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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일 Jul 22. 2024

라면 이야기

라면 이야기     

  청소년 시절 난 교회를 다녔다. 학생회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했었다. 방학이면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하나, 둘 모여 놀기도 하고 공부도 했다. 아침부터 모였으니 배가 고프고 허기가 져도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가는 친구는 없다. 친구와 있는 게 제일 행복한 청소년 시기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 라면을 샀다. 가난한 주머니여서 자장면은 생각도 못 하고 라면만 해도 고급이었다. 그나마 용돈을 받는 부자 친구들 덕분에 그것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는 행운을 얻는 것이다. 그때는 삼양라면이 유일했고 가격은 20원으로 기억한다. 그릇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우린 세숫대야를 동원했다. 양은 세숫대야는 많은 양을 동시에 끊일 수 있는 좋은 도구였다. 플라스틱이 전체적으로 보급되기 전이라 마땅한 나눔 그릇도 없을 때라 우리는 라면 봉지에 나무를 꺾어 젓가락을 만들어 먹었다. 한가락이라도 더 먹기 위한 생존 투쟁은 볼거리였다. 지금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먹는 방송은 한 수 아래일 것 같다. 재미도 있었고 정겨웠던 학창 시절 라면땅이라는 과자가 있었다. 누구의 발상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과자도 라면땅이니까 라면처럼 되지 않을까?” 한마디에 라면땅 과자를 물을 부어 끓였다. 물론 과자는 풀이되었고 결국 먹지도 못하고 버리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었다. 하지만 청소년 시절에 만 해 볼 수 있는 체험이 아니었을까 싶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정 형편 상 공장 취업을 했다. 친구 형님이 서울에서 보세공장 책임자로 계셔서 소개받았다. 외국으로 세터를 수출하는 회사의 물건을 하청 받는 작은 공장이었다. 불행하게도 회사는 취업해 3개월 되면서 경영이 어려워졌다. 처음에는 급여가 늦게 나오더니 어렵사리 먹던 식당도 돈을 받지 못했다며 식사를 거절했다. 난감할 때 해결책이 라면이었다. 난 운명 앞에 선 환자처럼 감춰 두었던 용돈으로 라면을 샀다. 봉지로는 성이 차지 않아 박스로 구매했다. 전투를 앞둔 전사처럼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을 세웠다. 아마도 청소년 시절 라면의 추억이 거침없는 행동의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른다. 가난한 시골 청년의 밥상에 뭐가 있겠는가? 삼시 세끼를 오직 라면으로 허기를 채웠다. 김치는 호사였고 그림의 떡이었다. 한 달을 계속 라면으로 속을 달래고 회사를 근무하자니 힘은 들었지만 견딜 만은 했다. 그런데 계속된 밀가루 음식의 부작용인지 영양실조인지 입가에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 백태가 낀 것처럼 입가엔 하얀 자국이 생겼다. 그래도 먹어야 사는 것이고 일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가정이 나를 반겨 줄 안식처가 못되었고 마음이 허락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원조 비빔면인 팔도가 나은 것 같아? 당신은 어때?”

“글쎄 나도 그래 그리고 라면은 안성탕면이지.”

“오이가 있으니 비빔면으로 할게요. 당신이 개발한 황태 비빔면으로 갑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이야기다.

황태 비빔면은 우리 집의 고정 메뉴로 자리 잡았다. 건조된 황태를 곱게 가시가 없게 손질하고 물에 담근다. 나긋해지면 초고추장으로 버무린다. 비빔면은 면을 끓여 채에 붓고 찬물로 두루 한 김 뺀다. 면을 큰 그릇에 넣고 비빔면 고추장으로 섞는다. 각 그릇에 옮긴 후 황태 채를 얹어준다. 영양가를 맞추기 위한 계란 반쪽은 색 조합에도 한몫을 하죠. 마지막으로 미리 준비한 오이채를 예쁘게 고명으로 얹으면 고급 황태 비빔면 끝. 쫄깃한 면발, 상큼한 초고추장, 영양가 넘치는 황태, 아삭한 오이가 제맛이다.      

  

  결혼 후 라면 조리 담당은 나다. 라면은 면발이 생명이다. 물과 수프를 함께 끓인다. 면은 반으로, 최대 반반으로 쪼개 넣는다. 젓가락으로 면이 빠르게 함께 익게 면을 벌려준다. 저어주어 빠르게 면발이 풀리게 도움을 준다. 풀렸다고 판단되면 젓가락으로 면을 공기와 접촉하게 끌어올리기를 반복한다. 면 살 색이 변하고 면이 탱탱하다고 판단되면 조리 끝.

사람들이 어릴 때 라면에 질려서 라면을 먹지 않는다는 소리를 매스컴에서나 주변에서 듣게 된다. 그런데 난 다르다. 청년 시절 그토록 지겹게 먹었던 라면이고 입이 헐도록 먹었던 라면임에도 지금도 잘 먹고 집에도 예비 음식으로 대기하고 있다. 라면의 마력일까? 아니면 정말 좋아하는 것일까? 정확히 진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라면은 계속 나의 입맛을 유혹한다. 

  라면이 건강에 크게 좋은 식품은 아니다. 그렇지만 세계를 주름잡고 우리 식탁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에 신비함을 느낀다. 하나의 식품이 개발되어 많은 사람의 입맛을 잡은 것이다. 소망이 있다면 다음 세대의 새로운 식품 개발이다. 새로운 식품은 건강에도 도움 되고 가격도 저렴해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그 식품 개발이 우리의 젊은이들이 꿈꾸고 이루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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