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정당한 권리 행사,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쿠팡 개인정보 침해 집단소송을 제기한 이유

by 장유미 변호사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은 옳지 않다


폭풍을 두려워하며

폭풍을 바라보는 일은 더욱 옳지 않다


스스로 폭풍이 되어

머리를 풀고 하늘을 뒤흔드는

저 한 그루 나무를 보라

- 정호승 <폭풍> 중에서






집단 소송을 꼭 했어야 할까요?

소송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소비자 관련 분쟁에서 개별 소비자가 집단소송을 선택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개인이 입는 금전적 손해는 대부분 크지 않은 반면, 소송을 준비하고 참여하는 과정에서는 시간과 비용, 절차에 대한 이해, 그리고 심리적 부담이 함께 요구됩니다. “이 정도 피해로 소송까지 가야 하나”라는 고민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고, 그 고민은 많은 경우 권리 행사를 주저하게 만듭니다.


집단소송을 대리하는 변호사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집단소송은 단순히 ‘원고 수가 많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수많은 당사자와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고, 사실관계를 정리해야 하며, 각자의 동의와 의사를 하나하나 확인해야 합니다. 실무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선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사건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작은 권리이기 때문에 더 지켜야 합니다.

2025년 11월 29일 토요일 오후 8시 48분, 평온했던 주말 저녁 시간에 저는 쿠팡으로부터 개인정보 유출 통지를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언론을 통해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안이었습니다. 그 문자를 읽고 나서, 한동안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저는 브런치스토리에서 「유노이아, 빛으로 피어난 이야기」라는 법률상담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 글들에서 반복해서 전하는 주제는 이렇습니다. 작은 권리라고, 금액이 적다고, 해봤자 남는 게 없다는 이유로 쉽게 권리를 포기해 버리는 순간들이 쌓여 정의가 올바르게 서지 못하게 되니,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다른 사람들의 사례를 상담하면서 느꼈던 메시지를 전해왔는데, 실제 내 사건이 되자 처음에는 망설여졌습니다. 나 하나 소송한다고 대기업이 꼼짝이나 할까? 승소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권리가 크지도 않은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버리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곧, 제가 그동안 써왔던 글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글을 읽고 공감해 주었던 사람들도 함께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넘길 수는 없었습니다.


함께 가는 길을 선택하다

혼자였다면 아마도 소송까지는 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분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2025년 12월 15일부터 함께할 분들을 모집했습니다. 개인정보 침해라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사건의 취지와 진행 방식, 예상되는 부담을 충분히 설명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이후, 참여자 명단을 정리하여 공지하고, 집단 소송 양식에 부합하는 원고들 파일을 생성하고, 원고들 각자의 인영을 하나하나 제작하여 위임장을 만들었습니다.


집단이라는 이름이 붙지만, 그 안에는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의 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과정을 더욱 신중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드디어, 소장을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26년 1월 5일, 쿠팡이라는 대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번 소송의 원고는 총 77명입니다. 원고들은 각자 300,000원의 정신적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이 금액은 개인정보보호법이 정하고 있는 법정손해배상 범위 안에서, 이번 사건의 성격과 피해의 내용을 고려해 산정한 금액입니다. 주소, 연락처, 공동현관 정보 등 개인의 일상과 안전에 직결되는 정보가 유출되었고, 그로 인해 장기간 불안과 불편을 감내해야 했다는 점에 대한 쿠팡의 책임을 법적으로 묻는 소송입니다.


이 소송이 갖는 의미

이 사건의 목적은 큰 보상을 받는 데 있지 않습니다.

기업이 수많은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하면서 그 책임을 얼마나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 어떤 법적 평가를 받게 되는지를 공식적인 절차 안에서 확인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쿠팡이 책임을 전면 부인하고 있기에 소송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결과 역시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이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작은 권리라도 정식으로 묻고, 공식적으로 판단받는 경험이 쌓여야만 우리가 늘 불편해하던 그 프레임이 바뀝니다.


변호사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소비자로서

이번 사건은 저 자신이 당사자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의뢰인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집단 소송입니다. 그래서 더 신중했고, 그래서 더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유노이아는 이길 수 있는 사건만이 아니라, 의미를 남길 수 있는 사건에 대해 고민하고 선택하려 합니다. 작은 권리를 묻는 일이 정말로 쓸데없는 일일까요? 이 질문을, 저는 이번 소송을 통해 법정에서 답을 얻으려 합니다.


유노이아 법률사무소 장유미 변호사입니다.




법과 삶, 그리고 문학이 만나는 자리.
한 편의 시와 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유노이아의 법률 에세이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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