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일 Oct 27. 2024

비를 그려보며 농부를 생각한다.

  기상청 일기예보는 뉴스의 마지막 순서다. 우리 가족은 일기예보 프로그램은 함께 보는 편이다. 공간에 함께 있지 않으면 불러서“날씨야 !”하면 하던 일을 중지하고 모인다. 농부를 부업으로 가진 이 후부터다. 물론 빨래를 위한 세탁기 가동 판단기준이기도 하다. 비 예보가 있으면 빨래를 하지 않는다. 건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태양 볕에 말려진 세탁물이 기분도 좋게 하기 때문이다. 기상청 예보가 맞지 않아 우산 없이 나갔다 비를 흠뻑 젖는 일도 있다. 원망하지만 계절에 따라 반응은 다르다. 사람마다 다르고 기분에 따라 다르다. 그렇기에 대중가요에도 작사자마다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박인수 가수의 노래 ‘봄비’에 가사에는 봄비를 쓸쓸한 외로움으로, 이은하 가수의 ‘봄비’에는 비로 돌아오는 연인으로, 장범준 가수의 가사에는 그리움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름비는 소설 황순원의 ‘소나기’로 연상된다. 여름비는 장마와 더불어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을비는 가수 최헌의 ‘가을비 우산 속에’로 대변하고 싶다. 낙엽과 함께 쓸쓸함 속에 비는 외로움이다. 겨울비는 김종서 가수가 떠나간 사랑을 이별 노래로 승화시켰다. 비는 사람의 정서에 외로움이나 그리움으로 대부분 표현되었다. 하지만 일상에서 비는 그런 순수함으로 대변될 수만은 없는 것 같다.     


  봄에는 씨를 뿌려야 한다. 열매를 얻기 위해 나무도 심어야 한다. 봄의 생기를 맛보려면 비는 꼭 필요하다. 낭만적으로 생각할 틈이 없다. 농부는 비를 즐기며 밭을 갈아야 하고 비닐 멀칭도 해야 하며 모종도 심어야 한다. 오직 머릿속에 그려지는 생각은 그리움이 아니라 튼튼하게 성장할 농작물 성장에 있다. 고구마 모종을 심어놓고 비 온 후 가느다란 줄기가 땅에서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바라보는 모습은 피라미드의 신비와 대등하다. 서울 잠실 하늘 높이 서 있는 롯데빌딩의 위세가 부럽지 않다. 비의 가치는 농작물의 멋진 모습으로 대가를 보여준다. 봄비를 맞으면 아직은 몸에 찬 기운을 느껴 감기 조심을 해야 하지만 작물을 사랑하는 마음은 비 맞는 용기와 인내를 갖게 한다. 비가 주는 고마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모여진 빗물이 개울물이 되고 강물이 되어 댐에 가두어지고 전기를 생산하며 식수가 되기도 한다. 봄비로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다.     


  여름에는 뜨거운 태양이 온몸을 땀으로 적시게 한다. 농작물도 낮에 높은 온도를 방어하기 위해 잎은 축 처져 있고 광합성으로 성장을 돕고자 키를 키우는 줄기도 있다. 여름비는 장마를 떠오르게 하고 시도 때도 없이 퍼부어대는 장대비를 생각나게 한다. 그렇기에 소나기를 연상하는 게 자연스러운가 보다. 여름에 농부는 더위를 이기며 열심히 농작물을 돌보아야 한다.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작물이 성장한다는 말이 있다. 여름에 게으르면 가을에 풍성한 열매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폭우 속에서 온몸이 비에 젖어 생쥐처럼 초라하게 보여도 마음은 행복하고 웃음이 묻어난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며 얼굴을 내미는 농작물들의 고맙다고 인사하는 생기 때문이다. 뒤돌아서 가려고 하면 부르는 옆 작물들이 볼멘소리‘왜 저는 풀 뽑아주지 않으세요?’ 한다. 미안한 마음에 비를 온몸에 다 맞아도 도망가거나 물러설 수 없다. 농부는 밭 전체 잡초를 제거하고 올 수밖에 없다.     


  낙엽이 바람결에 날리며 우수수 떨어져 뒹군다. 낙엽 밟으며 걸어보는 돌담길은 언제나 낭만을 노래하게 한다. 겹겹이 쌓여있는 낙엽을 보면 인생이 무상함을 느낄 때가 많다. 우리네 생명도 때가 되면 낙엽처럼 나무에서 분리되어 쓸쓸히 무대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가을비는 나뭇잎이 낙엽 되어 떨어지는 것을 가속 시킨다. 그리고 비 맞고 떨어진 낙엽은 초라해 보인다.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처럼 가을비는 아픔을 동반하는 이별의 고통을 대변한다. 농부의 가을비는 풍요를 방해한다. 가을비는 태풍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마음을 종잡지 못하게 만든다. 추수를 앞둔 벼를 쓸어드려 싹을 움 돋게 하는 비가 가을비다. 들깨 참깨 고추 건조에 방해꾼도 가을비다. 농부의 가슴에 멍을 안겨주는 가을비는 가을비 우산 속 연인처럼 눈물이 맺히게 한다.      


  겨울비는 흔하지는 않다. 겨울에는 온도 차로 인해 눈이 되기 때문이다. 눈은 어름 알갱이인데도 포근함과 사랑을 무르익게 만든다. 하지만 겨울비는 아름답게 덮고 있는 하얀 대지도 금시 녹여 버린다. 질투가 많은가 보다. 겨울비를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비를 맞게 되면 추위를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농부도 겨울에 비를 맞고 일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눈이 오는 기대만큼 비가 와야 땅속에 스며들어 땅을 얼게 한다. 그렇게 하여야 벌레와 해충을 소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눈이 온 후 살짝 내린 비는 생명을 위협하는 빙판길을 만들고 교통사고의 주범이 된다. 비는 비로 와야지 눈과 함께 오면 꼴불견이다. 사람이나 눈이나 지조가 있어야지 섞여서 색이 뚜렷하지 않으면 신뢰를 상실한다. 겨울비가 내리면 농부는 휴식이다. 따뜻한 난로 위 고구마와 감자가 생각나고 막걸리 한 사발이 생각남은 겨울비가 따뜻함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를 생각하면 머릿속에 연상되는 그림은 배란다 물청소다. 아내는 주기적으로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편이다. 집배란다 청소를 위해서다. 난 비를 마음에 부어내리고 싶다. 욕심과 교만한 마음을 청소해 정결하게 하고 싶다. 약속하고 결심하고도 지키지 못해 애타는 양심에 소낙비를 부어 진심을 찾고 싶다. 봄에는 봄비로 인생에 생기를 부여받고 여름에는 소나기로 열정을 되찾고 싶다. 가을에 가을비 우산 속 연인처럼 공동체에 연민을 느끼며 많은 결실로 겨울비에 포근함을 이웃과 함께하며 살고 싶다. 비처럼 때를 따라 필요를 채워주며 살아갈 수 있는 감사의 삶이면 더욱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