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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일 Jul 26. 2024

 수학여행의 기억들

수학여행의 기억들      

  

  여행이라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이 학창 시절 수학여행일 것이다. 수학여행은 글자 그대로 학습에 연장이기에 역사적인 지역이 대부분이다. 신라의 유적이 있는 경주나 백제의 유적지인 부여나 공주가 대상지다. 선조들의 삶의 지혜와 뛰어난 기능과 예술적 가치를 알고 가치관 정립에 도움이 되길 바라서일 것이다. 수학여행 하면 초등학교 시절 손꼽아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가난한 집안 형편에 수학여행은 가정에 부담이 되는 돈이었기에 비용에 대한 말도 꺼내지 못했다. 다행히 고모가 비용에 도움을 준 덕분에 친구들과 함께 수학여행을 갈 수 있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현실이 되고 보니 얼마나 기다려지겠는가? 난 수학여행 떠나기 며칠 전부터 상상의 나래로 밤잠을 설쳤다. 지금은 눈만 감으면 코를 골고 잘 수 있는 기이함이 있는데 그때는 좀 예민했었나 보다.      

  

  창호초등학교는 동백산 언덕 위에 있다. 강원도는 산이 많고 들이 없으니 산에 학교가 설립되는 게 이상하지 않다. 돌산이라 우리는 체육 시간 운동장 돌을 주워 운동장 끝에 버리는 일이 수업이었다. 길도 제대로 없어 미국에서 원조로 빵을 배급 주었어도 우리는 손수레를 이용해 친구와 짝을 지어 산밑 길까지 내려가 배달을 해와야 했다. 수학여행에 함께할 버스 역시 학교에 올라올 수 없어 학생들이 차량 통행이 가능한 큰길까지 내려가 탔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힘든 걸 잊고 친구들과 조잘거리며 힘껏 기대에 부풀어 버스에 탔다. 수학여행 덕분에 버스를 처음 타 본다. 우리의 여행지는 유적지가 아니었다. 왜 장소가 유적지가 아니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장소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집을 벗어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닐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다.     

  

  졸다 자다를 반복하다 선생님께서 도착했다는 소리에 화들짝 잠에서 깨어나 밖을 보았다. 흙물이 보이고 강처럼 보이는 물이 보이고 주변은 우리 동네 산보다 낮은 산이 있는 게 전부였다. 서산에 온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서산만 간척지개발을 하는 곳을 지금 표현으로 보면 선진지견학을 온 것이다. 

“여기가 서해이다. 그리고 지금 보는 곳은 앞으로 흙으로 메워질 거야”

“지금은 바다이지만 들판으로 변해서 쌀을 생산하게 될 것이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완장 찬 군인처럼 힘주어 말씀하셨다.

“어라 바다라고?”

아무리 보아도 흙물이다. 그리고 동해의 푸르름은 없다. 바다일 리가 없다. 뭔가 거짓말이 아니면 잘 못 들은 것이다. 바다는 파란색이 정상 아닌가?

어린 시절 당황했던 추억들은 나이를 먹으며 학습이 진행되면서 이해되었다. 그리고 서해를 왜 황해(黃海)라고도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선생님께서 좀 더 자세히 알려주셨으면 궁금증이 빨리 해소되었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 수학여행이었다.     

 

  막내딸과 나는 43년 차이가 난다. 수학여행으로 세대가 차이가 비교해 보자.

막내는 대형버스가 학교 앞 대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아이가 타고 있는 버스에 다가가 손을 흔들고 있다. 난 혼자였는 데 세상이 변한 것이다. 막내가 수학여행 가는 곳은 경주다. 수학여행 코스는 43년 전이나 바뀐 것이 없어 보인다. 버스가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댄다.

“뭐라고 선생님이 아이들을 집에 가라고 했다고?” 큰 녀석이 전화가 왔다.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아 엄마에게 전화해 데리러 오라고 했다네요.”

“선생님이 아이들 군기 잡기 위해 하는 소리지 걱정하지 마라”

대화를 끝내고도 아이들의 모습이 선하게 보여 마음이 무거웠다. 나의 예상대로 별문제 없이 수학여행은 그대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수학여행에서 받은 상처는 각자 다를 것이다. 막내는 초등학교 때 본인 핸드폰이 없었다. 선생님의 핸드폰으로 언니에게 전화했을 것을 생각하며 지금도 찡하다. 그때 우리는 막내가 집에 없으니 자유인이다 싶어 산에 갔었다. 이런 사태를 누가 짐작했으랴.

“그때 너희 선생님 왜 그러셨니? 너희가 무엇을 잘못한 거야?”

“응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 아마 방을 마음대로 바꿔서였을걸~~”10여 년 지난 기억을 더듬어 막내가 대답한다.

“야 아~~ 잘 기억해 봐 그때 애들의 반응은 어땠어? 나 수학여행 글을 쓰고 있다. 도와줘.”

거울 앞에 있던 막내 돌아서면서 뭔가 기억난 듯 말한다.

“근데 애들이 울었던 것 같은데 왜 울었지?”

“그거야 엄마에게 전화하라고 했으니 엄마에게 혼날 것과 수학여행 못하고 집으로 갈까 걱정되어서 그러지 않았을까?”

“그런데 너는 안 울었니?”

“응”

“그래 너같이 멘탈이 강하면 모를까 보통은 울지”

“그래?”

막내는 무덤덤하게 말한다. 트라우마가 없다는 증거다.

“야 그래도 너희들 그때는 울고불고했어도 평생 우려먹을 추억거리는 생긴 거네”

“그렇긴 하지” 우린 웃으며 수학여행 이야기를 마쳤다.     

  

  여행이란 추억을 만드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쉬움과 계획한 것과 다르게 문제들이 발생하겠지만 그것 역시 기억 속에 아름답게 장식될 수도 있고 트라우마로 평생 자신을 옭아맬 수도 있다. 결과의 몫은 오직 자신 것이다. 여행은 너무 거창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여행이 노동이 되면 더욱 괴로운 것이다. 특별히 가족여행에서 조심해야 할 여성의 가정에서 하던 습관적 챙김이다. 서로 배려하며 즐기는 여행이 좋은 여행이라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수학여행을 생각해 보며 사춘기 시절 가족보다 중하게 여기는 친구들과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학창 시절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기억 저편에 있던 수학여행의 추억에 미소가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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