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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일 Jul 24. 2024

고추 이야기

고추 이야기     


  농사를 부업으로 시작한 지도 9년 되었다. 시작은 농부가 되어 힐링하는 나를 찾고 싶었다. 마음이 괴롭고 복잡할 무렵 용인농업기술센터에서 귀농 귀촌자를 위한 그린 대학이 열렸다. 초보 농부 수업을 수강했다. 누구에게나 로망인 시골에 가서 살고 싶은 욕망의 서막을 위한 준비를 한 것이다.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촌의 단어는 익숙해도 농사단어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린 대학 학생을 실습시키기 위한 밭도 조그마하게 있었다. 그곳에는 고추, 가지, 콩, 토마토, 상추 등 다양한 품목을 심고 가꾸어보는 실습장이었다. 우리는 조를 편성해 당번을 정하고 매일 자신의 할 일을 배정받고 실습했다. 

“김동일 씨는 화요일 고추 방아다리 밑 고추 곁가지와 잎 정리해 주세요.” 얼떨결에 대답을 했다. 내 스타일대로 닥치면 되겠지 하고 당일 실습장 밭을 갔다. 그런데 문제 발생이다. 고추의 방아다리 단어가 생각나지 않고 위치도 모르겠다. ‘어라 다 그게 그것 같고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팀별 실습장을 마음대로 정리했다가 망치면 그것도 문제이고 난감했다. 어쩔 수 없이 담당자와 전화를 했다. 

“그린 대학 초보 농 김동일입니다. 오늘 당번이라 밭에 왔는데 고추 뭐~ 잎을 따라고 했는데 위치를 모르겠어요.” 자존심은 있어 방아다리 단어를 잊어버렸다는 쏙 뺐다.

“아 네~ 고추에 보시면 밑에서 굵은 가지가 올라와 두 개 혹은 세 개의 가지로 갈라졌죠”

“네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것을 방아다리라고 하고 그 밑으로 지저분하게 난 잎이나 줄기를 제거하시면 됩니다.”

“아~네 감사합니다.”     


  고추는 가짓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이다. 중남미가 원산지다. 그리고 종류로 보면 풋고추, 청양고추, 꽈리고추, 아삭이 고추 등 종류가 다양하나 찍어 먹는 거, 장아찌용, 말려서 고춧가루 만드는 것 정도가 초보 농인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다. 풋고추는 맵지 않아야 제격이다. 봄 상추와 더불어 밥상의 주요 위치를 차지한다. 요즘 개량된 것이 아삭이 고추인데 살이 두터워 고추 한 개를 먹어도 먹음직스럽다. 이런 고추들은 단단해지면 장아찌로 변신시킬 수 있다. 단단하지 않은 고추를 사용하면 고추가 물렁 해지므로 장아찌 작품을 버리게 된다. 장아찌를 하려면 단단한 고추만 골라 깨끗하게 씻는다. 꼭지를 1 CM 이하를 남기고 자르고 고추 앞부분은 가위로 간장 물이 들어갈 정도로 자른다. 바늘로 구멍을 뚫어주는 것도 방법의 하나다. 동시 작업을 할 것은 간장을 불에 올려 끊여야 한다. 원하는 고추가 담길 정도의 양이면 된다. 간장의 종류는 진간장과 국간장은 반반으로 하고 양은 식초와 설탕을 동량으로 1대1대1을 맞춘다. 고추를 물기가 없게 잘 닦아주는 것도 변질을 막는 수단이다. 정리된 고추는 면 보자기나 면 보 자루 같은 곳에 넣고 항아리에 넣고 간장을 부어준다. 그리고 돌 같은 무거운 것으로 눌러주어 간장 물 위에 고추가 노출되지 않게 한다. 이때 돌은 강도가 좋은 것을 선택한다. 돌가루가 떨어지는 약한 강도의 돌은 오히려 장아찌를 망치게 된다. 7 일 후 개봉해 병이나 통으로 옮기고 냉장고로 들어가면 장아찌 끝.     


  고추 중 매운 고추는 청양고추다. 캡사이신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신이 번쩍 든다며 청양고추를 그대로 풋고추 먹듯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보편적 청양고추는 건 고추로 고춧가루 화 되고 김장할 때나 국을 끓일 때 등 조리를 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다양하게 사용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게 있다. 그렇게 매워 입에 대지도 못할 정도의 매움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청양고추를 잘게 다져서 쌈장을 만들면 매움이 사라지고 칼칼하고 개운한 쌈장으로 변신한다. 쌈장은 된장과 고추장을 3:1 비율로 섞는다. 그리고 잘게 다진 청양고추를 만들고 마늘을 다진다. 꿀을 기호에 따라 넣는다. 볶은 콩가루와 김빠진 사이다로 농도를 맞춘다. 이렇게 만들면 재료의 어우러진 발효 작용인 듯 장아찌를 청양고추로 해도 매운맛은 사라지고 매콤한 맛 정도로 변하여 입맛을 돋우어주는 데는 제격인듯하다. 지금까지 조리법은 단지 내 집에서 사용하는 내용이다. 조리는 집마다 사람마다 지방마다 다르므로 정답은 없다.     


  청양고추의 변신을 보며 내 모습을 비추어본다. 나는 상대에게 어떤 사람인가. 불통이고 매워서 상대하기 곤란한 사람은 아닌가? 제멋에 사는 분별력 없는 이웃은 아닌가? 청양고추가 자신을 희생시켜 맛있는 쌈장으로 변하듯 우리도 자신의 독특함은 유지하되 주변과 어우러져 공동체에 맛을 선사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청양고추의 멋을 또 하나 소개하면 청양고추 가까이 아삭이 고추를 심으면 전부 매운맛으로 변한다. 나비나 벌이 수정하는 과정에서 아삭이 고추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물론 청양고추처럼 아주 맵지 않은 적당히 매운맛이다.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그런 맛을 사람들은 좋아한다. 그렇다! 주변을 변화시키는 존재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위대하거나 재물이 많아서가 아니라 존재감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작은 것 존재감 없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몫을 감당하므로 청양고추처럼 자신의 맛을 유지하며 상대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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