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지도 위원의 워크숍으로 동해를 갔다. 처음 계획은 목포 방향으로 1박 2일이었다. 신청자가 많아 예산의 한계로 동해로 하루만 다녀오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도 진정한 워크숍이 아니라 야유회다. 언제부터인가 관에서 행하는 워크숍이 점점 야유회로 바뀌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버스에 지역별로 나누어 타고 강원도 동해로 출발을 했다. 방송에서 태풍 21호 콩레이 영향으로 동해는 비가 온다고 예보되어 우산은 챙겼다. 대관령을 넘어서자 비가 조금씩 오기 시작했다. 기상청을 믿고 작년 겨울 잠바를 입고 오기를 잘했다. 역시 아내의 패션을 추천받은 게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약간은 덥게 느껴질 의복 패션이었지만 받아들인 이유가 있다. 어 그제 기흥 노인회 초청으로 일자리 하시는 분들 소비자 강의를 했었다. 강의 전 지회장께서 인사말을 하면서 “노인이 되면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부터는 면역력 증대를 위해 옷을 따뜻하게 입고 체온을 잘 유지하세요.” 하셨다. 그냥 흘려듣지 않고 오늘 실천하길 잘했다. 몸이 따뜻하니 마음도 따뜻한 것 같다.
동해는 고향이다. 태어나 자란 곳이라 처음부터 워크숍 장소가 동해였으면 포기했을 것이다. 아내에게도 외출하겠다는 게 명분이 약했다.
“내년에 청소년 지도 위원 하지 않을 것이니 지도 위원 모임 마지막으로 다녀올게”로 명분을 만들었다. 차가 도착한 장소도 찜찜한 마음을 아는 듯 사촌들이 사시는 집 앞 주차를 한다.
“한 시간 자유스럽게 구경도 하시고 사진들 찍으시고 오세요”
“식사 장소가 10분 거리에 있으니 50분까지는 오세요” 비가 멈춘 상태라 별생각 없이 차에 있기도 지루할 것 같아 동료들과 어울려 등대 길을 올랐다. 그런데 등대에서 사진 한 장 찍자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낭만적인 가을비는 아니었다. 태풍이 영향인지 주룩주룩 우산을 써도 소용없을 정도로 바람까지 동반해 몰아쳤다. 우산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으니 옷을 뒤집어쓰고 응급처방을 하며 바다 쪽으로 갔다. 마치 용이 화가 나 불을 뿜어낼 것 같은 바다 물결은 풍랑으로 크게 파고를 만들며 달려 들어왔다. 어릴 때 옹기종기 모여 수영하던 바위는 아직도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하지만 해안이 정비되면서 커다란 콘크리트 벽으로 막혀 내려가 접근할 수 없다. 그래도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는 조형물로 물 위에 스카이라운지를 만들어놓아 가까워졌다. 바다 물결에 맥없이 부딪히며 견디고 있는 작은 바위섬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 비가 요란하게 오면서 하늘은 검고 바다는 화가 나 크게 출렁거린다. 바위들은 모여 함께 힘을 다해 버텨 보지만 바다 물결에 밀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것같이 느껴졌다.
11월에 태풍도 이례적이지만 태풍으로 다른 지역에서는 사고가 크게 발생했다고 한다. 동해에서 겨울 잠바로 견디고 있는데 용인에서는 25도를 넘는 온도 탓에 덥다고 한다. 스페인에는 하루 비가 온 것 때문에 도시를 마비시키고 인명 피해도 많다고 뉴스에서 전한다. 올여름이 가장 더웠는데 앞으로 이것보다 낮은 날씨는 없을 것이라는 뉴스도 접한다. 사막에 장마처럼 비가 오고 시베리아 땅에는 봄 날씨처럼 따뜻해 꽃이 핀다. 모든 사건은 지구온난화의 영향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이 재난으로 목숨을 잃고 재산을 어이없이 잃어가고 있다. 바다도 온도가 올라가 수온 때문에 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 제주도에서 잡히던 돔이라는 고기는 동해 삼척에서 잡힌다. 명태는 감쪽같이 사라졌고 흔하디 흔하던 오징어도 서해로 가버렸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기도 하고 왜 그럴까? 으아 하게 생각했던 것이 지구온난화의 결과라고 한다. 하지만 한 사람의 평범한 시민이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다. 그저 결과를 보고 답답해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걱정할 따름이다.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이산화탄소이다. 이산화탄소는 지구에 꼭 필요한 원소이다. 단지 산업혁명 이후 원가절감을 이유로 대량생산하고 과잉소비하므로 많은 이산화탄소가 지구에 배출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11월을 시작하며 비를 맞아보니 가을비 우산 속 같은 노래 가사는 나올 것같이 않다. 태풍 영향 때문인지 머릿결을 뒤흔드는 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된다. 감기를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기후변화에 위기의식은 이제는 적절한 적응이 답이다. 체온을 유지해 면역력을 높여 감기를 조심하듯 기후변화도 누가 도와주지 않는다. 국가도 지자체도 이웃도 아니다. 사람은 욕심이 있기에 기후변화 최대한 미루다 위기를 닥치고 나서 대응책을 내놓을 것이다. 선진국일수록 답답함이 없다. 전 지구적 재앙은 느끼고 알고는 있다. 그렇지만 누구도 위기 극복에 적극적으로 나서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막연한 희망은 금물이다. 누구도 믿지 말고 장바구니 사용과 재활용 분리수거와 같은 작은 실천은 내가 먼저 실천해야 한다.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최소한의 양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