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수 있다는 게 고맙다. 생각을 옮겨 적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어려서부터 했다. 아마도 환경이 어렵고 힘들었기에 우울한 감정을 다스리려면 글을 써서 해소해 보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는 걸 좋아했다. 작품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기에 대중가요 가사를 좋아했다. 아마도 글을 쓰기 전에 기억난 것은 대중가요 모음집이다. 중학생 무렵에 남진 나훈아 시대였는 데 나훈아 노래를 좋아했다. 가사가 마음에 들었다. 그런 의미로 노래 가사를 작은 노트에 적었다. 라디오도 듣기 힘들었던 시골에서 노래 가사를 종이에 적었다는 것은 시작품 하나를 완성한 것이었다. 외로움이나 사랑의 갈급함이 무엇인가를 쓰게 했고 작가라는 허무맹랑한 꿈을 갖게 했는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꿈이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자동차 운전기사와 작가다. 자동차가 귀하고 자가용이라는 용어가 흔하지 않았던 때라 자동차를 타고 어디든 다니는 그들이 너무 부러웠다. 가정환경이 복잡하고 어려웠던 것에 대한 돌파구로 그렇게 탈출하고 싶었는가 싶다. 어디든 도망가고 사람 없는 곳에 조용히 도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마음이 어두울 때 피하는 방법이 또 하나 있다면 글을 쓰며 마음을 달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작가가 우선이 아니고 초등학교 시골 분교 선생님이었다. 오지 분교 시골에 파묻혀 글을 쓰고 있는 낭만과 아이들에 우상인 선생님 얼마나 멋진가? 이것 역시 현실도피의 구상 중 하나의 방법론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 어느 것도 현실과는 괴리가 있는 것이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택시 기사는 선망의 대상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리고 3대 독자로 부모님을 보필하며 살 수밖에 없었던 현실에서 혼자 동떨어져 낭만을 즐기며 살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물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내 꿈을 행해갈 수 있었겠지만 그만한 용기나 패기도 없었다. 꿈과 소망과는 전혀 다른 광산으로 들어갔다. 어쩌면 도피처로는 안성맞춤인 곳인지 모른다.
글을 쓰는 것에 종이와 펜이 필요하다. 물론 시간도 필요하다. 어려서는 가난이라는 굴레가 글을 방해했다. 최소한의 학용품도 갖추지 못하고 학교생활을 했다. 종이도 귀했고 연필도 몽당연필조차 연필통에 몇 개 굴러다니는 게 전부였다. 가난이란 환경 속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한가롭게 강가에서 고기를 잡는 강태공처럼 보였다. 글을 고민하며 문장으로 쓸 수밖에 없는 기회는 대학에서였다. 과제물을 제출하려면 문장이 필요했다. 시험에서도 같은 현상이 생겼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별 필요 없었던 글을 써 다른 사람을 설득하거나 이해시키는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물론 성적하고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성적장학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객관식과는 다른 능력을 요구되는 것이다. 난 대학을 입학하면서 어머니와 약속을 지키려면 성적이 좋아야 한다. 그런데 4년 늦게 출발해 가능할까? 걱정이 많이 되었다.
그런데 내겐 일기를 써왔던 인내와 책을 친구에게 빌려서 열심히 보았던 열정도 있었다. 시를 쓴답시고 긁적여 놓은 습작품도 있었다. 과거를 연상하며 과제물에 정성을 다해 글을 썼다. 진심이 통했는지 만점을 받았다. 잘했다기보다 잘 봐준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된다는 경험이 그 후에도 용기와 담대함을 주었다. 대학 시험이 너무 좋았다. 객관식에는 하나의 답이 있다. 그렇지만 주관식은 내 생각을 풀어내는 기술이니 너무 좋았다. 한번 성과를 내고 능력을 인정받은 것이 글쓰기에 도전하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잃어버리고 있던 내 속의 꿈틀거리는 글쓰기 욕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끝없는 도전으로 연결될 것이다. 천재성보다는 꾸준한 익숙함으로 승부하고 싶다. 하나의 답이 아닌 인생은 다양한 답을 요구하는 과제가 있다. 내가 겪어온 글들이 다음 세대의 연습장과 전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사는 삶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을 무시한 삶 역시 있을 수 없다. 탄광, 토목 현장에서 부모, 결혼과 가정 그리고 가족부양 등 앞에 보이는 순서대로 하나씩 처리하다 보니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칠십을 바라보는 지금이라도 생각했던 삶을 영위해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누구에게나 이런 기회가 쉽게 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생 2막 두려움과 염려로 시작했다. 걸어온 길과 전혀 다른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은 인생에서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왜를 묻지 않고 질문을 던지고 기다리고 있기보다 또 다른 질문으로 해답을 찾으며 닥치는 대로 배우며 도전했다. 능력은 누구에게나 보유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그 능력을 발휘해 결과를 표출해 내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결과에 순응하고 자족하는 것도 자신이요. 불응하고 포기하는 것 역시 자신이다. 주어진 능력을 사장시키지 말고 불만족하더라도 결과를 내자. 작은 결과라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것이 힘이 되어 더 큰 도전을 할 것이다. 도전하려는데 나이가 걸림돌인가? 글쓰기에는 정년이 없다.