쉽지 않은 사건입니다.”
“항소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확신을 주는 사람은 없었고, 억울함만 더 깊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제게 연락이 닿았을 때는 항소이유서 제출을 불과 사흘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사건 기록을 받아 들여다보다가, 저는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1심에서 왜 양형과 관련된 주장은 전혀 하지 않으셨나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돌아온 대답은 제 직업을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1심에서 변호사가… 제게 아무것도 요청하지 않았어요.”


무죄를 주장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강하게, 끝까지, 무죄만을 주장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형사재판은 유·무죄와 양형을 함께 심리합니다. 무죄를 다투더라도, 동시에 양형에 유리한 사정들을 함께 제출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반성의 태도, 주변지인들의 탄원서,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 전과 여부, 가족의 부양 등 생활환경, 재범 가능성, 등 양형의 요소로 주장할 수 있는 사유는 다양하지만, 이 사건에서는 그 어느 것 하나 기록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재판부 앞에는 오직 무죄 주장만 있었고, 그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를 대비한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었습니다.


억울함이라는 말의 무게

사람들은 종종 억울하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변호사로서 상담실에서 마주하는 그 단어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억울함은 분노와 눈물, 두려움과 좌절이 한꺼번에 엉겨 붙은 감정입니다.

이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추돌은 없었습니다.” “피해자를 치지 않았습니다.”

그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피해자의 진술은 굳건한 벽처럼 판결문에 담겼습니다. 가족은 억울하다는 말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1심 법정에서 그들의 목소리는 허공에 흩어졌고, 판결문은 차갑게 내려졌습니다.

그럼에도 가족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2심에서는 제발… 제발 제대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항소심은 ‘다시 한번’의 기회이지만

저는 이 사건의 항소이유서 제출부터 함께하였습니다. 이미 내려진 1심 판결을 뒤집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1심 판결문에는 재판부의 심증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증거의 공백은 생각보다 깊었습니다.


그러나 변호사라는 존재는 바로 그 어려운 길목에서 필요한 것입니다.


사건 기록을 하나하나 다시 살피며, 저는 작은 틈들을 찾아내고자 합니다. 자전거의 파손 흔적이 말해주는 물리적 가능성, 경찰 조사 당시와 법정 진술 사이의 미묘한 불일치, 상해 진단과 실제 치료 경과 사이의 간극. 그 작은 모순들이 모여, 판결의 균열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1심에서 전혀 다뤄지지 않았던 양형 요소들을 하나씩 기록 위에 올려야 합니다. 무죄가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형의 무게는 다시 논의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법정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다

사건 기록을 넘기다 보면, 법조인의 눈에는 법조문과 증거, 판례와 논리가 먼저 들어옵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습니다. 충돌 직전의 공포, 억울함에 잠 못 이루는 밤,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


저는 이 사건을 단순히 항소심 사건으로만 보지 않으려 합니다. 한 사람의 아버지와 그 가족의 이야기로 바라보려 합니다. 법정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변호사의 마음에서

지금 제 책상 위에는 1심 판결문과, 급하게 정리한 상담 기록들이 놓여 있습니다.
2심을 준비하는 제 마음속에는 단 하나의 다짐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 억울함이 법정 안에 가 닿을 수 있도록.”

저는 변호사로서 그 목소리를 호소가 아니라 문장으로, 분노가 아니라 논리로, 절규가 아니라 증거로 바꿔 항소이유서에 담을 것입니다. 그리고 재판부 앞에서 다시 한번 말할 것입니다.


다급한 목소리로 걸려온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된 이 사건은, 이제 저의 책임이 되었습니다. 억울하다는 말이 더 이상 허공에 흩어지지 않도록, 2심의 문턱에서 저는 다시 펜을 듭니다.


누군가의 인생이 판결문 몇 줄로 단정되지 않기를.

법정이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공간이 되기를.


그 길의 한가운데에서, 저는 오늘도 변호사로 서 있습니다.


유노이아 법률사무소, 장유미 변호사 입니다.




법과 삶, 그리고 문학이 만나는 자리.
한 편의 시와 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유노이아의 법률 에세이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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