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인의 일방적 계약해지통보, 어디까지 보상받을 수 있나요?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들로도 가득하다
- 헬렌 켈러
그분은 결혼 20년 차였습니다. 아내와 함께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두 아이를 키우며 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맞벌이였기에 아이들이 어릴 때는 어머니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아이들이 커 갈수록 보다 더 좋은 교육환경을 주고 싶어 마음이 급해졌다고 했습니다. 첫째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살고 있던 자가를 정리하고 전세로 이사를 가기로 결단했습니다.
문제는 돈이었습니다. 급하게 집을 정리하다 보니 전세금이 넉넉하지 않아 원하는 집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선택한 곳은 재건축을 앞둔 오래된 아파트였습니다. 시설은 낡았고, 손볼 곳도 많았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한자리에 오래 살 수 있다면 괜찮다”라고 스스로를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임대인과 통화할 때마다 늘 같은 말을 했습니다.
“저희는 오래 살고 싶습니다.”
오래된 아파트라서 사건도 많았습니다. 갑자기 터진 누수로 인해 대대적인 바닥 공사를 해야 했고, 공사기간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친척 집을 전전한 기간이 3주가 넘기도 했습니다. 그분과 아내의 출퇴근 거리가 멀어지고, 아이들이 장거리로 학원을 다녀야 하는 등 생활은 많이 불편했습니다만, 그분은 임대인에게 그 어떤 보상도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곳에서 오래오래 살려면 임대인과 관계를 잘 맺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재건축 조합에서 사업시행인가를 신청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소문은 곧, 한 통의 전화로 현실이 되었습니다.
좀처럼 잡히지 않는 누수 문제로 통화하던 중, 임대인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고 했습니다.
“혹시… 나가주실 수 있을까요?”
그 순간 그분은 머릿속이 하얘졌다고 했습니다. 이사 온 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고, 주택임대차보호법상 계약갱신요구권까지 생각하면 앞으로 최소 3년은 큰돈 들이지 않고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집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법적으로는 나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당장 4개월 안에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니 회사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급히 반차를 내고 상담실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만약 나간다면, 저는 아무 보상도 못 받는 건가요?”
“임대차는 단순히 집을 빌리는 문제가 아닙니다. 기간이 정해진 계약이고, 그 안에는 그 약속기간을 믿고 삶의 계획을 세운 사람의 시간이 걸려 있습니다.”
임대인의 상황도 언제든 변경가능한 유동적일 수는 있지만, 그 사정의 변경을 임차인이 온전히 감내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는 엄연히 계약기간을 어기는 행동입니다. 그리고 계약을 먼저 깬 쪽은 그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배상해야 합니다.
그 손해는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입니다.
- 갑작스러운 이사로 발생하는 이사비 전액
- 새로운 집을 구하면서 발생하는 중개수수료
- 동일한 조건의 집을 구하기 위해 추가로 들어가는 전세금에 대한 이자 비용
- 당장 살 집을 구하지 못할 경우에는 임시 거처 비용
- 무엇보다, 가족의 생활이 흔들리며 발생하는 주거 이전에 대한 위로금
이 모든 것은 “나가달라”는 말 한마디로 사라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분은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다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이제… 무엇을 어느 수준까지 요구할 수 있는지는 알겠습니다.”
물론 해결방안을 알았다고 해서 끝은 아닙니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 중의 하나는 알고 있는 것을 ‘그대로’ 행동에 옮기는 것이지요. 이제 그분 앞에는 임대인과의 협상이 남아 있습니다. 임대인의 매도가능한 기간이 극히 짧다는 것과 임차인의 잔여 거주기간이 3년 이상 남았다는 점에서 임차인의 협상력이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거주 공간인 집을 사이에 두고, 임차인은 언제나 조심스러운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만약 임대인이 사업시행인가 신청 전에 집을 매도하지 못한다면 그분은 그대로 거주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협상은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서로의 사정을 정리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부디 이 협상이 그분이 지나 보내야 하는 고단한 시간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임대차 분쟁을 상담하다 보면 항상 계약서를 먼저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늘 아이들 이야기, 부모의 불안, 가족의 생활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법은 계약을 다루지만, 그 계약은 결국 사람의 삶을 다룹니다.
저는 그분이 ‘내가 지켜야 할 것을 알고 협상하는 사람’으로 이 자리를 나서셨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을 조용히 응원하고 있습니다. 계약은 끝나도 삶은 계속되어야 하니까요.
유노이아 법률사무소, 장유미 변호사입니다.
법과 삶, 그리고 문학이 만나는 자리.
한 편의 시와 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유노이아의 법률 에세이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